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이 전면에 등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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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탈북자들의 삐라 살포를 빌미로 남북관계를 파탄내겠다고 한다. 일전에 북한이 그런 행동을 하는 원인으로 자신들이 핵보유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의도의 일환이라는 점을 언급한 적이있다.

솔직히 말해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모두 다 미루어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우리가 예측하는 그 어떤 범위내에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계속 실패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의 입장에서 벗어나 가급적 다양한 측면에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중에서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김여정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김여정은 대남정책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제까지의 북한의 행동과 비교해 보면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특히 독재국가에서 아무리 형제자매라도 국가통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통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여정의 등장을 단순하게 파악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반드시 그 배경에 뭔가가 있는 법이다. 이런 저런 보도를 보면 김여정이 김정은의 후계자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김정은과 김여정의 나이차이가 몇살 되지도 않는데 후계자로 삼을리는 없다.

김정은은 미국으로부터 언제 어떻게 피살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에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폭격기가 한반도 가까이 접근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김정은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자신이 죽더라도 북한을 계속해서 통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미국에 동일한 수준의 보복을 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김정은과 김정은을 보좌하는 보좌진들은 김정은 유고상황까지도 고려하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은 이제까지 항상 외줄타기와 같은 처지였다. 항상 최악의 상황이었고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김여정이 강경한 정책을 이끌어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김정은에게 몰리는 관심을 김여정에게 분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을 위한 일종의 카케무사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여정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 앞으로 북한이 결정적인 단계에서 과감하게 행동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미국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김정은을 제거하는 방안까지도 강구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그런 상황까지 감수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살해되더라도 통치공백없이 곧바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김여정의 전면등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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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의 김종인 비판, 자살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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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종인의 행보에 관심이 많이 간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고 이끌어 가는 능력과 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멧세지가 힘이 있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것 저것 보이는 것마다 다 한마디씩 하면 말의 힘이 떨어진다. 최근 김종인이 보여주는 힘의 배경에는 절제와 집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인이 미래통합당의 기본 방향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당연히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 미래통합당 중진들은 그런 김종인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김종인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형성되는 것 같다. 정치라는 것이 워낙에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견 당연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현재 미통당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최근 원희룡, 장제원 등을 중심으로 드러나고 있는 김종인에 대한 반발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들은 마치 보수라는 것이 대단한 이념적 기반과 가치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수의 의미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보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미 국민들에게 수차례 심판을 받고 고꾸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는 없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장제원이나 원희룡 모두 실력으로 따지면 김종인 발바닥도 따라가기 어렵다.

원희룡의 경우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운운하면서 비판을 했다. 원희룡은 기본이 틀렸다. 아무리 정치적인 입장에서 김종인을 비판하고 싶다고 해도 자기 아버지 뻘인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김종인은 절대로 원희룡만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국가를 이끌만한 재목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원희룡이 그런 이야기를 할만한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원희룡이야 말로 새누리당을 떠났다가 바른미래당으로 갔다고 다시 탈당하고 한참을 무소속으로 있다가 얼마전에야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돌아 온 사람이다. 원희룡 자체가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희룡이 김종인을 비난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김종인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대선후보를 찾겠다고 했는데 당내가 아니라 당외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바 있고 40대 경제전문가도 찾기 어렵다고 표명했다.

김종인이 유일하게 가타부타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사람은 윤석렬이다. 아마 원희룡과 장제원등은 윤석렬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인을 비판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윤석렬이 미래통합당으로 들어올 수 있는 끈을 원천 차단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래통합당이 다음 대선에서 뭔가를 해보려면 윤석렬 처럼 상징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의 미래통합당 내부 사람으로는 차기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원희룡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박근혜의 뒤를 이어 3위를 했다. 원희룡은 과거의 경험때문에 자신이 아직도 개혁과 변화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이후 십수년이 지났다. 지금의 원희룡은 그저 그렇고 그런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다. 인물과 사람은 시대가 만들어 내는것이기 때문이다.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간다고 했다. 요즘 김종인에게 눈이 가는 이유는 한쪽 날개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종인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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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플로이드의 죽음과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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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혼란을 초래한 흑인 플로이드의 사망사건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예술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그중에서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회화에 관한 것들이다. 예술은 여러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음악과 같은 예술은 매우 권력지향적이며 체제지향적이다. 음악가와 작곡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국뽕과 비슷하다. 모두들 자기 나라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양에서 음악이라는 것이 원래 권력자들의 후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한국의 민속음악은 그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서민의 애환을 다루거나 삶의 고통을 토로하는 부분도 많다. 그렇게 본다면 서양음악보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훨씬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19세기이후 미술은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안니었다.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작업이 미술 작업이었다. 각종 수없이 많은 유파들도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기존의 사고방식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이 그림의 방식이라는 틀을 깨고 사회적 문제에 도전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미술을 통해 우리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틀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다.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회적 문제에서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성애 문제였다. 동성애자들이 당하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미술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전시되었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동성애의 문제를 회화분야에 끌어들인 사람이 아닌가 한다. 미술이 금기를 깨는 역할을 한다면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분야가 있다. 바로 인종문제다. 이제까지 미술에서 인종문제의 금기를 깬 작가나 작품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서양사회에서 인종문제가 동성애보다 더 금기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흑인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 금기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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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불쾌한 도발적 언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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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강경한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의 날선 담화에 이어서 조선통신사가 9일 남북간 각종 대화채널을 모두 단절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번에 단절하겠다고 하는 연락선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통신연락선, 남북군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과 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과 청와대이 직통통신연락선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과격한 언사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호전적이고 과격한 언사는 북한이 자신들의 선전선동 목적 달성을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남한 주민들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전술이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강력한 언사를 하는가 생각하기 보다 폭력적인 말 그 자체에 함몰되어 버린다.

이번 북한의 언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탈북자들의 삐라때문에 이렇게 난리를 부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주민들은 거의 실시간대로 남한의 방송을 다보고 있다.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통제사회는 맞지만 폐쇄적인 사회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한다면 탈북자들의 삐라 때문에 남북관계 전반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탈북자의 삐라 살포는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핑계거리에 불과 한것이다.

그럼 무엇때문일까? 남북관계를 일정정도 긴장관계로 몰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북관계는 북한에게 있어서 전술적 차원에 불과하다. 지금 북한의 최고 최대 목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대화를 통해 핵보유국을 인정받기 어렵다면 구태여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에 일정한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중국 때리기는 트럼프가 재선고지를 밟기 위한 방책이다. 그렇게 본다면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 북한은 가급적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물론 11월 미국 대선이 1차적인 목표이고 지금이후 상황에 따라 북한의 입장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1월 이전에 북한은 핵보유를 위한 전략적 시도를 할 것이다. 미국의 태도에 따라 대화가 될 수도 있고 핵실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손을 잡겠다고 한다면 북한은 대화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변화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이 채택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는 미국 국민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핵무기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 최근 중국과 관계를 가까이 하는 것도 사전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북한과 중국이 가깝다는 오해다. 북한은 절대로 중국을 믿지 않으며 기대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두번째 정지작업은 남한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한 호전적인 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체제까지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하겠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군사합의 같은 것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완전 제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음에 어떤 방안을 모색하려면 뭔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구나 남북군사합의는 북한에게 손해라고 하기 어렵다. 지금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과 재래식 군사력 경쟁까지 해나갈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을 정리해보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 정부가 탈북자들의 대북삐라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별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애시당초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정부가 성급하게 탈북자들의 삐라살포를 금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한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하수에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국회에서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할지 진지하게 논의해볼 것이라는 정도의 대응이 북한입장에서 훨씬 더 신뢰할 수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서서히 긴장을 고조하면서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게할 핵무기 실험을 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에게 미국과의 관계는 전략적인 수준이고 남한과의 관계는 전술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한과 더 이상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얻는 것 없이 무작정 군사도발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북한의 과격한 언사에 불쾌해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을 북한이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흥분하고 불쾌해하는 것은 당하는 것이다. 그런 도발적인 언동에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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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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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몇몇 사람의 행태를 보면서 세상이 항상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정치인되어 국회에서 국사를 다루려면 세인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존경과 뿌듯함보다는 얼굴이 찌푸려진다.

윤미향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수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윤미향의 행태를 고발해왔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안부문제로 모금한 돈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받은 돈을 정치인들에게 뿌렸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 시켜서 돈을 뜯었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 일제보다 더 악랄한 짓 아닌가?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피해자의 피를 빨아 먹은 것이다. 거머리와 뭐가 다르나?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 처럼 행동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더 괘씸하다. 윤미향에게 향하는 의혹을 제기하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만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윤미향이 과거에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열심히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랬었다면 그것은 칭찬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러하고 해서 경리부정을 저지르고 코묻은 국민헌금을 유용하고 정치권에 살포했다는 혐의를 과거의 공으로 모두 씻어 버릴 수는 없는 법이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들의 주장처럼 과거에 잘한일이 있으면 잘못된 일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면, 전두환도 처벌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나.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대통령도 잘못했다고 감방에 가두었다. 그런데 왜 윤미향은 감싸고 도는 것일까?

양심적인 회계사인 김경율은 정의연의 장부가 회계감사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엉망이라고 했다. 회계장부가 엉터리라는 이야기는 부정과 부패가 개입했다는 것은 의미한다. 윤미향이 어떤 존재이길래 그토록 감싸고 도는 것일까? 현직 대통령도 감방에 집어넣었는데 별것도 아닌 윤미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 잘못한 것도 자기편에 서면 잘한 일이 되는 세상에 살고자 그 추운 겨울에 추위어 떨면서 광화문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극성 지지자들은 이번 문제를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지지자들을 꾸짖지 않는 것은, 그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동안 추상같이 내치던 검찰의 수사가 왜 이렇게 미진한지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하고 나니 검찰도 눈치보고 있는 것같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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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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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기자는 김완이라는 사람을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해서 기사를 실었다. 죽기전 밥상에 구직기사를 펴놓고 케이크 한쪽으로 마지막 식사를 한 사진을 올려 놓았다. 눈물을 흘렸다.

아래 기사를 한번씩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6/2020060600604.html?utm_source=facebook&utm_medium=share&utm_campaign=news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살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 타살이다. 이리 저리하다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강요당한 선택이 자살이기 때문이다. 한때 자살을 아노미적 현상 때문이라고 한 에밀 뒤르깽의 분석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그것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꽉막혀 있는데 다른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기사를 읽어가는 중에 전기와 수도를 끊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리저리 끝까지 견디다가 전기와 수도가 끊어지면 극단적인 행동을 결행한다는 것이다. 전기료와 수도료를 몇달동안 채납을 하면 전기와 수도를 끊는다. 오죽하면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할까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하면 전기도 쓰지말고 수도도 쓰지말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몇달째 내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사회복지시설에 연락해서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는 사람을 죽이는 곳이다. 매일 몇명의 노동자들이 고층건물에서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불에 타서 죽는다. 지하의 맨홀에서 질식되어 죽고 맨홀 갇혀 물에 빠져 죽는다. 지하철에 끼여죽고 석탄 벨트에 끼여죽는다. 그렇게 죽어도 우리사회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김훈 선생이 혼자 슬퍼하며 글을 쓸 뿐이다. 우리는 잠시 그의 슬픔과 분노를 같이 하지만 잠시 미안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공분만 함께 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대부분의 고독사가 경제적인 이유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우리사회는 술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사회다.

많은 경우 그렇게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은 요령도 없고 약삭 빠르지도 못한 것 같다. 요령있고 약삭빠르면 그런 상황까지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아이들에게 약삭빠르고 교활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해법. 너무나 많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고 조금만 관대한 시선을 가지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 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해결을 거부하는 자들은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망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인줄 알았는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 아니었던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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