왜 지구는 평평하다는 생각이 나왔을까?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지구는 평평해”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쩌면 “아 xx, 경찰을 불러? 정신 병원에 전화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아주 멀쩡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제는 “지구가 평평한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볼 수도 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세계사 수업을 듣지 않은 사람이라도 콜럼버스가 누군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대충 이렇게 알려져 있다.

인도와 중국에 가고 싶었던 콜럼버스는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공처럼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지구를 돌아 장기간 배를 타고 나가면 동쪽에 있는 중국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그에게는 긴 여행에 필요한 돈과 배가 없었다. 둘째, 당시 대부분은 지구가 테이블처럼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육지에서 너무 멀리 항해하면,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이야기지만,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잘못 전해진 이야기란 걸 알 것이다.

지난 글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야기가 어떻게 편집되고 각색돼 미국의 신화가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아봤다.

이 글에서는 콜럼버스 신화 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 “지구는 평평하다는 거짓말”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 콜럼버스의 이야기, 드라마 그리고 신화가 세계를 이해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

교과서에 나와있는 것과 달리, 1492년 당시 배운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지 않았다.

콜럼버스 보다 2천 년 앞서 살았던 피타고라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중세 암흑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실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토론할 가치가 없을 만큼 널리 받아들여져 있었다. 역사가 J. B. 러셀은 웨스트몬트 대학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기원전 3세기 이후 지금까지 서구 문명사에서 배운 사람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및 아리스타르코스의 뒤를 이어 적어도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은 기독교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 시편 104:2–3 같은 구절을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하지 않고 지리적 표현이라고 잘못 생각한 소수의 초기 기독교 교부들(최소 2명에서 많아야 5명)만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했을 뿐이다. 기독교 초기, 중기 및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기독교 신학자, 시인, 예술가, 과학자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요점은 배운 사람이라면 지구가 당연히 둥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러셀은 역사가들도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과학 역사가들은 이미 70년 전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 많은 나라의 학생들은 대부분 똑같이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떻게 그리고 왜 등장한 것일까?

콜럼버스는 전 세계를 항해한 적이 없다. 그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온 것뿐이다. 전 세계를 일주한 인물은 수십 년 후 마젤란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풀어야 할 두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1)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짓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2) 역사가들이 이미 1세기 전부터 거짓말임을 알려왔는데도, 왜 지금까지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

러셀은 ‘Inventing the Flat Earth”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짓말은 최근의 발명품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830년대 이전에는 누구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러셀은 이 거짓말의 기원 중 하나를 미국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워싱턴 어빙’(1783-1859)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일반인들 사이에서 어빙은 “Rip Van Winkle and The Legend of Sleepy Hollow” 같은 이야기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 역사가들 사이에서 어빙은 ‘가짜 역사’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한 역사가는 어빙이 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전기는 “순전히 헛소리이며…. 이야기 전반이 오해의 소지가 있고, 해를 끼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어빙이 쓴 전기에는 콜럼버스가 누가 뭐래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성직자와 신학자들에 단호히 맞섰던 대담하고 진보적인 모험가로 그려져 있다.

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합해져 미국의 교과서에 들어갔고, 지금 21세기까지 거의 2세기에 걸쳐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가들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런 꾸며진 신화가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짓말이 역사의 일반적인 오류였다면, 지금쯤이면 아마 고쳐졌어야 맞다. 하지만 이 거짓말이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 보다 뭔가가 더 있다는 뜻이다.

진화 생물학자이자 수필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A Late Birth of a Flat Earth”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거짓말이 살아남은 이유는 유용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우리 문화에 크게 침투해 있다고 한다.

이 신화는 빛과 어둠의 전쟁, 그리고 선과 악의 전쟁을 말해준다.

서양 역사는 과학과 종교 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19세기 초반에 와서 과학이 승리하고, 그로 인해 신학이 뒤로 물러서면서, 지식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들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도구가 필요한 법이다… 과학에게 날조된 이야기만큼 더 좋은 무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종교라는 어둠이 교리라는 무기를 휘두르면서 이성과 경험 모두를 물리치고, 그리스의 지식을 파괴했으며, 우리를 공포의 울타리 속에 가뒀던 것처럼 말이다.

굴드는 역사란 이념이 담긴 드라마로 재탄생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대담하고 과학을 사랑하는 영웅(콜럼버스)이 어리석고 과거에 머문 종교인들(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로 드러나기도 한다. 계몽주의의 “빛”은 중세 암흑시대의 “어둠”과 대조된다. 굴드는 이 모든 것들이 다음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보탬이 되었다고 말한다.

… 서양 역사에서 중세 암흑시대는, 비극적이긴 해도, 그리스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의 구원으로 나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이 드라마가 잃어버린 에덴의 낙원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오랜 틀을 갖추고, 세속적인 해석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낙원은 (중세 암흑시대에는 사라졌던) 지구는 둥글다는 그리스 지식이고, 구원은 과학, 이성 및 진보의 힘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영웅이 필요하며, 모든 영웅에게는 악당이 있어야 한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과학이라면, 악당은 종교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이야기는 창조론자들을 겨냥해 진화론자들이 심어놓은 폭탄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아하지는 않았어도,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이 창조론자들이 얼마나 바보인지 보라. 그들은 항상 과학과 진보를 방해하고 있다. 오늘날 진화론을 부정하는 이런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적어도 천 년 동안 부정해왔던 바보들과 똑같은 부류다.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는 없다.”라고 비웃는 수단이었다.

역사는 한 민족이나 인종이 다른 민족이나 인종보다 우월한 이유에 그릇된 정당성을 부여하기 조작된 경우가 많다. 과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료 출처: Charles Chu, “How the Earth Became F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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