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스페인 독감 시기에도 복리의 마법은 작동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을 선언했다.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 선언을 했고,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으로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1918년 봄, 많은 미군이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코로나19와는 달리,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비슷하게 급습했다. CDC에 따르면 “20~40세 연령대를 포함한 건강한 사람들의 높은 사망률이 스페인 독감의 독특한 특징이었다.”라고 한다.

불과 100여 년 전인 1918년 3월,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의 캠프 펑스턴에서 미국 내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타났다. 인디애나 주의 경우 1918년 9월 인디애나폴리스 외곽의 포트 벤저민 해리슨(“포트 벤”)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왔다. 당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처음 보인 반응은 2020년 지금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포트 라일리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타난지 6개월 후 그리고 포트 벤에서 발병한 지 2주 후, 미국 연방정부 의무감은 전 국민에게 “증상이 있으면 침대에서 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충분히 음식을 섭취하고, 완해약을 복용하라.”라고 권고했고, “입을 가리고 기침하고, 아무 데나 침을 뱉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행동 수칙을 설명하면서 소통하는 것과 공황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것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진행된다. 우리 모두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나왔고, 그 정보를 소통해야 했으며, 언제 그래야 하는지 논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 중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2009년, 1968년, 1957년 유행병 당시에도 있었고, 1918년에는 줄에서 떨어졌다.

당시, 처음에는 격리 시설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인디애나 주 보건 위원회 의장(존 허티 박사)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지금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십시오. 가장 좋은 것은 몸 상태를 잘 유지하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침 뱉는 습관을 즉시 멈추고, 기침이 나오거나 코를 풀고 싶으면 종이나 천 손수건을 사용하면, 인플루엔자와 기침감기는 거의 사라질 것입니다. 몸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작고 약한 미생물이라도 건강이 약해지면 침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실의 통풍을 잘 되게 하고 잠을 충분히 자서 몸을 튼튼하게 유지하십시오. 걱정, 폭식, 조급함, 조바심을 피하십시오. 배변 후에는 각별히 살펴보십시오. 주로 담백한 음식을 섭취하십시오. 육류를 많이 먹지 마십시오. 커피와 차는 천천히 마시십시오. 어떤 술도 마시지 마십시오. 모든 약물과 마약을 끊으십시오.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거나 예방 조치 없이 재채기를 하고 코를 푸는 사람이 있으며 경고해 주기 바랍니다.

다음 단계는 비록 그리 신속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지금 취한 조치와 비슷했다. 시 보건 위원회는 “호텔 로비, 극장, 철도역, 시내 전차 등 모든 공공장소는 훈증 소독과 세척을 통해 철저한 위생 상태를 갖추도록 하라.”라고 지시했다.

다음 달이 되자, 허티 박사는 “5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포괄 명령”과 “공개 모임 금지” 조치를 내렸다. 바이러스는 그해 10월 중순 정점을 찍었고, 11월 초가 되면서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고, 감기 증상이 없는 사람들은 시내 전차를 타거나, 영화관에 갈 수 있었다.

11월 말, 인디애나 주는 거의 3,300명의 주민을 스페인 독감으로 잃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의 영향은 대도시에 더 심각했다. 1년여 만에 뉴욕 시민 약 33,000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고, 뉴욕시의 사망률 4.7/1000(0.47%) 보다 필라델피아(0.65%)와 보스턴(0.73)이 더 심각했다.

스페인 독감은 전체 미국인 중 28%를 감염시켰고, 그중 675,000명이 사망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 싸우다 죽은 사망자 수의 10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스페인 독감으로 225,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유럽 전체에서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인도에서도 1,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믿는다(간디는 감염되고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전 세계 사망자 추정치는 총 3,500만 내지 5,500만 명 사이였다.

스페인 독감의 기원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고, 독일에서 만든 생물학적 전쟁 무기라거나 참호전에 겨자 가스를 사용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시아 어딘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희귀한 유전적 변이를 했고, 이 신종 바이러스가 “거의 모든 사람을 감염시키고 집단 면역력 상실”이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났듯이, 스페인 독감도 결국 막을 내렸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도 베르사유 조약을 협상하는 동안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주식시장도 그랬다. 실제로는 아주 크게 번성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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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Albert Bridge Capital, “In Flew 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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