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질과 미국달러 중 무엇이 더 믿을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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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미국 달러가 더 믿을 만 할까요?
그럼 제가 이 글을 쓰지 않았겠지요.

이글은 전에 제가 썼던
가상화폐 화폐인가? 아닌가?의 후속편입니다.
https://steemit.com/kr/@oldstone/41wmez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근세초기에 은이 모든 것의 중심인 적이 있었습니다. 에스퍄냐가 세계를 지배할 때는 은이 화폐의 기준이었습니다. 은본위제도 였던 것이지요. 영국이 에스파냐를 물리치고나서는 금이 힘을 더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경제는 경제의 원리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드 1세 여왕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격파시키고나서는 서서히 금이 화폐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스페인이전에는 금이 왕이었습니다.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달라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한 이후 지금까지 약 50년이 채 못되었습니다. 종이쪽지 하나를 화폐라고 하는 지금의 시기는 화폐의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예외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종이를 돈이라고 단순 의미만 부여하는 지금의 시기는 신석기시대에 조개를 돈이라고 했던 시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발권국가의 신뢰성 운운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약속이 씨족 부족사회에서 다 알고 지내는 형제 자매간의 약속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신뢰성 그 자체를 말한다면 미국 정부의 약속보다는 삼촌의 약속을 믿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지요. 일가 친척들이 싱용을 담보하기 때문에 별거 아닌 조개껍질은 강력한 화폐로서의 기능을 한 것이지요.

물론 서로 신뢰하는 범위안에서 기능한 것입니다. 그 범위를 넘어가면 신뢰가 떨어지게 되겄지요. 그것은 국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개로 돈을 만들었다는 것을 두고 우습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조개껍질이 적어도 지금의 달러보다는 훨씬 더 신뢰성이 있었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을까요?

결국 화폐의 본질은 신뢰성입니다. 금본위제는 국가의 약속이나 가족의 신뢰보다 금이라는 물질이 훨씬 더 신뢰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나타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금본위제로 폐지 이후 화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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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보다 최저임금 인상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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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온지 벌써 2주이 다되어 가고 있다. 황교안의 방해공작으로 내각 구성도 지연되고 있다. 그 사이에 문재인 정부의 조치는 신선했다. 각각 느끼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미세먼지 대책으로 오래된 석탄화력 발전소 가동중지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돈을 벌고 정치를 하는 것도 다 사람 살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금수강산을 돈에 눈멀어서 사람 살지 못할 장소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불편해도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나만의 바람인지는 모르겠다.

통상 정부가 처음 들어서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랬었다. 심지어 전두환 정권때 노태우 정권때도 초기에는 지징를 많이 받았다. 퇴임할때 한자리수의 지지율을 유지했던 김영삼 정부도 초반에는 90프로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개혁적인 조치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는 처음과 같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기의 개혁적인 조치들이 색깔을 바래기도 하거니와 결국 모든 문제는 먹고사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국가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이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과 핵심에 직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조치 가운데 지금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항공사를 찾아가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 물론 몇몇 군데는 그렇게 해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수지타산이 악화되어서 공항공사 전체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 그거 엄살 아니냐고? 천만이다. 지금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결국은 한계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거의 모든 공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책이니까?

군에서도 부사관 많이 뽑으라고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부사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명박 정부때 많이 뽑으라고 해서 군대에서 홍역을 치루었고 지금 이제 겨우 정상화되고 있는데 다시 또 뽑으면 그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느냐고 한다. 군대의 부사관도 비정규직이다. 부사관 뽑는다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군대는 경제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곤란한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어찌 활용할지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데 그냥 뽑으면 어쩌란 말이냐다.
대부분의 부사관들은 장기복무자가 되지 못해 결국은 중간에 사회로 방출된다. 그리고 장기복무자가 늘어나면 그사람들 연금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시킬 일도 마땅치 않은데 그냥 봉급만 주는가? 고스란히 세금으로,

지금 현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규직 봉급을 깍아서 그것을 비정규직에게 보충해주는 것이다. 상향 평균화는 불가능하다. 과거 프랑스는 경제위기가 오니까 근로시간을 모두 줄여서 여러사람들이 나눠 먹는 식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공동체 의식을 발휘한 결과다.

우리는 모두 명확하게 알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줄여서 비정규직에게 더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물론 기업들 중에서 악의적으로 비정규직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해소해야 한다.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사회에 유익할 수도있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항상 고통이 따른다. 그런 고통을 외면하고 달콤한 길로만 가려면 함정에 빠진다. 언발에 오줌누기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정규직의 희생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유지하려면 엄청난 후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한번 정도의 이벤트로 족하다. 계속하면 위험해진다.

오히려 최저임금 올리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듯 하다. 최저임금도 올리고 비정규직도 해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런 방법있으면 왜 안했겠는가? 몰라서 안한것이 아니라 할수없어서 못한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문제는 비정규직 축에도 끼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정책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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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뽑아야 나라가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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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사람 뽑는 일이 가장 화제가 된다. 며칠전 피우진을 뽑은 것은 국민들에게 사이다같았다. 어떤 사람이 우수한 사람일까?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인재를 잘 등용한 나라는 태평성대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전부 다 망했다.

어떤 사람을 우수하다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우리같은 동양사회에서는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등용했다. 뭐니 뭐니 해도 시험 잘보는 것이 장땡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시라는 것도 현대판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서양사회에서는 시험보고 사람뽑는다고 하면 기겁을 한다. 그것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알 수 있는가 하는 거다.

우리나라사람들은 공정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은 사람의 종합적인 총체적인 능력을 중요시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험보지 않고 그냥 사람뽑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다 일가친척 사람을 쓸 것이다. 그래서 면접만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우리네 문화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시험봐서 사람뽑는 제도가 한계에 온듯하다.

시험봐서 법관뽑고 공무원 뽑아 놓았더니 국민들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짓만 한다. 그 똑독하다는 고시 합격자들이 모두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복지부동하거나 어마어마한 범죄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과연 시험봐서 사람뽑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과거처럼 정보가 공개되기 어렵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만 정보를 습들할 수 있는 시절에는 시험이 중요했다. 일단 많이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많이 아는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도 대학에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식이라는 것이 이미 평준화되었다. 인터넷을 한번 뒤져봐라. 웬만하는 것은 다 나온다. 나도 강의하다가 기억이 안나면 얘들아 그거 뭔지 찾아봐라 그런다. 그러면 1분도 안되서 누가 대답한다.

지식과 정보가 인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준이되어야 할까? 그것은 도덕성과 가치기준과 같은 윤리이다. 옳고 그른것을 구분하고 그것이 옳으면 옳다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로 용기와 도덕성이 인재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보는 인재들은 인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원래 인재들은 자기가 인재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인재들은 숨어서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여러 친구들에게 사람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인구 5천만의 대국에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다만 찾지 못했을 뿐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앞에 나서서 내가 인재요라고 하지만 진정한 인재들은 나서지도 않고 나서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대로 된 인재를 발탁했으면 좋겠다. 도덕성과 용기를 가지고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 머리좋다는 것. 그것 모두 말짱 도로묵이더라. 그놈들이 나중에 더 큰 도둑이 되더라.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아는 사람이 잘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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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화폐인가? 아닌가?

최근 가상화폐가 화폐냐 아니냐에 관한 논의들이 있었다.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라는 @cazimi 님의 간단한 글에 가상화폐는 화폐라는 @leesunmoo 님의 글이 있었다.
https://steemit.com/steem/@leesunmoo/3lxu7r
https://steemit.com/cazimi/@cazimi/2da248

원래 스티밋에서 논쟁이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상호 비방의 내용이 아닌 아카데믹한 논쟁이라면 매우 권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그간 가상화폐와 화폐의 관계에 대한 소생의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볼까 한다. 생각만하고 있는 것고 정리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일견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나 소생처럼 가상화폐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스티밋상에서의 논의와 별도로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경희대 안재욱 교수가 한경에 기고하였기에 한마디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재욱 교수의 주장과 같은 내용은 그간 수없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새로이 논박할 필요성도 굳이 느끼지 않는다. 필요하면 링크를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51801031

가상화폐가 화폐인가 아닌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폐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환기능과 저장기능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하고자 한다. 전통적 화폐론에서 아마도 가장 간단한 정의일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를 저장하고 교환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화폐란 것이 상당히 안정적인 수준에서 교환기능과 가치저장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화폐는 조개껍질이었다. 가상화폐를 하는 사람들도 인류가 사용한 초기화페가 조개껍질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인류는 최초 화폐를 만들 때 가치저장기능이 아니라 교환기능을 먼저 생각했다. 먹고 남은 조개껍질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저장 기능이 있었겠는가? 인류최초의 화폐는 가치저장기능이 아니라 교환기능에 특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화폐의 기능중 가치저장보다 교환기능 즉 신뢰의 기능을 더 우선시 했다는 것이다. 초기 인간들은 신뢰를 교환하기 위한 증표로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치저장기능보다 교환기능이 화폐의 본래적 기능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저장기능이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국가의 등장이후로 보여진다. 국가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단순한 교환기능보다는 일정한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화폐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금으로 화폐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가치를 저장하고 교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우습게도 스파르타에서는 무거운 쇠로 화폐를 만들어 교환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이후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모두 국가의 독점적 권한이었다. 국가가 가치를 보장하고 교환을 장려한 것이다. 그것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금화나 은화가 화폐로 인정받았다.

지폐가 발행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민간 상업활동 중 동전을 사용하기 어려운 대규모 거래에 어음을 사용하면서 화폐가 비로소 등장했다. 그러나 지폐도 형태만 다르지 본질적으로는 금화나 은화등과 동일했다. 미국의 달러도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기 이전까지는 금화와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늘어나는 재정소요를 감당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기에 이르렀다. 금을 미처 채워 놓지도 못하고 달러만 발행했다. 한계가 발생했다. 미국은 금본위제도를 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세계는 난리가 났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군함에 달러를 가득 채워서 뉴욕 앞에와서 금으로 바꿔달라고 시위를 했다.

미국의 위기였다. 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키신저였다. 키신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하여 원유를 달러로만 팔도록 했다. 그 대신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권을 지켜주기로 했다. 위기에 처했던 달러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금본위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지금의 달러는 오일에 페깅되어 있다. 그 이후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적으로 발행하면서 재정적자를 해소했다.

화폐와 미국의 달러역사를 이렇게 길게 서술한 것은 지금과 같이 국가가 발권력을 지니는 화폐라는 것이 불과 몇십년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국가가 본원통화를 증가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무제한적 발권력을 지니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폐지하면서 달러가 가치저장기능 보다는 교환기능이 훨씬더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사시대에 조개껍질을 화폐로 쓰던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화폐가 가치저장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런의미에서 가상화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비트코인의 발행은 국가의 무제한적인 발권력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국가가 무제한적인 발권력을 행사하면 일반 국민들이 가난해진다.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된다. 비트코인을 만들게 된 것도 2008년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문이었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일반국민들이 소수의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비트코인은 마치 로빈후드와 비슷하다.

우리는 가상화폐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국가가 발권을 하지 않았으니 인정을 할 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에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인식해야 하는가?

가치저장과 교환기능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는 분명이 아직 많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치저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을 정도로 나아간 것 같다. 비트코인의 가격상승은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교환기능을 불안정하다. 안재욱 교수를 비롯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가치의 불안정을 문제로 든다. 그런데 그것은 아직 비트코인이 충분히 가치저장기능을 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성장통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서 가상화폐의 가치가 충분하게 성장하면 그때서야 교환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국가가 발행한 화폐가 교환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가치저장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가상화폐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국가가 발생한 화폐의 가치저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상화폐의 교환기능을 지급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블록페이 그리고 플루투스 같은 것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가상화폐는 아직은 기존화폐의 교환기능을 따라갈 수 없다. 있다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가상화폐의 교환기능은 상징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만일 가상화폐가 성장하여 충분한 가치저장 기능을 하게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서서히 교환기능도 제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가상화폐는 국가가 금화와 은화를 발행하는 상황과 같아질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가 조개껍질 같은 것이고 가상화폐가 금화와 은화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크게보면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미국화폐제도는 문제가 많으니 다시 금본위제도로 돌아가자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들의 시각은 옳다. 경제에는 유에서 무를 창출할 수 없고 화폐는 신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러는 신뢰성을 상실한 채 교환기능에만 치중하는 상황으로 전개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이 미국의 달러를 믿지 못하니 위완화를 기축통화로 하자고 한 것도 오래 지나지 않았다.

가상화폐가 신뢰성 있는 화폐로 인정받게 된다면 가상화폐와 기존의 화폐는 어떤 관계가 될까? 가상화폐가 제대로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기존의 화폐가 당장 없어지거나 가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상당기간 공존의 기간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으나 지면의 문제가 있어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

가상화폐를 팔고사는 주요역할을 달러가 담당한다면 달러의 신뢰성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미국도 달러를 가상화폐에 페깅할 확률이 높다. 어차피 앞으로 오일도 그 생명을 다할 것이고 보면 미국도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무슨 조치를 해야한다. 화석연료가 앞으로 40년 이후면 없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미있는 것은 만일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오일을 넘어 주류가되면 달라의 위상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도 그문제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무너져서 지금의 세계체제가 붕괴될지도 모른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에게 사활적 이익에 속한다. 앞으로 40년정도를 예측하는데 그 이전에 미국은 달러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무너질 수도 있다.

자 이쯤하고 생각해보자 가상화폐는 화폐인가 아닌가? 미시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거시적으로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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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요즘 어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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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인심은 무섭다. 지금 내머리 속에는 박근혜라는 이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별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정윤회 문건에 대한 재조사니 뭐니 하는 말이 있어서 갑자기 박근혜가 생각났다. 박근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신문을 보니 박근혜는 TV나 뉴스도 듣지 않고 오로지 변론 준비만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죄형법정주의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죄를 묻는다. 박근혜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정말 당연한 일인가? 만일 그것이 일반 형사범 그것도 잡범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일의 선후를 따져서 무엇이 법에 기재된 범죄인지 거기에 적용되는 것이 옳은지를 따지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는 일반 형사 잡범이 아니다. 그녀는 정치범이다. 그녀는 파리의 탑에 갇힌 마리앙뚜와네뜨이자 루이 16세이다. 정치범에게 재판은 대부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전두환 노태우도 그냥 형법으로 따지면 처벌하기 어렵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론도 있었다. 전과 노는 정치범이기 때문에 처벌한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놓으면 죽음이 기다린다. 재판은 절차일 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알렉산드르 2세가 퇴위를 했다. 그러자 그 아들 혈우병을 앓았던 그 아들이 한마디 했다. 아바마마 짜르가 퇴위하면 죽음이 기다립니다. 그는 아들보다 못했다. 아마 알렉산드르 2세가 퇴위를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탄광굴에 끌려가서 무참하게 학살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거의가 자신의 왕을 죽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양은 자신의 왕을 처형함으로써 국민의 의식이 한단계 고양되고 과거와 완벽한 단절을 했다. 미래를 위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었던 것이다.

우리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처벌을 통해 다시는 이땅에 군사 구데타는 것이 발생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박근혜는 어떤 길을 걸을까? 아마도 가장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검찰이나 법원이나 만일 박근혜를 최대한으로 처벌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단죄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힘앞에 지식인의 알량한 지식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그 힘이 군인들의 총칼이었다. 지금의 힘은 국민이다.

박근혜는 다시는 부활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박근혜가 국민들에게 진정하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어여삐 여겨 정치적인 사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스스로를 기타잡범으로 여겨 법을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법을 통해 다시 부활하려 하는 듯하다. 쓰레기같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수모 보다는 일류인 법관들의 판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위해 그녀는 단죄되어야 한다. 용서를 구하는 비굴한 삶보다는 영광스런 죽음을 택하려는 박근혜의 선택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거스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박근혜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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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직업을 어떻게 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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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떤직업을 가질건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민도 많았습니다. 이거 당장 때려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봉급받아서 애들 학교보내야지 하는 생각에 그 다음날 그 다음날 하루하루 나가다 보니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릴때는 부모님들께서 공부열심히 하라고만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살기가 어려워서 공부해서 관공서에 가거나 학교 선생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유추합니다. 부모님들은 그렇게 사셨으니 자식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겠지요.

그런데 살다보니 내가 하루하루 직장나가는 것이 먹고살기 위해 들판을 헤매이는 짐승하고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내가 다시 어리다면 무슨 일을 하고 살아갈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하느것이 재능이 있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선진국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입니다. 영화배우나 운동선수 예술가와 같은 사람은 재능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일 먼저 어릴때 그 아이들이 무슨 재능이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글을 보시는 부모님께서도 자기 아이가 무슨 일을 잘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과대평가는 금지입니다. 제3자의 공정한 평가를 받아 보아야 합니다. 재능이 필요한 직업의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어릴때 보면 다 안다고 합니다. 노력은 재능이 갖추어진 다음에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베토벤이 열심히 해서 베토벤이 된 것이 아니지요. 모짜르트가 열심히 해서 된 것이 아니고요, 김연아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연습한 선수가 없을까요.

이과정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잘하는 것은 직업으로 삼아야 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서 평생 고생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제생활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면 팍팍한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가 배워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배우고 익혀서 직업을 가지는 것입니다. 법률가와 세무사 은행원 의사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배우고 익혀서 잘하는 직업들이 힘을 쓰는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세상이 많이 바뀌고 변화한 것 같아도 사실 우리는 19세기적 상황에서 그리 멀리 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남 엄마들이 극성을 부리는 것이지요. 선진국들은 배워서 익히는 과정에서 고통을 조금 줄여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법률가들 중에도 그렇고 학자와 의사들 중에서도 그렇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찾지 못했는데 공부하다가 보니 자신이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일류가 되는 것입니다.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재능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배우고 익혀서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뒤늦게 찾았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제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지 못했습니다. 첫번째 아이는 좋아하는 것을 시켰는데 재능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키웠습니다. 막내는 대학에 가더니 술마시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계집아이가 엄청 마셔대더군요. 저는 그게 재능인가 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의 재능 찾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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