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영웅, 펀드 매니저 "필립 카렛"

미국 최초의 뮤추얼 펀드 중 하나를 만든 사람이자, 워런 버핏의 아버지와 투자 아이디어를 나눴던 전설적인 투자자 “필립 L. 카렛(Philip L. Carret)”은 101세의 나이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카렛은 80년에 걸쳐 수십 차례의 상승장과 하락장을 경험했던 투자 경력 동안 오랫동안 ‘가치’ 스타일의 투자 방식을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꾸준히 수익이 증가하고, 강력한 대차 대조표를 갖춘 동시에, 스스로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헌신적인 경영진이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매수해, 오랜 기간 보유하는 투자 방식 말이다.

1928년 자신이 설립한 뮤추얼 펀드 파이어니어 펀드(Pioneer Fund)를 55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용했던 투자 방식이었다. 카렛은 보스턴 뉴스 뷰로(Boston News Bureau; 클라렌스 W. 배런(Clarence W. Barron)이 발행인으로 있었으며, 추후 금융 주간지 배런스에 이름을 빌려주기도 했다. 캐럿은 배런스지에서도 일했다.)에서 경제부 기자로 일하기 4년 전쯤 여러 주식을 하나로 모은 투자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캐럿은 친지들로부터 25,000달러를 모아 투자 풀을 시작했다. 이 투자 풀이 현재의 뮤추얼 펀드로 진화한 것이다. 1929년 주식 시장 붕괴와 그에 이은 대공황으로 펀드는 손실을 기록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1983년 그가 펀드 매니저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펀드 산업 역사상 최고의 장기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카렛은 취미도 열광적으로 즐겼다. 이로 인해 재산이 축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192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웨스털리에 일어났던 개기일식을 처음 본 다음, 다시 일식을 보기 위해, 2월 바베이도스 마지막으로 전 세계 19곳을 돌았다.

1981년 카렛은 일식을 감상한다는 것은 “심오한 종교적 경험”이었다고 말했지만, 일식의 매력은 자신에게 다소 신비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런 경험을 합리적인 사람에게 납득시킬 자신은 없다.”라고 말했다.

필립 로드 카렛(Philip Lord Carret)은 1896년 11월 29일 매사추세츠 주 린의 51세 변호사 아버지와 39세 사회 복지사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 학위를 취득한 후, 공군의 전신인 육군 통신대에 입대해 소프위드 카멜 비행기로 비행 훈련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전투에 참여하기도 전에 전쟁을 끝났다.

1922년 플로렌스 엘리자베스 오스굿(Florence Elisabeth Osgood)과 결혼했다. 아내 오스 굳은 1986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그는 맨해튼의 아들 도널드, 뉴욕 파울링의 딸 다이앤, 12명의 손자 및 15명의 증손자와 함께 지냈다. 또 다른 아들 제라드는 1991년 7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3년 파이어니어 펀드를 운용하던 회사의 경영권을 매각한 후, 고액 자산가와 기관을 주 고객으로 하는 카렛 &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지분을 1988년 매각했으나, 그 이후에도 무급으로 계속 일했다. 세상을 떠나던 달까지 일주일에 3일을 뉴욕 스카데일에 있는 집에서 맨해튼 미드타운의 카렛 사무실로 출퇴근했다. 또한 1996년 100 세 생일날까지 파이어니어 뮤추얼 펀드의 이사직을 유지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의 투자 스타일은 원금을 두 배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젊은 뮤추얼 펀드 매니저들의 주식 보유 기간이 몇 주에 불과한 것에 대해 비웃으면서, ‘어리석음의 절정’이라고 말했다.

1940년대 중반 카렛은 오마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하워드 버핏(Howard Buffett)이라는 젊은 주식 중개인이 나무통 제조업체 그리프 브라더스 코퍼레이션(Greif Brothers Corporation)에 투자를 권했다. 카렛은 (이후 주식 분할을 감안했을 때) 주당 68센트로 거래되던 그 업체 주식을 사들였다. 이 업체는 때때로 플라스틱과 강철 드럼통 같은 새로운 포장 용기로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는 주식을 팔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년도 말 기준으로, 카렛 & 컴퍼니는 여전히 그리프 브라더스 A주를 4%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당시 약 36.50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다.

또한 카렛은 주식 중개인 친구의 아들 워런 버핏(Warren E. Buffett)의 버크셔 해서웨이의 오랜 주주이기도 했다. 카렛은 버크셔의 주주총회가 있을 때면 언제나 버핏의 연설을 듣기 위해 오마하를 찾았다. 젊었던 버핏은 그를 “나의 영웅” 중 한 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카렛은 몇 권의 투자 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중 “Buying a Bond”와 “The Art of Speculation”는 배런스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각각 1924년과 1930년에 출간되었다. 두 책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 기념판으로 재발행되었으며, 1991년에는 버지니아 주 벌링턴의 프레이저 출판사에서 그의 자서전 ‘A Money Mind at Ninety’을 내놓았다.



‘’The Art of Speculation’’은 제목은 투기의 기술이지만, 가치 투자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카렛은 단기 이익을 노린 투자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1939년 카렛은 트리니다드에서 설탕 농장을 운영했던 할아버지의 경험을 살려, 쿠바의 설탕 회사의 지분을 사들였다. 전시에 설탕 가격이 급등하리란 예상이었다. 각각 1.75달러에 매입한 주식을 1940년대에 65달러에서 200달러 사이에 매도했다.

1997년 카렛은 하버드 최장수 졸업생 중 한 명으로 졸업식 행사에 참여해 연례 동문 행렬을 이끌었고, 199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6월 4일로 예정된 이 행사에 참석했을 것이다.

카렛은 오랜 친구이자 파이어니어 그룹의 회장인 존 F. 코간 주니어(John F. Cogan Jr.)에게 1998년 5월 11일 보낸 편지에서, “외출이 금지된 채로 항생제를 맞고 있네. 하지만 곧 몸을 추스를 수 있을 게야. 하버드 졸업식 행사에 가려면 열심히 운동을 해야 될 테지만 말이야.”라고 썼다.

늘~~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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