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뱅크는 블록체인 금융프로젝트의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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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뱅크가 출시되자 시장의 엄청난 반응이 있었다. 시간당 1만명 비율로 카카오 뱅크에 가입했다고 한다. 기존 금융사들도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모두 다 예견된 일이다. 기존의 은행들 문턱이 얼마나 높았으며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는 재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은행이란 제도자체가 중세때 만들어졌으며 그때의 업무처리 방식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카카오 뱅크란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은행업무의 혁신이다. 당연히 기존 은행이 긴장할 만 하다.

카카오 뱅크는 기존의 은행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카카오 뱅크가 기존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자유로운 송금과 입금, 그리고 공인인증서 같은 이상한 시스템이 필요없는 사용의 편리성, 자유롭게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영업할 수 있는 유연성 등이 아마도 카카오 뱅크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카카오 뱅크뿐만 아니라 다른 핀테크가 나타나면서 기존 은행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기존의 은행은 어떻게 될까? 답부터 말한다면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카카오 뱅크는 기업과 국가 같은 거대한 고객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카카오 뱅크가 아무리 커져도 개인의 금융, 더 나아가 가계의 금융을 일부 담당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카오 뱅크 같은 핀테크는 기존의 은행보다는 블록체인 금융 프로젝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현존하는 은행을 제외하고 어떤 것도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간의 금융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 은행의 업무영역은 국가 권력의 문제이지 업무효율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업무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과 은행의 역할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많은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은행이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심지어 비탈릭까지도 뱅킹은 살아 남을 것이나 뱅크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기술이 세계를 바꿀 것이라는 기술만능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들은 은행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은행과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은행을 없어지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은행이란 국가권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보다도 은행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더 중요하다. 뱅킹이 바뀌더라도 뱅크는 살아 남는다에 난 한표를 건다.

블록체인이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의 거래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가장 먼저 기대를 모았던 것이 금융이었다. Andreas M. Antonopoulos가 쓴 가장 뛰어난 암호화 화폐에 관한 책의 제목도 “비트코인, 블록체인과 금융의 혁신”이었다. 비트코인을 넘어 블록체인 2.0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 이더리움도 사실 그 내용을 보면 비트코인에 스마트콘트락트를 얹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스마트 콘트락트라는 것도 현재의 금융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최근 엄청난 규모의 ICO가 행해지면서 세상 모든 문제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현실화되면서 가장 먼저 눈을 돌렸던 분야가 금융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카카오 뱅크의 개가가 블록체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블록체인이 금융의 혁신을 주창했지만 그에 합당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카카오 뱅크같은 전통 IT기술에 입각한 핀테크가 블록체인이 주장했던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카카오 뱅크의 출범으로 블록체인이 오히려 전통 IT기술에 추격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만약 카카오 뱅크가 이 정도의 팽창을 계속한다면 과연 블록체인기술에 입각한 금융의 혁신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상당 기간 동안 블록체인 기술에 입각한 금융기법이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의 거래를 담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국가와 국가 그리고 기업과 기업은 매우 폐쇄적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만의 폐쇄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ICO를 통한 개별 프로젝트로서의 블록체인 기술이란 결국 카카오 뱅크 같은 핀태크가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블록체인 금융의 가장 큰 적은 기존의 은행이 아니라 카카오 뱅크같은 핀태크라는 것이다.

분산화와 익명성이라는 것이 모든 분야에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분산화되면 속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익명성이 너무 강해지면 국가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 결국 국가와 블록체인 금융과는 일정한 정도에서의 타협이 불가피해진다. 그렇다면 전통 IT기술에 입각한 핀테크와 블록체인 금융프로젝트간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분산화와 익명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편리함을 버리고 블록체인 금융 프로젝트를 지원할 것인가?

우선 나부터도 익명성이라는 것에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국가가 정의를 세우겠다는데 그것을 위반하면서 익명성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스티밋 동지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또한 중앙집중적 효율성의 달콤한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중앙집중화된 암호화화폐 거래소인 Poloniex가 그렇게 횡포를 부려도 우리는 거기서 완전히 빠지지 못한다. 분산화된 거래소가 있어도 나는 단 몇 초를 참지 못해 이를 갈면서 Poloniex를 사용한다. 그리고 욕만 한다. 인간의 행태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카카오 뱅크의 성공적인 출시를 바라보면서 블록체인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었던 금융분야 프로젝트가 쉽지 않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울한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불행하게도 우울함과 불안함은 항상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란 본시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이성보다도 본능에 입각해 생존한다. 본능을 거슬르면 생존하기 어렵다. 본능의 영역은 이성적 판단보다 훨씬 정확한 경우가 많다. 우울함과 불안함은 본능의 영역이다.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흐릿한 본능보다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여튼 블록체인 대표 기능중의 하나라고 여겨졌던 금융 프로젝트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을 하면서 이글을 마친다.

완전하게 정리된 생각이 아니라 흐릿한 생각을 이리 저리 정리한 것이라 독자들이 읽어 가는데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초벌생각이라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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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S와 이더의 싸움,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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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eos를 한글 자판으로 치면 ‘댄’이 된다. 댄이 이것을 알고 EOS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이오스는 댄인 것이다.

우스개 소리 하나 더 하겠다.
예전에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한 분에게 들은 소리이다. 해군장교로 입대를 했는데 영어를 잘해서 아주 높은 분 통역장교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께서 어느날 미군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통역은 내가 아는 분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은 연설할 때 4자성어를 잘쓰고 또 그것으로 유머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미국사람들은 연설을 시작할 때 ice breaking이라고 한다면서 그분께서는 특별히 유머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영어로 통역을 해도 웃을 내용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심을 하던 통역장교는 그 높은 분께서 바야흐로 자기식 썰렁한 유머를 하자 미군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지금 사령관께서 매우 우스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거 영어로 하면 정말 하나도 안 웃깁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웃지 않으시면 저는 돌아가서 죽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미군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마구 웃었다고 한다.

연설을 마치고 부대에 돌아온 사령관님께서는 저녁에 참모들과 식사에 특별히 통역장교를 참석시켜서 “야 이친구 정말 영어 잘해 !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잘 통역했어.”라고 했다고 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법이다.

각설하고 오늘은 EOS와 이더간 서로 치고 박는 문제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보고자 한다.
오늘 @clayop님께서 댄과 비탈릭간의 설전을 한글로 번역해서 올려주셨다.

사실 EOS가 처음 시도되면서 앞으로 EOS와 이더가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한 예측들이 있었다. 당연히 두가지 의견으로 나뉘어 졌다.

첫 번째 이오스와 이더가 화해를 한다는 견해였다. 이오스가 이더를 기반으로 ICO를 하며 이오스에서 이더의 스마트콘트락트를 수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오스와 이더는 종교전쟁을 끝냈다는 평가가 있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이오스와 이더는 절대로 화해를 하지 않을 것이며 이오스는 이더의 기술적 문제를 파고들어 이더의 시장을 이오스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것은 필자의 견해였다.

최근에 댄과 비탈릭의 논쟁을 보면 이오스와 이더가 화해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즉 첫 번째의 종교전쟁을 끝냈다는 입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필자가 제기한 두 번째 입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시간을 두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선견지명이 더 있었어’와 같은 자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댄과 비탈릭의 논쟁을 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댄과 비탈릭이 서로 치고 박았지만 그 내용을 일반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캐스퍼와 그래핀의 방식에 관한 문제제기이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무슨 말인지 잘 알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두 가지 중의 세가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첫째는 자기자신도 잘모르고 말하는 경우, 두 번째 대중에게 제대로된 이야기를 설명해주기 실을 경우, 세 번째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경우이다.
필자는 댄과 비탈릭의 기술에 관한 논쟁은 세 번째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무지하게 중요하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소비자나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그들의 일일 뿐이다. 그들이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적인 효용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술적으로 문제가 되면 대중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댄과 비탈릭이 블록의 형성과정에 이오스와 이더가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가 궁금하지 않다. 문제는 어떤 것이 제대로 된 서비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것이 효율적이며 경제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오스와 이더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댄이 맞으네 이더가 맞으네 하면서 서로
비난하는 종교전쟁에 빠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단순한 투자가로서 필자는 이오스와 이더의 기술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수익구조가 어떻.게 되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누차에 걸쳐 말했지만 블록체인이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돈을 벌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중에서 수익구조가 제대로 잡혀있는 것은 스티밋을 빼고 단 한 개도 없다. 물론 스티밋도 수익구조가 제대로 갖추어 질지는 한참을 더 가봐야 한다.

그러나 네트워크의 가치가 가입자수에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맥카프의 법칙을 고려해 볼 때 스티밋이 앞으로 획기적인 가치상승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스티밋 가입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스티밋은 다양한 경제적 가능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각설하고 경제적 수익구조의 측면에서 이오스와 이더를 살펴보자. 사실 투자자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오스는 Dapp으로부터 사용료를 받고 이더는 사용자로부터 GAS를 받는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이오스는 중간 사용자, 이더는 최종 사용자로부터 비용을 받겠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유리할까? 기본적으로 이오스는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기 어려운 구조이다. 비트쉐어나 스팀에서 트랙잭션마다 비용을 받지 않아서 이렇게 빠른 속도를 자랑할 수 있었다. 이오스가 Dapp으로부터 사용료를 받겠다는 것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래핀 엔진의 특성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더는 최종사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는 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이더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더가 POW(작업증명방식)을 채택하다보니 비트코인과 같은 구조로 갈 수 밖에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POS 방식으로 전환하면 최종 사용자로부터 비용을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이오스가 Dapp으로부터 사용료를 받는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아마 Dapp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이오스보다는 이더에 Dapp을 올리려고 할 것이다. 처음부터 비용에 대한 부담을 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최종사용자에게 비용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누구라고 그렇게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기술적 환경에서라면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오스에 프로젝트를 올리려는 Dapp의 숫자는 매우 적을 것이고 그것은 결국 수익구조의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반대로 이더에는 Dapp들이 많이 몰릴 가능성이 있다. 당장의 비용이 들지 않는데 이더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프로젝트가 잘되면 당연히 최종 사용자가 몰릴 것이고 그러면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더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항상 따라다닌다. POS도 아니고 POW 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엄청나게 많은 Dapp을 플랫폼에 올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그야말로 난제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더의 수익구조인 GAS비는 플랫폼의 속도를 더욱 떨어 뜨릴 것이다. 수익구조가 플랫폼의 기능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더가 POS로 가서 속도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겠다고 한다면 EOS처럼 Dapp에게 직접 수수료를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더는 이오스보다 더 많은 모순을 않고 있다. 비탈릭은 그런 이더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기 때문에 경쟁자인 이오스의 기술적인 문제를 건드린 것 같다. 그런데 그런다고 이더의 문제가 해결될까?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시장이 해결할 것이다. 시장은 가장 냉정하고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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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를 보고(이것도 좀 까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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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사촌 동생을 만나 한양도성을 같이 걸었다. 영화 덩케르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괜찮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는 히틀러가 일부러 공격을 안한거 아니냐고 묻는다. 난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3일간 독일군의 진격을 멈추게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미스테리라고 답했다. 내 사촌동생은 머리가 좋기로 이름난 친구다. 역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만일 히틀러가 독일군의 진격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면 영국과 프랑스는 재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은 항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마치 프랑스군이 외곽을 간신히 방어하고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의 공격을 막아내서 덩케르크에서 철수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역사왜곡이다.

영국군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히틀러의 잘못때문이었다. 그것은 세계사의 수수께끼다.
왜 히틀러가 공격을 계속해서 영국과 프랑스군을 소탕하지 않았는가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소설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누구도 히틀러가 왜 그러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독일의 역사를 통해서 유추해보자면 내생각은 다음과 같다.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를 완전히 패배시켜서 무너뜨리고자 하는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은 프러시아 당시부터 보오전쟁과 보불전쟁 그리고 제1차 셰계대전을 치른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군이 패배해서 철수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준다. 프로이센군 총참모총장 몰트케를 위시한 군인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체면을 지켜준다. 그 이후 보불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으로부터 받은 운혜에 보답한다. 보불전쟁이 벌어졌을때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의 배후를 치지않았다. 그러나 보불전쟁에서 군인 몰트케는 완벽한 군사적 승리를 주장한다. 결국 빌헬름 황제는 독일황제의 대관식을 프랑스에서 올리면서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독일이 패배하자 프랑스는 독일에게 가혹한 항복조건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필자는 히틀러가 몰트케가 아닌 비스마르크가 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애시당초 영국과 프랑스를 적으로 돌리려는 생각을하지 않았다. 폴란드 침공이후 오랜기간동안 말로만인 전쟁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히틀러는 자신의 적을 소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극우주의인 나찌가 극좌인 볼세비키를 적으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히틀러는 소련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과의 전쟁을 위해 프랑스와 영국을 철천지 원수로 만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가 비록 괴뢰이지만 비시정권을 수립하고 프랑스 지역 전체를 정복하지 않았던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히틀러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일전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의 암묵적 지원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많은 역사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제2차세계대전 진행과정에서 영국의 처칠은 독일과 소련이 서로 죽을 때 까지 싸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을 고려해보면 히틀러의 이런 판단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한 문제니 이정도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이정도만 이해해도 영화 덩케르크를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녁에 집에와서 있는데 딸아이들이 덩케르크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내가 한번 보아야 하겠다고 했더니 지금 한번 더 보자고 한다. 그래서 따라 나섰다. 딸아이들이 두번이나 보겠다는 것을 보니 상당히 잘만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영하를 보면서 천안함과 세월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덩케르크에서 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까? 하고 생각했다. 첨 영화제목을 덩케르크라고 한 것이 좀 어색했다는 점을 미리 짚어두어야 겠다.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모두 던커어크라고 나온다. 덩케르크라고 발음하는 것이 뭔가 어색했다. 그런데 현지 발음이 던커어크가 아니고 덩케르크라고 한단다. 혼란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이 왜 이 영화를 두번씩이나 보려고 했을까? 난 감독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가 궁금했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서일까? 큰 딸은 이 영화의 의미는 생존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이야기 한다.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고 본응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이지” 어선에 숨어서 탈출을 기다리던 병사들이 배를 물에 뜨게 하려면 무게를 줄여야 한다면 영국군 깁슨으로 위장한 프랑스 군을 쫓아 내려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감독이 영화에서 이 말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난 급박한 장면에서 이런 문학적 대사를 읆조리는 것이 정말로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대사는 관객이 그냥 느낄 수 있어야지 그냥 배우가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그건 3류 아닌가 생각한다. 딸아이는 자신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그런 이유로 싫어하는 바이나, 이번의 경우는 상황에 부합한다며 나의 평가를 반박한다. 딸아이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난 감독이 관객들에게 그런 주제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내 생각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수준이하였다. 생존에 대한 기묘한 비틀림과 영웅주의를 뒤섞어서 뭐가 뭔지를 모르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섞어찌개를 먹는 기분이다. 만일 삶과 죽은 그리고 생존의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장이야기까지는 그럭 저력 참을만 했다. 그러나 영국 공군의 영웅주의는 영화를 완전히 3류로 만들어 버렸다. 전쟁영화에서 영웅적인 분투는 약방의 감초이다. 감독이 그런 부분을 도외시 할 수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감독은 연료가 떨어져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귀환을 포기하고 독일군 폭격기를 공격하려고 할때 조종사의 표정에서 드러난 삶과 죽음의 선택의 문제를 그리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영웅주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의 주제를 일관하게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조가 뒤틀려 있는데 배우의 연기만으로 주제를 이어간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영화말미에 처칠의 덩케르크의 철수가 승리라고 하는 부분을 강조한 것은 누구 말처럼 영국의 국뽕 영화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영화의 겪을 한번 더 떨어 트렸다.

좋은 소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영국군 깁슨으로 위장했다가 마지막에 어선에서 배를 버리고 나오라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죽은 프랑스 병사의 이야기는 매우 의미있는 주제꺼리 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한 에피소드로 절하시키고 말았다. 과연 세계적인 감독이 만든 영화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딸아이들은 독일군의 폭격기 공격으로 폭파되어 침롤하는 영국군 함선을 보면서 천안함과 세월호를 떠올렸다고 한다. 인간은 경험으로 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난 아이들이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으로 그렇게 엄청난 심리적 상처를 받았는지 몰랐다. 딸아이들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주제에 환호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멧세지에 감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딸아이들의 평가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니 새벽 2시이다.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영화 보면서 마신 커피 때문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의 새벽을 보내고 있다. 누워서 잠못자고 있는 것 보다 이렇게 영화평이라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영화를 보려고 내가 불면의 새벽을 헌납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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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니엑스의 스팀 동결을 보면서(이것도 까칠한 내용입니다)

폴로니엑스에서 스팀과 스팀달러의 출입이 중지된지 상당기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폴로니엑스와 여타 다른 거래소의 가격차이가 약 20%정도까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비트렉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트렉스를 기준으로 하였다
어제 10시7분경 폴로니엑스는 42587사토시였고
비트렉스는 50140 사토시였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는 그 격차가 약 10%정도로 줄었다.
아침 8시 46분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폴로니엑스는 46820사토시였고 비트렉스는 50450이었다.

스팀달러는 스팀과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이제까지 이런 가격차이는 없었다.
폴로니엑스에 비코를 보내서 스팀을 사려고 했으나 지금 비코를 움직이는 것이 불안한 듯해서 그냥 두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이것이 스팀과 스팀달러의 동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알트코인은 지갑별로 크게 가격 차이가 없었다.
비트렉스에서는 스팀이 동결되지 않는데 폴로니엑스에서는 동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전에도 필자가 폴로니엑스의 스팀 동결이 폴로니엑스의 의도적인 것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한 적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steemit.com/coinkorea/@oldstone/4czcu9

그 때 기술적인 문제라는 댓글도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만일 그것이 기술적인 문제라면 지금까지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폴로니엑스에서는 그것이 스팀의 문제라는 취지의 안내문을 올려놓고 있다.
그럼 스티밋의 개발자들은 모두 먹고 놀고 있는 것인가?
스티밋의 개발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스팀에 잘못투자한 것이다.

스티밋의 개발진들이 이런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예 한국의 개발진에게 문제해결을 의뢰하는 것이 낳을 것 같다.

만일 폴로니엑스의 의도적인 동결이라면 스팀 보유자들은 폴로니엑스와의 거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 하여야 한다.
일전에 스티밋의 증인중 누군가가 폴로니엑스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스팀의 자체 거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만일 폴로니엑스가 스팀을 의도적으로 동결했다면 그것은 남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한 범죄적인 행위이다.
자본주의란 재산권을 최상의 권리로 삼고 있다. 만일 의도적인 동결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인 것이다.
필자도 상당수의 스팀이 폴로니엑스에 묶여 있다.
폴로니엑스에 있는 자산을 다 이동시키면 앞으로 폴로니엑스는 지워버릴 것이고 더 이상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모른다. 아마 모두 다 그럴것이다.
분명한 것은 스티밋 개발팀의 무능력이거나 폴로니엑스의 의도적인 사유 재산권 침해 둘중의 하나이다.
스티밋도 입장을 분명하게 밝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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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newbie 는 뉴비에게(좀 까칠한 내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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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kr-newbie를 처음 제안한 것이 벌써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조금만 지원하면 kr-newbier가 자생적으로 커 갈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동안 kr-newbie 테그를 보면서 제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kr-newbie가 그냥 kr 테그와 큰 차이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newbie꼭지를 떼어도 되실 분들도 여전히 kr-newbie 테그를 달고 계시더군요.
kr-newbie 트랜딩에 가보면 newbie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 헌비들만 가득합니다.
거기에 저도 영광스런(?)자리를 하나 떡 차지하고 있더군요.

헌비들도 뉴비테그에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뉴비를 위해서 꼭 필요한 팁을 올려준다든지 또는 알려준다든지 하는 것은 올릴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헌비들이 뉴비테그에 올린 글을 보면 대부분 그런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포스팅입니다.

뉴비테그를 제안한 것은 뉴비들이 처음와서 스티밋에 적응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뉴비들끼리 있어야 누가 열심히하는지 잘하는지도 구분이 가능하지요. 그래서 도움도 줄수 있습니다.
뉴비들도 자신들끼리 있어야 스스로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일 그런 것 없이 기존의 큰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존재감이 없어져서 흥미를 잃어 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kr-newbie 테그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평판 55이상 되시는 분들은 kr-newbie 테그를 이용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뉴비의 기준을 평판 55 이상으로 잡은 것이 너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밑에서는 금방 올라가더라고요

저도 간혹 글을 쓰면서 뉴비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글은 kr-newbie 테그를 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저도 kr-newbie를 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글은 kr-newbie로 올립니다.

저혼자만의 보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평판 55이상인 분들이 kr-newbie를 이용하실때는 그 포스팅에 보팅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헌비들이 kr-newbie 테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뉴비가 활동하는데 포커스를 맞춘다면 역시 kr-newbie는 뉴비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뉴비들에게 도움을 주시겠다면 댓글을 다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티밋 동지들께서도 양해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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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본 일과 관점의 차이(뻘글인데 제목을 좀 멋있게 보이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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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직장 동료와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가는 도중 조금 한가한 도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반대편 차선에 어떤 사람하나가 누워있었다. 팔다리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운전하던 직원이 갑자기 유턴을 해서 그 앞으로 갔다. 누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차를 운전하던 직원은 여성이었는데 평소에도 의협심이 남 다른 사람이었다. 필자도 그렇고 뒤에 차를 탔던 직원도 그렇고 어어 하는 사이에 그 앞으로 갔다. 누가 보던지 간에 큰일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운전하던 직원이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차를 내려서 보니 아줌마 한사람이 길어 누워서 가슴을 치면서 울고불구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릴때 동네에서 간질병환자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처음 그 광경을 보고서 간질병환자라고 생각했다. 간질병환자는 발작을 하면 잘 잡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판단하는 법인가 보다. 차에서 내려보니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 아줌마는 조금 살집이 있었는데 거의 실성한 듯 울부짖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간질병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마치 세상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괜찮아요, 지 성질 못이겨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조금 마른 사내는 계면 쩍어 하는 표정이었다.

부부로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할일이 없어졌다. 세사람의 일행이 다시 차를 타고 가던 길로 갔다. 조금 가다가 내가 말했다.

“그 남자 인생 참 피곤하겠다”

그랬더니 운전하던 여직원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는 그 부인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을까 생각했는데요”

난 잠시 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 아줌마 때문에 그 사내가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만일 의협심 대단한 우리 여직원의 생각처럼 남편이 잘못해서 부인이 너무 억울해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뒷좌석에 타고 있던 신중하기 짝이 없는 김박사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저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젊은 사람 답지 않게 항상 신중해서 애 늙은이 같은 친구인데 이번에도 그런 대답을 한다.
명색이 내가 대장인데 내편을 들어 줄 줄 알았구만 애누리 없이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그것이 김박사의 매력이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왜 의리의 여직원과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을까?
내가 은연중 남성위주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첫번째 그 아줌마가 길가에 누워서 발작적인 행동을 보인것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아줌마가 보인 행동이 통상 말하는 사회통념에서 벗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얼굴에서 그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사회통념이라는 거울의 우상에 빠져 있었고 그 남자의 얼굴에서 읽었던 체념섞인 우울한 표정에서 남성으로서의 동병상린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과거에 내가 속한 조직에서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비판할때 당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내가 하는 주장이 옳고 틀리고를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를 가지고 나를 비도덕적이고 나의 주장이 틀리다고 이야기 했다.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난 그런 현실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20년 이상 교우를 하던 사람과도 절교를 해버렸다.

만일 그 아줌마가 정말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정말 무엇인가 엄청나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보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한두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또 그 고정관념의 틀에 빠져 있었다.

그 아줌마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아줌마는 정말 억울할 수도 있었는데 난 그 아줌마의 너무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오히려 그 아줌마가 무슨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다.

어제 저녁 내내 그 아줌마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아줌마는 무슨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마치 2살짜리 어린아이처럼 길가에 누워서 땡깡을 부렸을까?

그런 마누라와 살아가는 그 사내는 얼마나 불행할까?

왜 난 사실도 제대로 모르면서 느낌으로만 상황을 파악하고 지레 짐작을 했을까?

다시 한번 나를 믿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 최대의 적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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