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퇴이후 상황, 정치인의 책임

조국 사태이후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조국이 사퇴하고 나면 그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조국의 임명과 지지 그리고 사퇴는 정치적 결정과정이다. 조국이 완주를 하기 어려운 것이 뼌히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약 3개월 동안 국정을 혼란으로 몰아 넣은 것은 당연히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청와대 참모진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대통령이 결심했으니 나는 모르겠다고 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면 안된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대신져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정치 그렇게 했다. 그런 정치적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곧바로 대통령이 지게 된다. 박근혜가 탄핵당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도 청와대 참모들이 스스로 대통령을 대신해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더라도 너무 늦게 졌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공격이 집중되었다.

현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은 박근혜의 청와대 참모보다 더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결정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퇴를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치 남의 일보고 있는 것 처럼 해서는 안된다.

조국의 임명을 지지하고 그를 지원했던 정치인들도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범여권의 거의 모든 중진 정치인들이 조국을 지지지했다. 이낙연 총리,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 내표, 유시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장관 심지어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까지 모두 조국의 임명을 지지했다.

정치인이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조국이 불명예스럽게 마치 도망가듯이 사퇴하는 상황이 되었으면 당연히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른 과실은 자신이 진다. 시장에서 조그만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는 상인도 결정에 따른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져야 한다. 손실을 짊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 자한당이 민주당을 초월하려는 기세로 올라가는 것은 민주당 사람들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아하니 이낙연 총리를 당으로 불러서 이해찬을 대신하는 비대위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문재인 주변의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낙연도 조국문제의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낙연은 총리로서 각료에 대한 제청권을 가지고 있다. 조국의 임명은 이낙연 총리의 제청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이 제청한 조국이 중간에 낙마했으면 이낙연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자리를 바꾸어서 민주당을 혁신한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주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만 하다. 아마도 이낙연을 앞에 내세워서 호남의 민심을 붙들려고 하는 것이리라. 만일 호남사람들이 이낙연을 보고 민주당이 이런 상태로 그대로 가는데 지지를 한다면, 호남은 스스로 왕따를 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남은 스스로 사망신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낙연 총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옳다. 지금은 이낙연 총리가 당으로 가서 쇄신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때다. 어떻게 그런 것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국의 사퇴가 언론과 검찰의 결탁에 의해 무고한 일가족이 무참히 짓밟힌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국을 사퇴시킨 대통령과 여당이 모두 비겁한 일을 한 것이다. 만일 조국과 그 일가가 무죄가 된다면, 무고함에도 여론에 떠밀려 조국같은 위대한 개혁가를 내다 버린 문재인과 청와대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인은 순간순간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최근 민주당에서 정치인같은 사람을 딱 한사람 보았다. 금태섭의원이다. 오로지 그 한사람만 일관된 윤리적 가치와 정치적 비젼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금태섭과 박용진 등 몇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원직 사퇴하고 물러나야 한다.

떨어지는 지지도를 만회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해야 한다. 대충 사태를 무마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 목위로 떨어지는 칼날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손가락으로 잡으려다가는 그 중력에 내목이 짤린다. 내 팔을 목에 대고 뼈로 칼날을 막아야 한다. 팔하나는 완전하게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구할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칼날이 처음에 떨어지려고 할때 재빨리 잡았으면 손가락 두개로도 칼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 칼날이 한참을 지나서 내목에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면 내 두팔을 모두 내놓아도 그 칼날이 내목을 치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조국 사태가 발생했을때 기를 쓰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한 일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으니 어리석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조금만 더 지나면 정권은 넘어갈지도 모른다. 자한당으로. 뼈를 깍는 혁신이 없으면 민주당은 해체되고 대통령도 탄핵될 지 모른다. 이미 블룸버그 통신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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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together 를 위한 첫번째 움직임

똑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소위 POB라고 하는 개념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약 3년동안 해보고 안되면 틀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직 스팀잇 세계에서는 거기에 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보상을 저자와 큐레이터로 50대 50으로 나눈 것은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저자에게 75%를 몰아주면 모두가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글이 몰리게 하려면 규레이터에게 75%를 주고 저자에게 25%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큐레이터는 정말 좋은 글에다 보팅을 할 것이고 그럼 보팅도 좋은 글에 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팀잇은 좋은 글이 많은 보상을 받는 구조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념적인 POB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기존에 작성한 데이터를 찾아내는 색인기능도 없는 스팀잇에서 무슨 POB를 주장하나? 그러려면 실질적으로 작성된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나 먼저 구상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도움되지 못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3년동안 글을 썼지만 그것으로 누가 책을 냈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고 그것으로 자료집을 엮어냈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제가 그렇게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저는 POL이라고 생각한다. Proof of Loyalty다. 지금까지 스팀에 남아 있는 분들은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충성심과 의리를 바탕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스팀에서 탈피해서 현실세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협동조합이라는 이야기로 했다.

현대사회는 매우 표피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그래서 여기서라도 오랫동안 서로 부디끼면서 지내왔으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는 곳으로 키워가는 것이다. 마침 보상체계가 50:50으로 바뀌었으니 주고 받는 것이 손해보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손해보고 계속하라면 못하는 법이다. 한번은 몰라도 그것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겠는가?

협동조합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서인지 스스로 생산한 물품을 판매하겠다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물건을 찾아서 가급적 싼 값에 공동구매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스팀잇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우습기도 하다. 마침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이야기를 했더니 보령에 메밀을 제대로 만드는 제분소가 있어서 가 볼 예정이라고 하면서 같이 가자한다. 조금 있으면 따라 나설 예정이다. 원래 패션쪽에서 일하는 친구인데 제가 이야기를 했더니 주선을 해준 것이다.

We-together라고 기치도 올렸지만 그동안 아무런 진척도 없었던 것은 제가 평생 그런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뭔가 해볼 생각이다. 급하게 서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범위를 넓히다 보면 뭔가 되지 않겠는가? 좋은 음식을 찾아 다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

한의사하는 친구에게 그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더니 요즘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음식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한다. 당장 입을 자극하는 음식을 찾는데 그런 것들이 모두 건강에 나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넓혀 나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며칠전에는 we-together라는 태그를 처름 만들었고 여러분들에게 제시했다. 이번에는 찾아 나선다. 다녀오면 포스팅을 올리드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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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정치적 분위기의 변화를 느낀 것은 노무현 때부터다. 노무현 당시의 대선은 그 이전과 상당히 다른 것을 느꼈다. 소위 ‘노사모’라는 것이 생겼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두사람은 모두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이상과 비전에 공감을 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무현과는 매우 달랐다. 사람들은 양김의 개인적인 매력보다는 가치를 지지했다.

노무현 당시의 대선은 일종의 팬덤현상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노사모’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노무현은 연예인과 비슷한 형태의 지지를 받았다. 마치 ‘오빠 부대’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우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이후 한국정치는 이념과 이상 그리고 가치보다는 개인적 매력을 중심으로 하는 팬덤현상이 지배한 듯 하다.

보수정당도 그런 현상을 띤 듯하다. 박근혜도 노무현과 비슷한 방법을 이용했다. ‘박사모’가 만들어졌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파악할 틈도 없었다. 그런 현상을 이미지 정치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라는 사람의 본질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국민들을 지배했다. 박근혜의 탄핵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박근혜 뒤를 이은 문재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위 문빠라고 하는 개인적 팬덤층이 형성되었다. 문빠라고 하는 집단은 그 이전의 노빠들보다 훨씬 그 힘이 강력해졌다. 노무현때는 팬덤을 통해 대통령을 만들었다. 그러나 문빠의 시대는 팬덤들이 문재인을 움직이는 상황에 까지 오게 된 듯하다.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면서 문빠와 조빠가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빠보다는 조빠가 훨씬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았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미래권력이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 조빠들에게 지금의 문재인 정권은 조국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인큐베이터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조국사태로 인해 드러나 조빠들은 전통적인 도덕과 이상 가치와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평론가들이 최근의 현상을 파시즘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은 거의 예외없이 다 거기에서 거기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한다.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그 중 일부가 목숨을 걸고 이상과 가치 그리고 비전을 위해 헌신한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적 용기라고 한다. 일반 대중들은 그런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산다. 그런 사람들은 존경을 받아야 하고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대접과 존경도 합리적인 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최근 조국을 둘러싸고 그를 목숨걸고 옹위하는 문인과 지식인들을 보면서 글을 읽는자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거의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앙적 수준의 믿음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정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집단광기’라고 한적이 있었다.

모든 인간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다. 그것은 그가 위대한 성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성스러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고 주변에서 비판해주지 않으면 마음가는대로 간다. 그때 마음은 본능이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이 지금과 같은 사태에 직면한 것은 그가 비판과 비난을 했지만, 스스로 비판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정수석이란 강력한 정치권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누구로터 제대로 견제를 받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한다. 행동이 누적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누적되면 성격이 된다고 했다.

아무도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으니 무엇이 무서웠겠는가? 민정수석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도 조국이 사모펀드 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는 권력에 취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정치 문화는 빠들의 세상이 될뻔했다. 노빠에서 박빠로 그리고 문빠로 다시 조빠로 이어질 뻔 했다. 빠들이 이어지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조빠가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위 글깨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586의 기득권 이야기로도 해석하기 어려운 것 같다. 뭔가 모를 ‘가치의 아노미 현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뭔지 모를 것들이 사람들에게 마치 예수와 미륵같은 구세주를 바란 것이 아닐까? 조국은 조빠들에게 마치 예수나 미륵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명심할 것은 인간은 더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규제되지 않고 서로 견제되지 않으면 인간은 끝까지 간다.

그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보다는 그사람이 추구하는 이상과 비전을 보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지도자를 찾을 수 있고 그래야 우리의 삶 우리 후대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정치는 화풀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팬덤 정치 할만큼 해봤으니 다시 돌아가자 도덕과 가치 이상 같은 다소 고리타분한 것으로.


Steem의 실제 생활 용도, 협동조합이 어떨까요 ?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스팀가격이 폭락을 했다. 선물거래소 백트가 들어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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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정치의 역할,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

정치를 자원의 분배라고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이 돈이던 물건이든 혹은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간도 중요한 자원에 속한다. 성공하는 정치를 위해서는 목표를 잘 수립하고 자원을 적시적절하게 투입해야 한다. 물론 투입하는 자원과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서 우선순서를 잘 정하는 것을 빼 놓을 수 없다. 우선순서를 잘 정해야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조국 정국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중요한 아젠다들을 모두 다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정국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국정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의 경제침략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정아젠다였다. 모처럼 국민들의 뜻이 하나로 모였다.

결국 지소미아가 파기되었고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정부 관료,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모처럼 혼연일체가 되었다. 국민들은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일본상품 불매를 했다. 기업들은 국산화를 위해 노력을 했고 정부부처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국문제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그냥 사그라져 버렸다. 지금 국산화와 기술자립을 위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일들은 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고 그 중에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불똥이 튀어 떨어질지 알 수 없다. 북미대화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노동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노동문제란 민노총이 주장하던 것과 다르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노동문제는 거의모두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의 분출이다. 진보정권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이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뒤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것을 뒤덮을 만큼 조국문제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정권출범하고 나서 2년이 넘도록 검찰개혁이란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국이 튀어나오면서 검찰개혁이란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국정 아젠다로 등장했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지금 갑자기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조국이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한 얄팍한 꼼수라는 것 이외에 어떤 납득도 하기 어렵다. 복잡계 이론에 프랙탈 구조라는 것이 있다. 조국이 보여주는 행태는 일반적으로 현정권 전체에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부패와 부정의 프랙탈 구조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개혁을 주장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조국에 대한 수사는 법원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방해받고 있다. 이제는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더라도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특검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법원의 영장발부문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아마 국회에서 특검이 아니라 특별법원 설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회가 제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국민들의 직접적이고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확률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정말로 바란다. 지소미아를 끝까지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그래야 우리나라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문재인 정부가 해주길 바랬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대학생인 아들과 아침에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나 중요한 변곡점에 있는 것으로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답답했다.

늦다고 생각할때가 빠른법이다. 조국을 사퇴시키고 우리는 살아가자. 조국이 우리의 삶을 대신해주지는 않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장악하기 바란다.

잘못하면 앞으로 2년반을 혼란과 혼돈속에 살아야 한다. 그런 상황이 초래되면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최악은 피해야 하는 법 아닌가 ? 지금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이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가는 정말 권력을 말도 안되게 자한당에게 넘겨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다행히 조국의 퇴진문제가 나온다고 한다. 빨리 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더 이상 늦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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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재물

우리가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사는 이유는 그런 혼란함을 정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정하기 위한 것이 하닐까 한다.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뭔가 기여하기 위한 이타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행사가 이상하게 되어가는 배경에는 그런 이타적인 마음이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더럽혀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일본을 통일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권력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모양이다. 그는 권력을 가진자는 재물을 가질 수 없게 했고, 재물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가질 수 없게 했다. 철저하게 균형과 배분을 강조했다. 막부의 권력행사도 그러했다. 큰 번들은 막부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했다.

권력을 가진가자 재물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타락하고 그로 인해 정치는 무너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현대사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대부분 부패한 경우가 많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탐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누군가 메이지 유신이후 정치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일가의 생계는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스로 자기 식구 먹여 살릴 정도의 능력이 없으면 정치에 나설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부패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메이지 당시의 그 유명인사가 한 재산이라는 것은 많은 돈을 말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저 식구들 건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며칠전에 국회의원들의 재산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공시가격으로 20억대 중반이라고 한다. 쇼크였던 것은 진보를 표방하는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의 재산이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했다. 돈이 많다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대표가 가진자들이라면 그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이 가진 돈은 분명 일가의 생계를 보살피는 범위는 넘는 것 같다.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조국 문제로 586을 기득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재산을 보면서 그런 비난과 비판이 틀린 이약기가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진 것에 의해 사람의 행동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렇게 보면 민주당 이나 자한당 국회의원들은 우리 사회 최상층의 기득권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그들은 공동이익운명체이다. 최근 정치상황을 보면서 자한당과 민주당이 국민들을 좌우 양쪽으로 갈라치기 하려고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들의 재산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들을 양 극단으로 몰아가면 결국 어떤 방향이든 기득권의 틀로 국민들이 갖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정부 들어와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문제에 대한 정책과 재벌문제에 대한 정책이 보수정권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양 극단에 있는 것은 서로 통한다고 한다. 결국 서로 반대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몸통의 꼬리와 머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국면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그러나 국민들의 무당파가 급증하고 있다니 그나마 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촛불혁명의 완성은 우리 사회에 이런 양극단의 기득권을 몰아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말은 쉽지만 과정은 쉽지 않으리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은 국민의 몫이 아닌가 한다. 국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정치는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보수 진보 기득권들도 그동안 자신들이 누린 것에 만족해야 한다. 정치는 후대를 위해 해야 한다.

국회의원 재산을 보면서 우리도 토쿠가와 이에야스시대처럼 권력을 원하면 돈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정치인들은 돈없이 깨끗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가 잘 된다고 한다.

권력이 돈과 결탁하면 지저분해진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

모두들 자신의 삶에 불만들이 많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지나칠 정도로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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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분노사이, 윤석렬 음해 건을 보면서

수정을 합니다.
조국의 장관 정책보좌관은 김 미경 변호사입니다. 과거사조사단의 김영희 변호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제가 착각을 했군요
김미경 변호사는 조국 장관 청문회 팀장으로 있다가 사모펀드 관계자들에게 해외로 도피하라고 한 사람입니다. 같


한겨울 그 매서운 추위속에서 광장을 서성였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지애를 느꼈다. 전쟁이 나면 옆에 전우가 있어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해 겨울 나를 그렇게 분노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저를 가장 분노하게 했던 것은 소통의 부족이었다. 청와대에 앉아 있던 여왕께서는 몇년동안 군림하고 통치를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신하이자 백성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게다가 군사통치시대의 암습한 기억의 유산들이 여기저기에서 소환되기 시작했다. 특권과 불공정 그리고 정보부처의 공작 등등이다.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제는 정말 잘 해주기를 바랬다. 내가 광장에서 칼바람 맞아가며 만들었던 정권이었다. 80 노모와도 큰소리로 싸워가며 만든 정권이었다. 그런지 2년동안 실망만 했다. 그 2년동안 무엇을 했나?

재벌개혁?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의 이재용을 자주 만나서 지원사격해주는 것이 재벌개혁이라면 그렇다.

선거법 개혁과 개헌 ? 정권을 수립한 이후 곧바로 착수했으면 이미 끝나고 말았을 일이다. 지금처럼 패스트 트랙이니 뭐니 할 일도 아니었다.

검찰개혁 ? 그때 했으면 이미 끝났다. 2년동안 적폐청산하면서 반대파에 대한 정치보복하다가 시간 다 보냈다. 그중에서 꼴보기 싫은 사람들 처리한 것은 시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검찰개혁 운운하는 것은 이상해도 한참은 이상하다.

난 정치권력이 일정정도 검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을 것 같으면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나? 정치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정치중립은 오히려 더 큰 악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치권력을 벗어난 검찰권력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일을 잘 아는 지인 한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왜 문재인 정권이 이런 상황에 빠졌을까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사람은 정권초기에 야당이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냥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제대로된 개혁을 하기보다는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엉뚱하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부정과 부패’라고 했다. 최근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이다. 세상에는 경륜을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은 이미 오래전에 문재인 정권이 부패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김태우 수사관이 반발하는 것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정권의 실세들이 부패에 물들어 있지 않으면 김태우같은 말단 관리들이 저렇게 반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패? 어느 정권이든지 적당히 다 썩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권때는 지금보다 부패의 냄세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통 부족으로 울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부패가 우리 사회를 덮고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국정농단 수사들 했지만 무엇을 받아 먹었다는 것이 최순실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순실이 받아 먹었다는 것도 냉정하게 보면 지금 사모펀드니 뭐니 하는 것 보다 그리 질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유라 건은 조민의 건에 비해보면 어벙벙한 수준에 불과하다. 조민 건은 아주 지능적이다. 아무리 보아도 정유라 건보다 조민 건이 나쁜 듯 하다.

채동욱은 실제 문제라도 있었다. 처음에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 그가 그런 것을 몰랐을까? 아마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채동욱을 검찰총장에 임명했을 것이다. 아주 나쁜 짓임이 분명하다. 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누구였을까? 그는 지금이라도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윤석렬이 건축업자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보도는 질적으로 더 나쁘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석렬 음해 사건은 누가 일으킨 것 일까?

조국은 당장 자신이 검증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그것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꼬리 짜르기를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냥 신문만 보고 있는 사람도 이번의 윤석렬 음해 사건 배후에 뭔가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정원이 공작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국정원이야 애시당초 공작하는 것이 그들이 임무다. 그런데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공작은 누가 하는 것인가 ?

실망스럽다. 이런 것은 밝히고 넘어가지 말아야 하나?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가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나.

한겨레 신문에서는 이런 것을 몰랐을까? 제 생각에는 한겨례 편집진은 모두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겨레 기자가 아닌 한겨레 21 기자를 이용한 것 아닌가 ?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남을 이용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겨레 신문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분노를 느꼈었다. 그런데 이제는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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