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마치 우리가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냉전이라는 현상은 외교사에 있어서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비록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냉전은 세계외교사에 있어서 매우 예외적이고 특수한 현상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간의 갈등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냉전이란 서구인들의 사고와 관념에 있어서 십자군 전쟁과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냉전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냉전의 최대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냉전이란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패권투쟁이었다. 미국과 소련이란 단어 속에는 수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자본과 인민, 제국주의와 민족해방, 전체주의와 공화주의 등등 칼로 양분하기 어려운 가치들이 서로 중층적으로 뒤섞여 있다.

이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에 바탕한 냉전이 종식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냉전이 남긴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미중패권경쟁은 냉전과 다르다. 이미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다. 아직 공산당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기보다는 왕조국가라고 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을 모두 버렸고, 단지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북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왕국이나 마찬가지다.

미중간 패권경쟁을 보고 있으면 외교가 냉전이전 유럽적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아마 앞으로는 국가의 행동이 계급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냉전이전의 유럽적 상황이란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철저하게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세계는 대외정책의 기준이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국가의 이해관계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결국은 경제적 활동과 성취로 정리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냉전적 질서속에서 발전을 했다. 세계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적 상황에서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냉전은 끝났고 모든 것이 이해관계에 의해 재단되고 있는 세계가 왔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을 해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당한다. 우리는 아직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직 우리 주변에는 냉전적 유산이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상황을 바꾸고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발전을 하지 못한다.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은 퇴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미국편에 서야 한다는 둥 중국편에 서야 한다는 둥하는 이야기들을 한다. 모두 틀린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편에 서면된다. 무엇이 가장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서 판단하면 된다. 중국을 버릴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의 경제적 미래는 없다. 미국을 버릴 수 있는가? 미국은 세계체제의 정점에 있는 국가다. 미국을 버리면 우리는 망한다. 한때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장했던 사람들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무엇이 우리 이익인가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에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우리의 이익이 저절로 담보되지 않는다. 우리의 이익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는다. 아무리 미국에 많은 방위비를 내고 사드를 배치하고 호르무즈에 함대를 보내더라도 우리의 이익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미국에 줄 수 있다. 그럼 그 대신 무엇을 반대급부로 받아 와야 한다.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무엇을 받아 왔나? 아니 받으려고 생각이라도 해보았나 ?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고 호로무즈에 군함을 보내면서 잃어버렸거나 잃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많다.

냉전이후 지금의 세계에서는 내가 주는 것과 얻는 것의 균형을 맞추어나가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것에 냉전이후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이제는 누구도 우리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냉전때는 블록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한미일 체제에 포함되어 있다하더라도 미일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한미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줄것이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계산이 분명해야 한다. 그저 미국하고 일본과 잘 지내면 좋겠지라는 생각은 위험 천만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무엇을 주고 얻을 것인지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 중국은 우리 최대의 교역상대국이다. 중국 덕분에 먹고 사는데 중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일을 미국과 일본이 하라고 한다면 바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상황에서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기 어렵다. 핵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전쟁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북한도 전쟁을 일으키기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길 원치 않는다 그리고 전쟁준비를 도와주지 않는다. 지금의 북한이 상당한 정도의 준비없이 전쟁을 단독으로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쟁도 뭐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먹고 죽을 것도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도 북진통일이니 적화통일이니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어리석다.

남북한도 무엇이 서로에게 이익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서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부터 없애 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통일이 궁극적인 목표인지는 모르겠다. 살다보면 통일이 되는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남한과 북한이 서로 무엇이 이익인지를 생각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포스트냉전의 남북관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남북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한반도기를 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라는 것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한 낙관은 비극의 서장이 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일본의 경제침략을 극복하기 어렵다.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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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일본의 경제전쟁, 한국과 일본 무엇이 다른가?

일본은 한국보다 근대화의 역사가 빠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했다. 메이지 유신은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일본국민들은 서서히 국민국가의 국민이 되어 갔다. 통상 국민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은 계기가 있다. 그 계기는 전쟁인 듯 하다. 아마도 일본은 중일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국민으로서의 자각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러일전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반면 한국은 근대국가를 스스로의 힘으로 수립하지 못했다. 해방과 정부수립의 과정이 모두 열강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 힘으로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해방이후 치열한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다. 대외전쟁이 아니라 내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달리 지배층의 각성도 없었다. 각성은 고사하고 대한제국을 팔아먹은 것은 왕과 지배층이었으니 뭐라고 할 말도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민중들은 일본의 민중들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동학혁명과 4.19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혁명을 통해 민중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왔다. 일본은 단 한번 메이지 유신으로 사무라이들이 역사를 바꾸었다면 한국에서는 민중들이 정치적 변혁을 만들어왔다.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아와 비아의 구분과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한국전쟁은 동족끼리의 전쟁이었으니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우리 국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나가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듯하다.

항상 역사과 정치적 변혁을 추동해온 한국의 대중들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보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인 것이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아직까지도 메이지 유신 당시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반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아직까지도 제대로된 사명감과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 지도층들은 절반은 외세의존세력이고 절반은 민주건달에 불과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친미, 친중, 친일, 게다가 종북까지 외세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노론의 후예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민주화를 부르짓던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면에서 비록 19세기적 문제의식이나마 꾸준하게 직진하는 일본의 정치인들은 우리네 정치인들보다 몇배는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민중이다. 그들은 정치적 변혁의 주인이었다. 한국의 대중들은 경제전쟁을 통해 비로소 국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대중들은 한번도 역사적 변화를 추동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지도자들을 순종하면서 따랐을 뿐이다. 지금 아베정권이 저렇게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일본시민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중들은 역사적 변혁의 주체가 된 적이 없다. 그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들의 혐한 감정을 고려해서 일본상품불매운동이나 일본안가기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지일파 학자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 연대를 주장한다. 나는 그것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 스스로의 각성이 없이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일본은 대중들이 정치변혁의 주인이 될때 비로소 보편적 인류역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은 패전을 당하면서도 정치적 변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금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한계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한국사회의 한계는 정치지도층들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일본은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한국은 정치인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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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일본 평화헌법 개헌을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필요한 이유

미국이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자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드 배치이후 한국정부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가입하여 중국에게 대항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했다. 미국이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안보판을 짜려고 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중국에 해준 약속과도 적지 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정부가 중국에게 해준 약속은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그런 약속도 사드를 너무 성급하게 배치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약속해줄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다. 중국에게 약속을 해주기 이전에는 한미일이 사실상 군사동맹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중국에게 약속을 해주면서 상황이 달라져버렸다.

만일 사드배치 이전에 한미일 군사동맹의 체제가 더 갖추어져 있었다면 우리도 중국에게 그런 약속을 해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는 한일관계 관리를 잘못한 미국과 일본의 책임도 크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잘 정리했으면 한일간 매우 긴밀한 군사관계가 맺어졌을 것이다. 미국도 그동안 일본을 중요시 하느라고 한국사회에서 역사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살펴보지 않았다.

미국이 바라는 일본의 재무장은 개헌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본국민들에게 일본이 재무장해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상황조성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조성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독도문제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같은 것이다.

일전 동해에서 우리 함정에 대해 일본이 초계기로 위협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것도 평화헌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독도에서 훈련을 하는 것도 일본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연례적으로 하는 훈련도 국민여론 고려해서 언론에 발표하면 일본에 이용된다.

일본 국민들에게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당연히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도 일본을 재무장시키기 위해서 한반도에서의 위기상황을 이용하려 할 수 있다. 미국이 유엔사회원국에 일본과 독일을 포함시키려고 한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유엔사 회원국은 원래 한국전쟁 참전국이다.

최근 들어 미국은 유엔사참전국의 범위를 넓히려고 하고 있다. 독일도 포함시키고 일본도 포함시키려고 했다. 미국이 유엔사참전국에 가장 포함시키고 싶어하는 국가는 당연히 일본이다. 결국 일본이 유엔사 참전국에 포함되어야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안보체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엔사에 참가함으로써 중국은 물론 북한까지의 상황도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북한이 수사적 표현을 넘어서 실제 군사적 도발까지 감행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재무장을 도와주는 이적행위를 스스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재무장을 최대의 정치적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아베정권에게 있어서 남북화해를 추구하는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일본은 평화헌법을 폐기하기 전까지는 남북화해정책을 추진하는 어떠한 한국정권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확률도 많다. 특히 태극기 부대와 같은 대규모 군중 행사의 배후에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극기 부대에서 서슴없이 일본을 지지하고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연관성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게 최대한 모든 양보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에게는 뼈가 아프다. 혹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미국의 푸들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남북화해협력 사업을 위해 미국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과의 갈등에서 일본편을 들어 버렸고 남북화해도 물건너지나가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주장할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주장하지 못하면 아무리 양보를 많이 해도 얻어야 할 것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요며칠간 미국이 북한과 대화보다는 강압으로 나가는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던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게 위협이 된다고 밝힌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지금의 상황은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의 정도가 상당수준으로 올라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막연한 낙관은 비극의 서장이 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일본의 경제침략을 극복하기 어렵다.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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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일본의 경제침략 그리고 시민과 시민단체의 유리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거와 다른 양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변화과정 고비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시민단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상품불매운동이나 일본안가기 운동은 누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통의 시민들이 sns에서 일본의 행태에 분노를 일으키면서 자생적이고 자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정부가 일본의 조치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한 것도 시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던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이번 일본상품불매운동이나 일본안가기 운동에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법 연구회 같은 집단도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민노총의 활동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단체나 집단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사회는 변화의 단계마다 이를 움직여나가는 세력들이 있었다. 재야단체들이 그랬고 시민단체들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단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문재인 정부들어 정치참여가 늘면서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문재인 정부들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국가운영에 많이 참여했다. 시민단체란 경계에 서 있어야 그 힘을 발산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직접 정부운영에 참여해버리면서 그 힘을 발산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정부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진보적 정부에 참여해버렸으니 어떻게 비판을 하거나 정부의 의도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부는 이미 일본과 타협하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하는 것은 포기한 것같다. 정부가 그런 정책방향을 택하고 있는데 어떻게 시민단체가 정부정책과 반대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시민단체가 사회변혁의 주도권을 한번 놓치면 다시 활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달리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 지식인이 가능한 것은 정부의 운영과 참여에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것 같다. 자신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지식인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일본의 체계적인 공작도 적지않은 역할을 한 듯하다. 우리 대학사회는 사사가와 재단의 돈을 마구 받았다. 최근 친일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지식인들 대부분이 사사가와 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포섭되어버렸고,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은 정부에 참여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이 과거와 달리 최근 시민들의 움직임에 일정한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구심점 없는 움직임은 한계에 봉착한다. 운동으로 승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민들의 반일 운동은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은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데에서 나온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라는 정체성을 일본의 경제침략을 통해서 확인해 나가는 것 같다.

이럴 수 있는 것은 누적된 우리 국민들의 역량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측면도 있다. 우리국민들은 불의에 눈감지 않는 성향을 보였다. 근대사에서의 동학혁명을 비롯하여, 4.19혁명, 광주항쟁, 6월 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모두 저항의지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반아베 운동도 그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움직임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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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미국이 방위비 6조원을 요구했다는데..주한미군 규모를 줄이면 어떨까?

광복절 이후 한일간 징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일차관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한다. 양자회담을 하지 않고 제3자 중재를 고집하던 일본이 입장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일본이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한일양국이 상호 손해만 가는 경제전쟁을 그만 둘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야 해 나가기를 바란다. 기본적으로 국가간에는 어떤 대화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럴 것 같으면 우리정부가 왜 일본이 8개월전부터 요구하던 양자협의를 거부하다가 지금같은 사단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일본이 양자회담을 하자고 할 때 그냥 응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지도 않을 수 있었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우리는 상당히 많은 손해를 보았다. 한일간 싸움에 제일 이익을 본 것은 미국인 듯 하다. 먼저 미국에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함정을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방위비도 인상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듯하다. 우리 정부는 방위비 인상과 관련된 논의가 없었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한국이 인상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트위트를 올렸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정부는 비밀리에 약속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가? 당장 재선이 목에 걸려 있으니 자신의 업적이 될 만한 것은 마구 자랑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강경한 입장이었던 일본이 그동안 거부하던 양자협의를 하게 된 것은 미국의 중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방위비도 증액해주기로 약속했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도 약속받았으니 얻을 것은 다 얻었다. 아마도 미국이 중재를 했다면 그것은 한국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기 목소리가 크게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자신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니 개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기를 미리 선언했더라면 우리가 호르무르 해협에 파병하거나 방위비 인상 약속같은 것은 해주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를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특히 국가간의 일은 더 하다. 미리 살펴서 대응하면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우리정부는 미리 대처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점에서 우리 정부는 최하의 역량을 보인 것이다. 미리 문제를 해소하지도 못했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어마어마한 보상을 지급했다. 가만 보면 이번 한일간 경제전쟁에서 악덕 변호사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일로 한일관계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일간 직접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심각하다. 결국 이런 일은 재발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 정부나 산업계가 일본의존도를 줄여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정리다. 중소기업을 제대로 대우해주고 키우는 것이 재벌기업의 생존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기회에 인식했으면 한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 단가후려치기 하는 기업이 있으면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것이다.

방위비를 6조가량 올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방위비문제로 시달려야 할까? 아마 직접 지불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기지사용료 등등을 포함하면 우리가 부담하는 총비용은 6조원 훌쩍 넘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것 처럼 방위비를 이렇게 올려주다가는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댓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자주국방이란 말을 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자주국방이란 말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안보는 스스로 감당하고 동맹은 보완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안보와 국방의 기본은 국민들이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일 경제전쟁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보여준 것같다.

방위비 문제가 계속되는 것은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하는데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동맹의 의미는 얼마나 많은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한미동맹을 맺고 있다는 그 자체에 있다. 우리 국민들이 미국에게 깡패에게 세금내는 것 같은 기분을 가지게 하는 것이 동맹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미국에게 안보를 의존하는 정도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주한미군의 숫자를 조금씩 줄여나가서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부담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3만2천명이 와있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2만8천여명이다. 절반정도로 줄여보면 어떨까?

한국의 안보에 한미동맹이 중요한 것이지 주한미군이 얼마나 주둔하고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제2의 에치슨이 어쩌니 저쩌니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전쟁직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서로 비교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경제대국이다. 게다나 군사력도 어마어마하다. 북한도 6.25때처럼 남침했다가는 곧바로 패배하고 무력통일 당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재래식으로는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도 다르다.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경쟁하던 냉전시대가 아니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경쟁을 치르고 있지만 북한을 사주해서 남한을 공격하게 할 상황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 주한미군의 규모를 줄여나가면서 주둔비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호르무즈해협 해군함정파견, 국회가 제역할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호르무즈해협에 해군을 파견하는 것을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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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문제, 청와대와 국회의 역할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다. 공화국이란 각각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독재나 전체주의로 빠지지 않는 국가라는 뜻이다. 그런의미에서 전체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라고 하겠다. 민주주의국가도 독재가 가능한가? 그렇다. 당장 북한도 인민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독재를 하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를 ‘우리 공화국’하지만 사실 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공화란 어떤 세력이나 힘 그리고 조직이 다른 세력이나 힘 그리고 조직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상태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함정을 파견하는 문제에 대한 청와대 안보실장의 답변은 과연 우리나라가 공화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권한 기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국회의원들이 호르무즈해협에 우리 해군함정을 보내려고 하면 국회의 동의절차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정의용 안보실장이 과거에 해군함정을 보낼때 국회의 동의를 얻었고, 배치지역만 바꾸는 것이니 추가로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거기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뭐라고 강력하게 대응한 것을 보지 못했다.

해군함정의 배치지역을 호르무즈해협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란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들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해적으로부터 유조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이란과 군사적 충돌도 발생할 수 있다. 이란은 우리에게 해군함정보내지 말라고 협조 및 협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작전과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유조선을 지키는 것과는 그 임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일 이란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전쟁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해군함정의 임무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국회에서 파병의 목적이 바뀐 것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

우리 함정을 파견하더라도 지휘관계에 대한 정리도 있어야 한다. 우리 해군을 외국에 보내면서 지휘관계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당연히 미해군과 협조관계인지 아니면 작전지휘를 받는 관계인지 분명하게 정했어야 한다. 지금처럼 뭐가뭔지 모르게 군대를 보내면 안된다. 협조관계가 아니고 작전지휘관계를 받는 관계로 보내면 매우 위험한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장병들의 안전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과연 청와대가 그런 점까지 고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청와대는 귀찮으니 과거의 동의로 퉁치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그런 청와대의 요구를 수용하면 안된다. 당연히 외통위나 국방위 차원에서 검토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지금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매우 심각하다.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이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보내라고 하는 것은 유조선의 안전한 항행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핵문제로 비롯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다. 지금도 미국이 이란과 핵합의를 파기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핵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 분석가들은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란은 만만한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이란과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경제적 자산이다. 그런 국가와의 관계를 청와대 안보실장이 과거에 국회가 동의했으니 추가적인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공화주의 정신에 어긋난다. 당연히 국회의 재심의가 있어야 한다.

군대를 보낼것인가 안보낼 것인가는 국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행정부는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문제는 기본에 대한 고민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호르무즈해협에 우리 함정을 파견하는 문제가 그렇다.

만일 미국도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유조선의 안전한 항행을 위해서 군사적인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면,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유엔에서 평화유지기능을 발동하거나 아니면 나토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니면 호르무즈해협으로 유조선을 많이 운행하는 국가끼리 연합사령부를 만들어 안전한 운항을 위한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란의 핵합의 문제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국가들을 참가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면 지금처럼 호르무즈해협 안전항행을 이유로 타국의 해군함정을 작전에 참가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막연한 낙관은 비극의 서장이 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일본의 경제침략을 극복하기 어렵다.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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