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르헨티나여 - 지옥에서 온 투자자, 폴 싱어 그리고 엘리엇 3부

엘리엇이 페루의 국채에 대한 최종 판결을 받고 1년 후, 이번에는 아르헨티나가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 이 나라는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실업률이 크게 높아져 있었고, 10명 중 7명은 가난 속에 살고 있었다. 2001년 12월 주민들의 은행 계좌가 동결됐고, 거리에서는 폭력 시위가 일어났다.



몇 개월 만에 대통령 집무실 주인이 5명이나 바꿨고, 그중 한 명은 자기만 살겠다고 비행기로 나라를 빠져나갔다. 2003년 사회주의 포퓰리스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Néstor Kirchner)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네스토르와 2007년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아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는 외국 자본가들에게 보호를 약속했다.

네스테르와 후계자들은 수차례 발행 국채를 재조정하면서, 국채 보유자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국채를 상환 받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밝혔다. 결국, 국채 보유자 중 92%가 이에 응했다. 엘리엇을 비롯한 소수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엘리엇의 전략은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했다. 다른 국채 보유자들이 고집을 꺾고 국채를 처분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조건을 거부한 이들 숫자가 줄어들 테고, 그러면 아르헨티나가 국채의 원래 가치를 전부 상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소송에 관여한 한 사람은 싱어가 “누구도 잘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즉, 아르헨티나 국채를 아주 싼값에 매입해, 영원히 보유할 의지가 있었고,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소송을 통해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돌려받기로 한 것이었다.

엘리엇과 아르헨티나 정부의 싸움은 주로 뉴욕의 연방 법원에서 진행됐다. 소송의 한 쪽 당사자는 많은 이들이 가난한 나라를 돈벌이에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헤지 펀드 억만장자가 있었다. 다른 쪽 당사자는 협상 파기도 고려하겠다는 아주 다루기 힘든 인물 키르치네르들이 있었다. 모국에서 커져가는 부패 혐의에 직면해 있던 그들은 싱어와 그의 요구를 정치적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담당 판사 토머스 그리에사(Thomas Griesa)는 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10년이 넘는 기간을 보냈고, 80세로 늙어가면서 양측 당사자 모두에게 점점 짜증을 느끼게 되었다. 한 소송 관계자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되면서 싱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창조적”이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정부 자산을 압류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대부분의 정부 자산은 주권 면제법으로 보호받지만, 엘리엇은 미상환 국채에 대한 담보물로서 아르헨티나 자산 압류 명령을 내려줄 법원을 찾아 전 세계를 조사했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준비금, 연기금의 자산 및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르헨티나 인공위성 발사대를 압류하려고 시도했다. 싱어가 이런 겉보기에도 터무니없어 보이는 조치를 취할 때마다, 아르헨티나 측 변호사들 또한 압류를 막기 위해 법원 명령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압류 조치는 점점 더 어려워졌지만, 아르헨티나가 돈을 쓰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은 엘리엇이 아르헨티나 군함을 압류하려고 시도하면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2012년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배 길이가 100미터가 넘는 프라가타 리베르타드(Fragata Libertad) 호에는 여러 나라의 해군 사관 생도 100명, 아르헨티나 해군 69명, 승조원 222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군함이 가나의 테마항 정박지에 도착하자, 선박 압수 명령서를 든 한 남자가 해안에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측 변호사들은 서둘러 가나의 최고 변호사 에이스 안코마(Ece Ankomah)를 선임했지만, 이미 군함은 엘리엇 측으로 넘어가 있었다.

사관 생도들 대부분은 배에서 내렸지만, 아르헨티나 병사들은 선상에 남아있었고, 양측은 법정에서 논쟁을 벌였다. 이 사건의 관련 인물 중 한 명에 따르면, 가나 경찰이 기중기에서 배에 진입하겠다고 말했지만, 무기를 보고는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국제 해양법 재판소는 엘리엇의 법원 명령서를 무효화했고, 아르헨티나 군함을 가나를 떠났다.

2년 후, 중요한 마감 시한을 앞두고 엘리엇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아르헨티나는 다시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 이 채무 불이행 조치로 이미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실업률은 더 높아졌으며, 인플레이션을 급증시켰다. 일반 아르헨티나 주민들은 기본 생활비도 모자랐다.

엘리엇은 다른 나라들에게도 비슷한 투자 전략을 사용했다. 그들 주에는 콩고 공화국이 포함된다.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였다. 하루에 2,6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인구 중 절반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엇과 다른 헤지 펀드들은 채무 불이행된 국채를 상환 받기 위한 작전 중 하나로 부패한 정부를 몰아내는 십자군이 되기도 한다. 엘리엇은 소송을 통해 콩고 지도자들의 불법 행위를 폭로했다. 그중에는 대통령과 그 일가의 유럽 쇼핑 장면과 뉴욕 고급 호텔 영수증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반대로, 인권 단체들은 병원과 학교로 가할 돈을 헤지 펀드들이 가로채 간다고 비난했다. 이에 엘리엇은 “개발 도상국가 국민들이 가난한 이유는 국내 정치 및 경제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대응했다.

아르헨티나와의 분쟁은 싱어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끌었다. 2015년까지도 거의 진전이 없었다. 외부 사건이 갑자기 발생해 계획을 접게 될 경우 엄청난 손실을 떠안게 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이윽고 키르치네르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토목 공학자 출신으로 훨씬 더 기업 친화적인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앞으로 헤지 펀드들과 우선권 협상을 담당하게 될 것이었다. (키르치네르는 이후 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6년 1월 13일 뉴욕에서 양측의 협상이 재개되었지만, 몇 가지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는 아르헨티나가 비공개 협약에 서명했다는 헤지 펀드들의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 싱어는 두 번째 협상이 끝난 후 진전 없는 상황이 불만이었고, 양측 간의 협상을 감독하는 대니얼 폴락 변호사가에 이메일을 보내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했다. 폴락에 따르면, “싱어가 부하 직원을 대신해 직접 협상의 전면에 나설 것이 거의 분명했다.”

만남이 있기 전, 싱어의 개인 보안 요원들이 폴락의 사무실에 들어와 청소를 하는 척하면서, 출구를 점검하고 내부가 안전한지 확인했다. 싱어의 한 가지 가장 강력한 요구는 아르헨티나가 자신을 최혜국으로 대우해, 다른 어떤 국채 보유자들보다 더 많은 상환액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싱어는 “강하고 까다로운” 협상가였을 뿐만 아니라, 실무에도 아주 능했다. 결국 최혜국 대우 요구를 포기했다. 폴락에 따르면, “그의 부하 직원들은 아주 세부적인 일까지 건드리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반면, 싱어는 근본적으로 돈과 자존심만 신경 썼다.”

엘리엇은 법적 싸움으로 14년을 보냈지만, 결국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엘리엇에 24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투자 원금 대비 1,270%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 결과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싱어가 항상 이긴다는 것이었다.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는 헤지 펀드 - 지옥에서 온 투자자, 폴 싱어 그리고 엘리엇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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