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STEEMIT의 공통점, 개혁이나 멸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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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끄러웠던 문제가 어느정도 잠잠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있을 것 같지 않다. 문득 로마가 생각났다. 로마가 왜 멸망했을까?
로마가 왜 멸망했을까하는 주제는 역사학자들의 오랜 문제였다.

결국 문제는 내부의 분열이었다.
동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비하라”고 한사람이다. 그 사람은 전쟁에서 최대의 전략은 적의 내부를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적을 분열시키는 것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사용한 예는 무지하게 많다. 최근에 미국이 주장했던 인권문제도 대표적으로 적의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인권이란 당연한 이슈도 상대방에 따라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하는 것을 적의 내부를 분열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결국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도 인권문제가 많은 작용을 했다

다시 로마로 돌아가자 로마는 외부에서 분열시키고자 하는 세력이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무너졌다. 부자와 평민의 소득격차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득격차도 차이가 있다. 정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차이가 나는 소득격차는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정당하지 않은 소득격차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것이 지속되면 나라가 망한다.

로마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개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크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있었다. 그들은 평민들의 편에 서고자 했다. 그런데 둘다 살해당했다.

지금 스티밋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티밋에서 이어지고 있는 소득격차는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초과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담합에 의해서 불공정 거래를 하는 것이다.

첫번째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초과하는 것은 스티밋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만일 자본소득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스티밋이 존속할 수 없다. 스티밋에서 자본소득은 스티밋의 존립근거인 것이다.
결국 뉴비들이 받아가는 노동소득도 고래들의 자본소득이 없다면 없다. 피자가 있어야 그것을 나누어 갈 수 있는 법이다.

두번째는 담합에 의한 불공정 거래다.
지금 kr코뮤니티가 직면한 문제다. 이문제를 제기해준 woo님이나 atomrigs 그리고 논공청년은 휘슬 블로워이면서도 로마의 크락쿠스 형제와 비슷하다. 역사상 개혁이 성공한 적은 별로 없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는 괜스리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코뮤니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비슷하다. 상당한 사람들이 서로 이익과 이익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위의 세사람은 모두 왕따가 될 확률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세사람을 비롯한 몇명이 서로 똘똘 뭉쳐야 한다. 그런데 그러면 그들도 적폐세력이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혼자 광야에서 계속 외치다가 굶어 죽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 @yoonjang0707과 그 일당들 편에 서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잊어버린다. 그러면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가면된다.

둘째 woo님과 atomrigs zefa 등등의 경우와 같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에는 분노해서 어느정도 성과가 있다. 그런데 조금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셋째 이편도 저편도 아닌 것 처럼 고고하게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는다.

역사상 개혁이 실패한 것은 모두 세번째 부류 때문이었다. 사실 이 세번째 부류가 이기적인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거나 코뮤니티가 붕괴되었다.

이들은 첫번째와 두번째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여기서 저기서 이익을 취한다. 그리고 힘이 쎈 편에 은근 슬쩍 끼어든다. 의견표시를 자세한다. 문제는 있지만 너무 심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입장을 표명한다. 짐짓 고상한 척하지만 문제에 말려들면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들을 일컬어 기회주의자라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개혁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모순이 누적되어 망한다.

@yoonjang0707은 돈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무지하게 잘 아는 사람인 듯하다. 보아하니 어떠한 경우가 있어도 큐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는 듯하다. 보상을 받지 않더라도 큐레이터를 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 지탄을 받으면서 왜 그렇게 큐레이터를 하려고 할까?

누구의 글을 읽고 선정을 하는 것은 스티밋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블로그에서 당신의 글이 좋은 글이요라고 지정을 하는 것보다 강한 권력이 있을까?

지금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도 @yoonjang0707의 큐레이션에 간택되어서 보상을 받아본 경험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권력을 유지하면 그는 뻘글을 써도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밋이 페이스북과 네이버와 다른 것은 문제가 생겼을때 이를 해결해줄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네이버는 자체 검열을 해서 포스팅을 삭제하거나 정리한다. 그런데 스티밋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일 지금과 같은 분란이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페이스북과 네이버는 @yoonjang0707의 계정을 폐쇄시키거나 포스팅을 다 삭제시켜 버렸을 것이다. 손님 쫓아내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티밋은 그럴 수 있는 주체가 없다.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옵션은 딱 두가지 밖에 없다.

첫째 분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추방하고 스티밋의 기본취지를 준수한다.

두번째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각자 따로 담합체를 만들어 담합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를 취할 것인가?
필자는 두번째로 갈 상황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도 탄핵했는데 무엇을 못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습게 보지 마시길…
지금의 상황은 박근혜 탄핵보다 어렵다. 돈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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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EOS와 STEEMIT의 DPOS 그리고 비트코인의 POW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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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S에 대한 COINDESK라는 매체의 보도가 있었다. 주요 내용은 EOS의 기술적 개념이 분명하지가 않고 DPOS라는 것이 결국 있는 놈끼리 해먹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댄 라리머에 대한 개인적 비난도 포함되어 있다.

밑에 있는 글은 그에 대한 비판이다. 코인데스크가 댄 라리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서 코인데스크의 기사를 반박했는데 글쎄 그게 제대로 반박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보상이 엄청나다. 스티밋의 세계 그리고 EOS의 세계에도 확증편향의 심리가 엄청나게 작용한다는 증거가 아닌지 모르겠다.
https://steemit.com/eos/@belerophon/coindesk-libels-dan-larimer

원래 스티밋과 DPOS의 문제를 한번 언급해보려 했는데 오늘 STEEMIT 트렌드 1등으로 올라온 글이 워낙 뻘글인 것 같아서 한번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글을 읽어오신 분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자면 본인은 블록체인 전문가가 아니다. 코딩을 할줄도 모르고 블록체인에 대한 기본 상식도 부족하다. 작년 이맘때 “Dapp이 뭐예요”하고 물어보던 사람이다. 물론 거시경제에 대한 관심은 조금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젬병이라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다만, 세상에 신기한 말들이 많아서 조금씩 자료를 보다보니 아항! 이거구나 하는 것이 있어서 조금 정리해서 글을 쓸 뿐이다. 따라서 STEEMIT에서 서식하는 고수들께서는 필자의 글을 한심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서슴치 말고 지도 편달바란다. 서로 다 지적받고 조언하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 아닌가?

어제 밝힌 것처럼 원래 필자는 POW와 DPOS의 개념과 장단점을 정리하면서 이더리움이 시도하고자 하는 POS를 언급하려고 했다.

그런데 위의 뻘글을 보면서 오늘은 POW와 DPOS의 개념과 장단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그리고 그 대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POW나 DPOS나 모두 블록체인의 보안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만 거기에 속도의 문제가 연동되어 있다. 블록체인의 확실한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 존재하는 모든 블록체인의 문제는 보안과 속도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블록체인이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고 있지만 속도가 늦어지고 POS는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보안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사실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이글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블록체인의 보안에서 가장 고전적이며 완벽하다고 평가받았던 비트코인의 POW이 상당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속도가 늦다고 불평불만을 이야기 한다. 앞으로 예정된 세그위트도 결국 이런 속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속도야 조금 늦으면 어떤가? 문제는 비트코인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작업증명의 지분을 중국에서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는 어머어마한 채굴장은 51%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이것이 중국정부의 통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가? 원래 비트코인은 어떤 국가의 발권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보안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전적인 방법이 가장 신뢰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블록체인에서도 그 길이가 길수록 신뢰가 높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비트코인이 어떤 특정한 국가의 영향력아래 놓일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커져 암호화 화폐의 기본취지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중국정부가 비트코인을 장악하면 비트코인은 가치를 상실한다. 물론 중국정부가 명시적으로 명백하게 비트코인을 통제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묵시적으로 뒤에서 조용하게 보이지 않게 비트코인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비트코인을 가장 안전한 암호화화폐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작업증명을 채택하고 있는 모든 암호화화폐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서 채굴장을 무자비하게 돌려버리면 그 암호화화폐를 완전하게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POW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장 안전한 시스템으로 알려졌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서 불순한 마음을 먹는 순간 POW는 매우 위험해진다.

그럼 DPOS는 어떨까? COINDESK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DPOS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스티밋만해도 초기에는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KR 코뮤니티에서 뉴비들이 느끼는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다. 자기 애인사진한장 올려놓고 10000달러 이상의 보상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스티밋에 초기에 참가한 증인들은 거의 땅집고 헤엄쳐서 돈 벌었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쉽게 돈을 벌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한다.

코인데스크가 지적한 바와같이 분명 초기의 스티밋은 그런 말도 안되는 부정과 혼란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1년간의 수정과 교정을 통해 많은 문제가 시정되었다. 지금의 스티밋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POW의 문제인 자원의 과다한 소모도 없다.

스티밋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DPOS 체제를 구성하는 WITNESS 들의 문제다. 댄 라리머가 왜 WITNESS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사람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찌하건 그 증인이라는 사람들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스티밋을 완전히 말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증인들이 여러명 담합하면 못할 것이 없다. 코인데스크가 스티밋이나 EOS를 중앙통제라고 비난하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금 스티밋의 증인들도 초기의 증인들이다. 한번 증인으로 진입하면 종신직이 될 확률이 많다.

중국정부가 비트코인을 통제하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증인들이 스티밋을 통제하는 것이 쉬울까?

지금의 스티밋은 STEEMIT.INC 가 절반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증인들이 담합하기가 쉬운 구조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STEEMIT.INC의 지분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몇달만에 스티밋 사의 지분이 10% 정도 줄었다. 지금의 상황은 스티밋 사가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안정적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스티밋의 DPOS가 비트코인의 POW보다 안정적일 수도 있다. 만일 증인의 선출이 정말로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우리는 증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proxy라는 것을 만들어 직접선거를 제한하고 있다. 자신의 투표권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필자가 앞에서 스티밋의 미래는 민주주의의 실현에 달려있다고 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적용 대상은 증인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데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선출하거나 아니면 투표권을 국회의원들에게 그대로 맡겨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EOS가 스티밋에서 한 것 같은 증인 시스템을 그대로 운용한다면 EOS는 실패할 것이다. 스티밋은 지분의 절반을 스티밋 사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EOS는 10%정도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 EOS는 DPOS 장점인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확률이 높게 되고 잘못하면 엄청난 부자에게 EOS를 통채로 뺏길 수도 있다.

필자가 EOS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이다.

엄청난 고래가 증인을 절반정도 임명해버리면 댄 라리머는 닭 쫓던개 지붕처다보는 상황이 된다. 한마디로 새되는 거다. 코인데스크는 내용상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스티밋도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증인의 활동을 공개해서 모든 스티밋 동지들이 그들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생각이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적어서 조금 산만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훌륭한 우리 독자들께서는 개떡같은 이야기를 찰떡같이 이해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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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밋이 사는 방법은 민주주의밖에 없다.

돈벌자고 하는 스티밋질에 왠 민주주의 타령이냐고?
세상은 모두 정치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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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과 관련된 문제로 kr 코뮤니티가 시끌했다. 아마 앞으로 한동안 이와 관련된 문제로 시끄러울 것 같다. 세상에 돈이 걸린 문제치고 그냥 조용하게 수습되는 법은 없다. 어제 올린 포스팅에서 필자는 이 모든 문제가 우리들 모두의 잘못이라고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우리 모두의 잘못이요라고 하는 해법은 어떻게 보면 쿨하게 폼나는 것 같지만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분하게 생각을 했다. 정말 무엇이 문제일까? 어느 한개인의 잘못된 일탈적 행동이 문제일까? 난 그 개인의 잘못을 변호하거나 무마할 생각은 없다. 분명히 그 사람은 모두가 생각하는 일정한 선을 넘었고 그런 선택을 하고 행동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서는 안될일이다. 그 사람이 이뻐서가 아니라 개인의 책임만으로 돌릴 경우에는 다음에도 똑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스티밋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어떤 원칙이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이었다. 우리가 스티밋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간극을 한사람이 파고 들었고 그래서 생긴 문제가 지금의 파장인 것이다.

그럼 스티밋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한번 정리해보자. 스티밋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원리로 움직인다. 스파를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못하면 혁명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것을 프랑스 혁명에서 볼 수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작동하고 있었으나 봉건제도하의 귀족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몸은 커버렸는데 옷은 작았다. 결국 옷은 찟어졌고 그래서 새로운 옷을 찾게된 것이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민주주의도 결국은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치제도에 불과한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보니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제대로 발전해야 한다.

그럼 제대로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과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우선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서 완성이된다. 직접 보통 비밀 선거에 의해서 대표가 선발된다. 그리고 권력은 3권으로 분립하여 상호견제한다. 그리고 언론이 권력을 감시한다. 그 감시결과는 선거에 다시 반영이 된다. 그런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반영이 되면 민주주의는 발전하게 되고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된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가지고 이렇게 장황한 이유는 스티밋이라는 것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치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스티밋의 정치체제는 제대로된 대의제도 수립되지 않았다. 스티밋의 대의제는 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증인을 뽑는 과정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증인의 운영과 선출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지금은 문제만 식별해보자

권력 분립과 관련해서는 3권은 아니지만 2권정도는 분산되어 있는 것같다. 스티밋을 운영해가는 steemit Inc 가 있고 수행여부를 결정하는 witness가 있으니 말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언론의 역할을 하는 기능이 없다. 만인대 만인의 투쟁과정에서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이번에 우리가 겪고 있는 @yoonjang0707의 부적절한 처신에 관한 문제는 제도나 권력분립의 문제가 아닌 제대로된 감시의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론과 같은 제대로된 감시기능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각적인 비판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yoonjang0707이 일으킨 문제는 스티밋의 전체 운명과 비해보자면 지극히 사소하다.

결론적으로 스티밋의 모든 문제는 스티밋내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정착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미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한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호흡이 길어졌다. 스티밋내의 민주주의의 문제 특히 DPOS와 증인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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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이 지경이 되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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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atomrigs님께서 스티밋 kr 코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어 놓으셨다. 다름 아닌 @yoonjang0707님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질타였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글을 쓰는 본인도 거기에 가세했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니 겁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지 몰랐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이글을 쓰는 본인도 @yoonjang0707 사태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 한참 전에 큐레이팅 문제를 가지고 어느 단톡에서 설전이 오갔다. 필자는 kr 코뮤니티가 어느정도 컸으니 더 이상의 큐레이팅을 하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yoonjang0707님이 올리는 글을 따라 보팅을 하는 경향이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좋은 글에 보팅하는 것 보다 @yoonjang0707님에게 보팅하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yoonjang0707님이 필요 이상의 권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문제제기 이후 필자는 @yoonjang0707님 그리고 그와 함께 행동하는 일동으로 부터 호되게 비판을 받았다. 그 이후 아예 그들을 mute 해버리고 보지도 않았다.

@yoonjang0707님의 적절치 못한 행동에 대한 비판은 여러번 경고가 있었다. 그 때 이후 아예 스티밋관련한 단톡은 참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스티밋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문제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은 논공청년의 강력한 비판이었다. 스티밋 초기에 모두의 공분을 사기도 했던 논공청년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당시에는 kr 코뮤니티가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kr 코뮤니티에서는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적절하게 자제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아마 @atomrigs 님의 포스팅에 모두가 반응한 것은 더 이상의 개선이 어렵겠다는 집단적 문제의식의 반영이 아닌가 한다.

어제 하루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이를 개선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무엇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실 필자는 @yoonjang0707님 개인을 비판하는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태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스티밋 동지 중 많은 사람들이 보상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간의 일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단순하게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먼저 스티밋의 기본 취지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글을 써서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남의 좋은 글을 이용해서 자신이 보상을 편취하려고 했다. 스티밋은 좋은 글을 써서 사회적 교류를 많이 하고 그래서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우선 글을 잘쓰면된다. 그런데 자신은 글을 제대로 쓰지 않고 남의 글을 이용해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공익을 내세우면서 결과적으로는 사익을 취한 것이다.

두번째 도덕적 기준과 일관성의 결여이다. 그는 @abdullar님이 다른 계정을 하나 운영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abdullar님은 제어계측쪽의 engineer인 것으로 안다. 그래서 순수히 기술적인 포스팅을 다른 계정에 올렸다. 그랬더니 그것이 어뷰징이라고 하면서 비난했고 결국 @abdullar님은 kr 커뮤니티를 떠났다. 한동안 @abdullar님은 큰세상에서 활동을 하셨고 거기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kr 코뮤니티는 @abdullar님의 스팀파워를 외국사람들에게 잠시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은 필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slowwalker계정을 영어에 집중한 것도 그친구들 보기가 뭐해서 그런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혀둔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부계정을 문제 삼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여러 부계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abdullar님에게 부계정 문제로 비난을 하기 전부터 그는 부계정을 가지고 상당기간 활동을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논공청년이 밝힌바와 같이 그 이후 새로운 부계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yoonjang0707님은 논공청년의 문제제기에 아무런 답도 남기지 않았다. 전형적인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였다.

그는 한때 kr 코뮤니티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던 권력을 행사했다. 그런 그가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도 준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 그러면 @yoonjang0707만 잘못했는가? 필자는 더 큰 잘못은 필자를 포함한 kr의 소위 고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잘못관리한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그것을 고쳐야 했다. 그런데 다들 눈치만 보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의 큐레이션에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고 했을수도 있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직접 비판하는데 서투른 우리의 문화도 있다. 문제는 남이 나서주기를 바라고 내가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아주 잘못된 속성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기 전까지 자신은 가만히 않아서 무임승차하겠다는 의식으로는 스티밋이 발전하지 못한다. 스티밋은 개방적인 사회이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나가야 하는 사회이다. 소극적인 태도로는 스티밋이 발전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atomrigs님은 2017년의 스티밋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kr-newbie 태그에 “보안관” 활동을 제시한 것도 아예 입바른 소리 하는 직책을 만들어보자고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팀파워를 위임받는 사람들도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 스팀파워를 위임해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위임해준다. 진짜 순수하게 코뮤니티가 잘되기 바란다. 그래야 자신에게도 좋으니까. 그런데 무상으로 임대받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이번 사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도록 방치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으면 내공도 생기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이번 일을 기화로 kr 코뮤니티가 내실있는 발전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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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버블 ? 신호와 소음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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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정세판단이다. 레닌이 한 말이다. 정세판단 능력은 사실 혁명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가정에서 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정세판단 능력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마누라 눈치를 살피지 못하면 엄청 피곤하다. 회사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피지 못하면 회사생활이 고달프다. 사내 정치에서 어느편이 쎈지를 판단하지 못해 엉뚱한데 붙었다가는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우리같이 끼인 국가는 어떤 놈이 쎈지 안쎈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나라 망한다.

구한말에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다 그런 연유다. 중국에 붙었다가 러시아에 붙었다가 미국에 붙었다가 일본에 붙었다. 그러다가 나라를 잃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는 여기저기 붙어먹는 나라를 바꾸면 동네 호구되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다. 아니라고? 글쎄… 두고 볼일이다. 우리는 지금 엄청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비트코인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비트코인의 버블 문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최근 암호화화폐에 대해 나오는 소리들이 너무나 각양 각색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멀리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저런 소리들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한 10년 묵혀 두겠다고 하면 왠만한 정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조금 오르면 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는 매우 소중하다. 그리고 조급해진다. 이런 조급증은 소위 말하는 큰손들이 돈을 버는 가장 중요한 기재이다. 작전이 먹혀들어가는 것은 조급증 때문이다.

사업이 아예 실패해서 망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사업은 성공하는데 거기에 투자한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삼성전자에 투자해서 돈을 제대로 번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필자는 얼마전에 블록체인은 버블이 아니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당연하다. 블록체인이란 기술의 진보를 말한다. 그리고 진보한 기술은 세상을 주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소식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뉴스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아마도 누군가 엄청난 작전을 시도하고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 주대상은 비트코인인 것 같다.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올해 초만해도 1비코가 10만달러를 가느니 50만달러를 가느니 100만 달러를 가느니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력한 월스트리트 투자가가 자신의 재산 상당부분을 비트코인을 매입하는데 썻다는 고백도 나왔다. 이판에 계시는 분들은 기억하시리라.

그리고 1-2주일 전인가 골드만 삭스에서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로 편입한다는 뉴스가 떳다. 당시 1비코당 2900달러 정도할 때 였다. 1비코가 2300-2400 정도하면 매입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뉴스였던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에서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편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비트코인의 세그위트에 대한 합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기준인 80%를 넘어가는 것 같았다. 비코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았다. 모두들 호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지금 비코가 버블이라고…

https://steemit.com/kr/@chocomuscake/2mpugo-bitcoin

파노스 무르도우쿠타스(Panos Mourdoukouta)라는 교수가
버블의 마지막 단계를 MANIA라고 한다며 초기 투자가를 제외한 사람들은 상당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매우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상이한 내용의 정보가 마구 뒤섞여 있다. 게다가 비코의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다른 알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자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평가해야 할까?

파노스교수의 말처럼 비코가 버블의 마지막 단계이니 팔아 치우고 잠시 떠나야 할까?

그럼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가 월스트리트로 부터 돈을 받고 정보를 조작하게 위해 글을 쓴 경우, 다른 하나는 진짜로 비코가 버블의 정상에 있다는 계량경제학적 판단에 따른 경우이다.

어떤 경우일까는 파노스라는 사람이 신뢰할만한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찾아보니 그는 한 3류정도되는 경제학자로 보인다. 그가 암호화화폐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버블론도 지극히 개념적이다. 그는 비코가 버블이라는 이유를 금의 상승률과 비코의 상승률을 근거로 들었다. 필자가 쓴 글을 본사람이라면 금태환제 폐지 이후 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steemit.com/coinkorea/@oldstone/-2017529t145423458z

이렇게 보면 최근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비트코인 버블론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나오고 있는 비코의 버블론은 큰손들이 작전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월스트리트가 비코를 자산에 편입시키려고 한다면 당연히 비코의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올라갈지 모르나 투자은행들이 충분할 정도로 매입을 끝낼 수 있을때까지는 상당기간 가격이 낮아야 한다.

파노스 교수의 기고문도 그런 작전의 일환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그런 보도가 더 많이 나올지 모른다. 특히 세그윗이 이루어지는 8월 이전에는 비코의 가격이 상당할 정도로 떨어질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그윗이후에도 상당기간 지금과 같이 낮은 가격을 유지할수도 있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사람들은 비코를 팔고 나갈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고나 정책적 조치에 관한 보도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비코의 가격이 떨어지는 쪽 말이다.

필자의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소식들을 보면 전형적으로 작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말을 듣고 무작정 비코를 사는 사람은 어리석다.

아무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런 뱅커들은 그런 사악한 담합과 야합을 서슴치 않고 할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야 한다.

당신이 지금 듣고 있는 소리는 신호인가 소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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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과 이중섭,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일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운보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운보 김기창은 벙어리 화가로 잘 알려졌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하지요. 팜플렛을 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기념관이라 합니다.

어머니께서 그림을 그리시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서 운보의 집을 들렀습니다. 운보읭 집은 너무나도 화려했습니다. 화가의 집이라기 보다는 엄청난 권력자의 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slowwalker 계정으로 네번이상이나 포스팅할 정도였습니다.

운보의 집을 갔다 와서 이리 저리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갑자기 6.25 전쟁이후인 1956년 죽은 화가 이중섭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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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의 집 전시관에 걸려있는 소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운보는 소와 말을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제가 본 것은 운보의 소그림 때문입니다.

갑자기 운보의 소싸움 그림을 보면서 이중섭의 소가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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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은 동양화가 이지만 이중섭은 서양화가 입니다. 두사람 모두 소를 즐겨 그렸다지만 가만 보면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운보는 여러마리의 소를 그렸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이중섭은 소를 한마리만 그렸습니다. 하나와 여럿.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마 두사람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중섭은 소한마리에 집중을 한 듯합니다. 왜 그는 한마리를 그렸을까요? 저는 그가 항상 혼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서 한국전쟁의 험난한 시기를 넘겼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아내는 일본인이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아내는 아이들과 일본으로 넘어갔고 이중섭은 이곳에 남았습니다. 당시에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사는 것에 서툴었던 이중섭은 시대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가 그린 소는 자신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그저 큰 눈만 껌벅껌벅할 뿐 당체 어찌할 방도가 없는 소를 자신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이중섭의 소는 김기창의 소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중섭의 소를 힘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중섭이 소의 힘을 강조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는 굵은 선으로 비쩍 마른 자신의 육신과 말라가는 정신을 표현한 듯 합니다.

김기창은 평생 영광을 누리던 사람입니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었고 외로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가 즐겨 그린 소와 말이 여러마리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너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 스티밋에 심리학을 공부한 스티밋 동지들도 여러분이 계시니 한번 분석을 받아 봄직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이중섭을 떠올린 것은 작품 때문은 아닙니다. 화가로서 한사람은 평생 부유하고 영예롭게 살았지만 한사람은 평생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고통받았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은 천수를 누렸고 다른 한사람은 제명을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중섭을 떠올린 것은 두사람의 운명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중섭은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해방이후 가족과 헤어진 이중섭은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살다가 가난 속에서 거의 굶어 죽다 시피했습니다. 굶어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김기창은 시류에 영합하는 재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천황의 초상화을 여러번 그렸습니다. 그래서 친일화가라는 딱지도 붙어있었습니다.
반면 이중섭은 육신이 멀쩡했지만 세상사는 재주는 영 점병이었습니다.

운보의 집에 다녀와서 한동안 김기창과 이중섭을 생각했습니다. 운보의 집 안내 팜플렛에 김기창을 단원 김홍도와 혜원의 뒤를 잇는 사람이라고 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기창의 그림을 보고나서 저는 앞으로 운보라는 이름이 그리 오래 가지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왜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을까요? 저는 예술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삶에서 예술 혼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림을 잘 모르지만 운보의 그림에서 치열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중섭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없겠지요. 그는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 내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운보의 집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돌에 김기창은 자신이 들을 수 없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런 고통이 이중섭이 당한 고통에 만분의 일이라도 될까요? 고통의 크기가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고통없이 예술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중섭의 고통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이 시대가 강요한 아픔이자 고통이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중섭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김기창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영혼의 울림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예술적 감각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아마도 김기창이 친일화가라는 것 때문에 제가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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