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헌법 재판관 이미선과 주식 그리고 썩은 진보, 참 잘돌아간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복잡하다. 그리고 매일 새롭다. 자고나면 새로운 소식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인간사라는 것이 그렇게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제 오늘 신문과 뉴스에 헌법 재판관 후보 이미선의 주식투자문제로 시끄럽다. 그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난다. 주식 투자 할 수 있다. 법관이라고 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도라는 것이 있다. 이 미선은 그 정도를 넘었다.

그정도의 도덕성으로 헌법 재판관이 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미선은 보통사람은 아니다. 권력욕과 명예욕 그리고 돈욕심의 화신이다. 그런 것을 보면 가장 보수적인 인물일 것이다. 진보라는 가치는 권력욕과 명예욕이 아니라 대의명분, 인간에 대한 측은한 마음, 그런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주로 그렇게 권력욕과 명예욕 그리고 돈욕심으로 가득찬 사람들 중요한 직위에 임명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진보적 가치와 매우 어긋난다. 현정부가 하는 짓을 가만히 보면 겉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가장 보수적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나 할까?

주요 인사들을 검증하는 일은 조국 민정수석이 한다. 조국 민정수석은 강남좌파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다. 그는 강남이라는 지향점과 좌파라는 지향점을 두개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사문제는 묘하게도 조국의 그 양개 지향점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두개의 지향점에도 선후는 있다. 그는 좌파보다는 강남이라는 지향점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 말은 누구나 할수 있다. 그러나 행동은 다르다. 행동은 생각에 따라 이루어진다. 조국은 말은 좌파스럽게 했으나 행동은 강남스럽게 했다. 강남은 성북동이나 평창동과 다르다. 뭔지 모르게 강남은 성북동이나 평창동보다 기회주의석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추천된 많은 사람들이 강남 스러운 기회주의자 였다. 좌파에서 가장 경멸하는 말은 ‘기회주의’였다.

조국은 강남 기회주의 좌파의 전형인 것 같다. 그런 민정수석을 곁에 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까 ? 그나물에 그밥 ?

최근 하는 짓을 보면 다음 선거에서 자한당에 권력을 넘겨주지 못해 안달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부에 간첩이 있는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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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백운동 별서 이야기 2

백운동 별서는 산사가 아닌데 산사 편에 글을 쓰게 되었다. 자꾸 범주를 바꾸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냥 여기에 쓴다. 여행기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굳이 산사만 다니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오래된 옛것에 대한 정취를 느끼기 위한 여행을 한 것인데 하다보니 주로 절 주변을 다니게 된 것 뿐이다.

백운동 별서는 크게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담로 라는 분이 여기서 집을 짓고 한적하게 살았다고 한다. 하다보니 강진에 귀양온 정약용 선생도 들르게 되고 그리고 그 감수성으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초의선사도 여기저기 다니다가 와서 보고 그림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 백운동 별서가 대단하게 느껴진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대를 이어서 이렇게 가꾸어 왔다는 마음이 아닌가 한다. 사실 돈 만 있으면 백운동 별서 정도의 정원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뭐 그리 특별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좀 아늑한 장소에 네모난 담을 널찍하게 쌓고 그 안에 정자니 초갓집이니 하는 것을 띄엄띄엄 호젓하게 지으면 된다. 그리고 물길을 만들어 집안에 연못하나 만들면 된다.

백운동 별서를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이런 집을 지금까지 수백년동안 이어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서 무엇을 유지해 온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삶이란 것이 우리를 그자리에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역사적 격변을 수없이 겪지 않았던가 ?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그대로 과거의 유산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백운동 별서에서 내가 느낀 아름다움은 문과 건물의 배치였다. 건물의 배치가 매우 재미있다. 담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모두 다섯개 정도된다. 그중에 두개는 담을 끊어서 그냥 공간만 내어 준것이고 나머지 3개 중 하나는 솟을 대문이고 또하나는 그냥 대문이며 또하나는 쪽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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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로 이어지는 곳에 모두 각각 하나씩 공간으로 문을 만들었고 ㄴ 자 형의 담에는 각각 문을 내어 만들었다. 실개천으로 이어지는 곳은 솟을대문과 쪽문을 냈고 집앞의 언덕위로 올라가는 쪽 담에는 그냥 문을 하나 내 놓았다.

그리고 집안의 건물은 그 문으로부터 멀리 자리잡고 있다. 뒷쪽에는 기와집으로 그리고 앞쪽에는 초가로 지붕을 얹었다. 집안 터에 건물과 연못이 자리잡고 있지만 복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산만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건물터의 공간과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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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들어가보면 매우 편안한 느낌을 느낀다. 백운동 별서에 살았던 10대를 지나는 동안 그리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이렇게 편안한 곳에서 살아가는데 세상에 나가서 고생할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 거기가 무릉도원인데.


띠예(유튜버) 근황(2019년 4월 초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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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진 백운동 별서 정원의 담과 문

강진에 가서 꼭보아야 할 곳이 백운동 별서 정원이다. 호남의 3대 정원 중 하나라고 한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그리고 백운동 별서 정원이다. 얼마전에는 문화관광부의 명승지인가에 선정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백운동 별서정원에 갔을 때는 매우 추울 때였다. 별서정원의 뒷편 주차장에 따뜻한 차를 파는 분이 계셨다. 한 잔 마셨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이 조용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주변의 수풀은 푸른 색을 머금고 있었다. 조금가다 보니 주변의 돌이며 나무 그리고 하천들이 알게 모르게 사람의 손을 조금씩 탄 것 같았다. 정원이 건물밖에서부터 시작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백운동 별서라는 곳을 이야기만 들었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갔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아마도 소쇄원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하는 추측만 했다. 조금 걸어가보니 큰 돌들이 조그만 실개천 따라 여기저기 배치가 되어있었다. 겨울 가뭄 탓인지 물이 마른 실개천을 넘어 조금 가지 나즈막한 담이 나온다. 담을 따라 가니 바로 백운동 별서다. 내가 들어간 곳은 별서의 뒷담이었다. 별서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그 정원에서 나 혼자 적막함을 만끽했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담에 문이 없다는 것이다. 문은 담과 담이 끊어진 곳이었다.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소쇄원은 뒤편의 담이 아예 없다. 그래서 집의 경계를 뒷산으로 확장시켜버렸다. 그러나 백운동 별서의 뒷 담은 정원과 뒷산의 경계를 분명하게 만들었다. 다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만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점에서 자연미의 소쇄원과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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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방에 담이 만들어져 있었다. 정문격인 솟을 대문은 오른쪽 실개천 쪽으로 나 있었다. 그 곳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기 보다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했다. 개천 쪽에 난 담에 쪽문이 하나 나 있었다. 언제든지 그쪽으로 나가 숲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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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는 그냥 계획없이 들른 곳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무엇을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중에 백운동 별서에 십여곳 구경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에 가보았으니 날이 좋아지면 다시 한번 가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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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진 운주사 와불을 보다

날이 저물기 전에 와불을 보러 능선위로 올랐다. 산위에서 보는 운주사의 전경은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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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은 대웅전에서 오른 편에 있는 능선 위해 있었다. 왼쪽의 능선에는 탑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은 모습을 한 탑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한 10분 남짓 걸었을까 ? 마침내 능선위에 와불이 보였다. 가만히 가서 보니 원래부터 와불을 만드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설명해 놓은 것을 보면 그냥 불상을 만들어 세우려고 했으나 그냥 두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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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세우려고 했으면 미리 땅을 파서 숨겨진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미리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돌을 떼어서 조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와불은 그런 작업없이 그냥 새기기만 했다. 작업이 끝나고 세울 생각은 아예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불 주변을 다시 정으로 쪼아서 깨끗하게 정리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작업은 이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의문이 가는 것은 얼굴과 몸 그리고 옷의 선을 분명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의 재질 때문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형식을 보면 이 불상을 와불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마애석불이다. 통상 와불은 누워서 앞을 보지 하늘을 보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그 마애석불의 형식이 기존의 고려 마애석불과 많은 차이가 있다. 같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속리산 법주사의 마애석불과는 얼굴의 형태와 몸의 선이 다르다. 운주사 와불의 얼굴생김새는 매우 토속적이다. 와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운주사의 거의 모든 석불 얼굴 모습이 토속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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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산 정상에 불상을 만들어 놓았을까 ? 아마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부처님을 경배하라는 뜻 아니었을까 ? 그게 아니면 부처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 새가 아니었다면 삼라만상 전 우주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내려오는 길에 돌을 몇개 둥글게 조각해서 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북두칠성을 의미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칠성신앙을 도교의 칠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민간신앙인 칠성신앙은 도교의 칠성과 차이가 많다. 여러곳을 다니면서 보았지만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에도 북두칠성을 그려놓은 것이 많다. 도교의 칠성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칠성신앙을 도교가 받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산골의 밤은 빨리 온다.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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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진 운주사의 석불과 불탑의 의미를 살짝 비틀어 해석해 보면

조금만 있으면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서 서둘러 절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탑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동그란 모습의 탑은 별로 없다. 4각형 아니면 6각형 혹은 8각형의 탑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운주사의 탑은 둥근 모습을 한 것이 특색이었다. 그렇게 둥근 모습은 나로하여금 마치 인도의 탑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단순하게 실험적인 작품이 아니라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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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장에서는 저런 파격이 별 큰일이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와 같은 엄격한 왕조사회, 계급사회 그리고 신분사회에서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도는 여사일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기 운주사의 분위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당시와는 달랐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 다르다는 것이 중앙권력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불교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불교분위기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여기에서 기존의 모습과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 단위의 불탑이라는 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 가족단위 불탑이란 것을 만들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만 비틀어 보면 고려 왕조의 사상적 기반으로 민중의 삶을 도외시하던 불교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왕이나 귀족만 바라보지 말고 어렵게 탄압받고 살아가는 민중들을 바라보라는 일종의 경고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실험적 시도가 여기 운주사에만 한정된 것도 특이한 일이다. 운주사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실험적 시도라면 당연히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이곳에서만 한정된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운동, 문화건, 종교건, 정치적 운동이건 운주사에서 시작된 변화는 확산되지 못하고 이곳에서 그냥 사그라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확대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상상하는 만큼 넓어지는 것이니 나도 마음껏 날아 가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비트코인 관련 만우절 하니 ‘팔도 비빔밥’탄생 과정이 떠올랐는데…

올해의 4월 1일이 주는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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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우연히 스팀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심심풀이로 포스팅을 했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다. 그냥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블록체인이라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뭔가 크게 될 늠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처음에 스팀잇을 만든 사람들이 회사마음대로 포스트를 삭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무정부주의적 SNS를 만든다고 했을때 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던 내용을 올리기도 하고 정치에 관한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사찰에 관한 내 여행기를 정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다. 포스팅을 하다보니 이렇게 왔다는 것이다. 사실 여행도 글을 쓰기 위해 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하는 일을 좋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스팀잇을 하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퇴직을 하고 1년이 지났지만 지금이 오히려 더 바쁘다. 퇴직이전 몇 년동안은 직책은 높았는지 몰라도 크게 할일이 없었다. 조직의 특성상 중견일때가 제일 바빴다. 그런데 퇴직이후 자연스럽게 스팀잇을 더 많이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바빠졌다.

퇴직자들이 통상하는 것 처럼 친구들 만나고 등산가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생활이 훨씬 밀도가 있어졌다. 포스팅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이런 저런 강연도 쫓아 다녔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모임을 만들어 서로 연구하고 토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절에 가면 저건 절이고 저건 나무고 저건 불상이구나. 왜 우리나라 절은 다 똑같이 생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절에가면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되고 어떤 다른 것들을 보게될까 ? 이번에 가는 절은 그 이전에 갔던 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설레임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팀잇이라는 것이 SNS이다 보니 여러사람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스팀잇에 남아서 글을 쓰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심의 촛점을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퇴직을 하자 친한 친구가 한말이 있다. “자네는 그동안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살았는데. 이제 퇴직을 하면 자신의 울타리를 자신이 쌓아야 해.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을 거야”라고 했다. 그말이 뭔말인가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무슨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스팀잇은 내가 나의 울타리를 쌓아 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상에 살아가는데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 스팀잇에서의 활동도 세상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각자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남에게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각자 다 스타일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 삶의 울타리를 쌓아가는 것도 다를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울타리를 쌓아가려면 적어도 몇년간은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속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희미했던 것도 분명해지는 때가 있다. 이제까지 내 나름대로는 즐겁고 기쁜 스팀잇 활동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즐거움과 기쁨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퇴직한 친구들이 할일없다고 할때, 난 바빠서 죽겠다고 하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그런 기쁨을 준다. 스팀잇은.

이럭저럭 하다보니 거의 3년이 되었다. 3년간 거의 빼지 않고 글을 썼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힘이 있고 정신이 맑은 한 계속하고 싶다. 80중순에도 열심히 그림 그리고 글 올리시는 어머니 보면 앞으로 최소한 20년 이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비트코인 관련 만우절 하니 ‘팔도 비빔밥’탄생 과정이 떠올랐는데…

올해의 4월 1일이 주는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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