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안보칼럼) 송영무 국방장관과 문정인특보 : 의도인가 혼선인가

20171002

Screenshot_20170625-233051.jpg

일전에 송영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문정인 특보보고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송영무 국방장관은 청와대의 경고를 받고 사과를 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주로 외교안보라인의 혼선이라는 주제로 다루어졌다. 외교안보란 통일된 입장정리가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외교통일라인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통령이 정부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며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송영무 국방장관이 문정인 특보를 그렇게 폄하한 것은 문정인 특보의 말이 그야말로 특별했기 때문이다. 문정인 특보는 이런 저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특유의 정치외교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가 이야기한 것을 간단하게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미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지 못할 정도라면 한미는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

두 번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보고 대화를 해야 한다.

세 번째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전술핵 배치를 해서도 안되고 핵무장을 해서도 안된다.

네 번째 미국이 전쟁을 하려고 하면 한미동맹을 파기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다섯 번째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지하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 중지해야한다.

문정인 특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송영무 국방장관 같은 사람은 기가 찰 일이다. 문정인 특보가 하는 말은 한미관계를 완전하게 파탄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우리나라 보수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관계의 훼손은 곧바로 우리나라 안보의 훼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 국익을 위하는 일이 된다고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한국전쟁이후 국가건설과 발전의 거의 전부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다시피했다. 막대한 차관은 물론이고 온갖 특혜를 제공받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룬 부는 거의 미국의 특혜로 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냉전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반면 냉전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안보논리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오던 냉전적 질서의 연장선상이었다. 1990년 냉전은 붕괴되었다. 냉전의 붕괴는 한반도 안보의 가장 큰 축이던 미국의 역할변화를 요구했다. 우리가 우리문제에 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부의 자각적 요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작전권 환수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보수정권에서도 전작권 환수를 요구할 상황까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전시작전통제권은 그대로 연합사령관이 보유하고 평시작전권만 한국 합참이 보유하는 수준으로 정리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와서 전작권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붙어서는 한반도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안보질서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싸우면 한국편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중국이 미국보다 더 중요한 안보파트너라는 이야기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남북이 서로 대화를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하면 냉전의 유물인 한반도의 분단과 적대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유럽에서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여전히 한반도는 냉전적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필자는 그런 이유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한바 있다. 냉전적 갈등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투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안보상황은 이념적인 갈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냉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작동해왔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념보다는 경제의 동력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갈등은 이념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의 근본을 농업에 두느냐 상업에 두느냐? 정치적 이념이 자유냐 아니면 전제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한반도는 그동안 냉전적 갈등구조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구조가 중층적으로 존재해왔다. 1990년도를 지나면서 겨우 냉전적 갈등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 주변에는 변함없이 수천년을 내려오던 세력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냉전적 구도로 보고 그들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미국에게 북한이란 자신의 안위를 가장 결정적으로 위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미국에게 북한은 냉전적 질서하에서 서로 전쟁을 하던 관계를 뛰어넘어 미국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이 완성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부추겨서 미국을 타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위 이이제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완전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군사적인 타격을 해서라도 북한의 핵 미사일 무장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 전쟁을 해서 북한을 파괴할 경우 북한의 장사정포나 미사일로부터 타격받아 피해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죽어가는 놈들이 무엇을 못하겠나?

만일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굴복할 경우, 우리는 항상적으로 북한의 핵위협 하에 살아야 한다. 결국 점진적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둘 다 수용할 수 없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의 꽉 짜인 안보구도의 틈을 어떤 방식으로든 벌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껏 안보정책과 관련하여 현 정부가 한 것을 정리해보자

먼저 중국의 비난을 감수하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사드를 배치했다. 사드배치는 그간 더불어 민주당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에 결연하게 반대했다.

세 번째 그러면서 전작권 전환을 요구했다.

자 이러한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장관의 갈등을 정부내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무슨 문제냐? 라고 이야기 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대통령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안보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현상을 타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면 필자가 문대통령을 너무 후하게 평가해준 것일까?

만일 문정인 특보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평판을 담보로 한 헌신이라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정인 특보는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을 기용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시소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안보상황을 보면서 마치 열국지를 읽는 듯한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지금의 상황이 어찌 끝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동로마제국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분열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는 단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향이 다소 나와 다르더라도 한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한 민족과 국가는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민족과 국가는 사라졌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안보칼럼) 송영무 국방장관과 문정인특보 : 의도인가 혼선인가’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항토길을 걸으면서

20171001

며칠간 약기운에 정신이 없어서 황토길 걷기를 하지 못했다. 마음먹고 황토길 산책에 나섰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황토길 산책로 입구에 놓여 있는 보관함에 넣었다. 맨발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한발 한발 내딛는다.

발바닥을 통해 이런 저런 느낌이 전해온다. 제일 먼저 차가운 느낌이다. 며칠 전에는 분명 시원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차갑다. 그 무덥던 여름이 어제 같았는데 이제는 다시 가을이 되었다.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세월이라는 것이 이렇게 빠르구나 하는 것을 다시 느낀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간이 빠르고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내가 느끼는 것이 그들이 느낀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을 내걷는다.

맨발로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줄 알았는데 맨발로 내가 직접해보니 좋았다. 운동효과가 다르다. 평소에 걷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신발신고 걷는 것과 맨발로 걷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했다. 그런데 걸어보니 다르다. 한 시간 정도 걸었는데 배가 고프다. 에너지 소모가 그냥 걷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맨발로 걸으면서 좋았던 것은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다른 일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한 걸음 한걸음이 위험한 것이 맨발로 걷는 것이다. 물론 내가 걷는 길은 관청에서 시시때때로 손을 보아서 깨끗하고 안전하다. 그러나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감촉은 나를 늘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발바닥이 둔감한 것 같지만 맨발로 걸어보면 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그만 모래알 하나도 내 발바닥은 느끼며 나를 채근한다. 조심하라고.

한걸음 한걸음씩 조심하다 보면 내 정신은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언젠가 해인사에 간적이 있었다. 해인사 대웅전을 올라가는 계단이 좁고 무척 가팔랐었다. 잘못 발을 헛 디디면 낙상하기 딱 맞춤이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물었다.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계단 오르는데 집중하라고 그렇게 만들었단다. 걸을 때는 걷고 먹을 때는 먹고 누울 때는 누으라는 것이다. 정신을 한군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득도한 것이라고 했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생각이 얼마나 천방지축인가를. 나도 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은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맨발로 걷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없이 발바닥으로 온 정신이 집중되는 것이다.

내가 미처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바닥은 나에게 이야기 한다. “여기는 부드러운 곳이군. 좋아. 음 여기는 좀 딱딱하고 모래알갱이도 많아. 자칫하면 발을 다칠 수 도 있으니 조심하라구.” 발바닥이 나에게 건네는 무수한 경고를 듣다 보면 다른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간다.

조금 걷다보면 감각이 무디어지기도 한다. 나에게 경고를 거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발바닥도 화끈화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앞을 볼 수 없다. 고개를 숙이는 각도가 조금 높아질 뿐이다.

왕복 1km 정도 되는 길을 한번 오가는데 20분은 족히 걸린다. 세바퀴 정도 걸으면 1시간이 지난다. 그 정도 되면 가벼운 허기가 느껴진다. 기분 좋은 느낌이다. 배고픈 느낌이 기분좋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어릴 때는 항상 배가 고팠다. 하루 세끼 밥을 굶은 적은 없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 밥을 굶긴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이웃의 아이들은 가끔 끼니를 건너기도 했다.

한세대 사이에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기니 어찌 세대간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본 세대와 풍요속의 또 다른 빈곤을 겪는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내가 전정 내 아이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과거의 빈곤을 아이들이 이해해 줄까? 그런데 아이들이 내가 겪은 과거의 삶을 이해한다고 해서 지금 그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난 아이들에게 내가 어릴 때 어떠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일 뿐이다.
내가 그들의 삶을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기연민은 통상 내가 가장 어려운 때 찾아오곤 했다.

내발은 자유로웠다. 양말과 신발 속에 꼭꼭 쌓여 있던 내발은 자유를 만났다.
맨발은 자유로웠다. 내 신체의 일부가 대지를 접촉하는 그 느낌.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내 발이 언제 다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맞서야 했다.
그렇다 자유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유란 선택이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얻을 수 있는 선물인 것이다.

기분 좋은 배고픔을 느끼며 수돗가에 앉아 발을 씻는다. 발의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 다시 앉아 하늘을 본다.
양말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내발은 다시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영어의 몸이 되려한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항토길을 걸으면서’

스팀잇의 질서수립 과정과 인간의 경우

20170930

Screenshot_20170625-233051.jpg

스팀잇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 문제의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스팀잇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떠나가야 하는 이유로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잘못된 점을 고쳐가기 위해 싸웠다. 많은 문제를 넘어왔지만 앞으로도 많은 문제로 서로 싸우고 갈등할 것이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스팀잇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이 정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도덕과 윤리의 수립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만인대 만인의 투쟁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국가라고 하는 기구가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는 기존의 수많은 기구들과 조직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냈다. 어떤 경우에는 전제왕권국가가 공화국이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이 만들어진다.

물론 그 법과 원칙은 강자에게 유리하게 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이 법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법을 어기면 강자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메카니즘은 큰 창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군대와 총 칼이 힘을 상징했다면 지금은 돈이 권력을 상징할 뿐이다.

가상공간이든 현실공간이든 인간이 활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은 차이가 있다. 현실공간은 물리적인 권력이 작동을 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가상적인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의 힘이 어디서 기반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분명한 것은 영향력이다.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총칼이나 돈과 같은 힘에만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상공간의 특징이다.

가상공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능력이 바로 권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필자는 블로그 활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경우는 잘 모른다. 1년 넘게 스팀잇 활동만 해왔다. 따라서 필자의 경험은 스팀잇 세계에 한정된다. 다른 블로그에서 활동했다 하더라도 지금의 스팀잇에서 처럼 역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간 스팀잇은 정말로 많은 단계를 거쳐서 지금까지 왔다. 어떤 블로그나 SNS가 스팀잇과 같은 과정을 겪은 적이 있을까? 지금 스팀잇이 가는 길은 거의 전인미답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스팀잇이 겪은 경험은 가상세계에서 윤리와 질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구축되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간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스팀잇의 문제해결 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첫 번째 스팀잇의 윤리와 질서의 기본이 되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었다. 예를 들자면 표절과 같은 경우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곪아 터질 때 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을 때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두고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 번째 문제해결 방식이 혁명적이었다.
문제의 정도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어떤 한사람이 문제를 지적하면 마치 둑 터진 저수지처럼 된다. 그리고 마치 혁명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해소된다. 통상 개량이나 개선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혁명과 같은 방식으로 대청소가 이루어진다.

스팀잇 동지 여러분들이 느끼셨는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스팀잇의 문제해결 방식이 혁명적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 혁명을 보는 것 같았다.

문제가 해소되면 다시 일상으로 편안하게 돌아 간다

네 번째, 스팀잇 동지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도덕률은 주로 공정성에 관한 문제였다. 다른 것은 대충 지나갈 수 있어도 공정성이 일정수준에서 훼손된다고 느낄 경우 그 반발은 매우 컸던 것 같다.

다섯 번째, 평상시 활동할 때는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계정이 힘을 좀 쓰는 것 같지만 대청소의 와중에 스팀파워의 다과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상세계 특히 스팀잇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물론 현실세계의 법적 도덕적 기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기준이라는 것이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세계의 기준과 차이가 있다.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우나 본질적이고 근본적이며 생래적인 기준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는 듯하다.

스팀잇과 현실세계의 가장 큰 차이는 스팀잇에는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이 현실세계보다 공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차이가 스팀잇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짓는데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곳이 스팀잇이다.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져 있는 곳이 스팀잇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질서가 구축되고 윤리가 수립되는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혹시 여기에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될 듯하다.

스팀잇 관찰을 통해서 인간이 초기에 어떻게 질서를 수립해나갔는지를 비추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칠까?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필자가 생각한 것은 적어도 스팀잇의 과정을 보자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의 생각이 옳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이 가지는 생래적 공통분모위에서 서로 갈등하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것이 스팀잇을 통해본 필자의 지금까지 결론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스팀잇의 질서수립 과정과 인간의 경우’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친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20170929

Screenshot_20170625-233051.jpg

친구가 회사의 연구소를 크게 만들었다며 소식을 돌렸다. 물론 고교친구다. 남자들에게는 고교 친구 말고 다른 친구는 별로 없다.

직장은 동료이지 친구가 아니다. 그리고 직장동료는 직장에 같이 있을 때만 동료이지 직장 관두거나 옮기면 더 이상 동료도 아니다.

연구소 사진을 보니 꽤 좋다. 친구가 잘되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주변에 자랑도 한다. 만일 그가 직장동료라면 질투심부터 났을 것이다. 그가 다름 아닌 고등학교 동창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성공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이상한 점이 하나씩 있다. 자기 사업을 하거나 크게 돈을 버는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별 볼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별 볼일이 없었다는 것은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내 주변에서 학교 다닐 때 공부 꽤나 했다는 친구들은 예외없이 모두 백면서생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대학에서 교수나 연구소 또는 의사, 변호사, 기업임원 정도이다. 그것 정도면 훌륭하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모두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저 자기가 열심히 해서 자기 잘 먹고 사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 훌륭한 삶이 아니다. 훌륭하고 성공한 삶이 되려면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여가 없는 삶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성공이라고 하는 말은 단순하게 돈만 많이 번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진정한 성공은 기업을 일구어 종업원의 생계를 책임질 때라고 생각한다.

간혹 소식이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사업을 크게 하는 경우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을 일구고 그래서 경영인이라는 칭호도 듣는 친구들이 있다. 필자는 그들을 보고 성공했다고 해주고 싶다.

성공한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왜 고등학교때 공부 잘하고 인물 잘났던 친구들은 기껏해야 그 정도에 머물고 말까 ? 왜 성공했다고 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학교 다닐 때 문제아에 속하던 아이들이었을까?

그러면서 내가 다닐 때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은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성공한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문제아의 범주에 속했었고 공부 잘했던 아이들은 기껏 자기밥벌이 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라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왜 공부 못하던 문제아가 공부 잘하고 말씀 잘 듣던 모범생보다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잘못되어도 여간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교육의 내용이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화석화된 지식만을 배웠지 스스로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성공한 친구들은 거리에서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던 것을 몸소 체험해서 배웠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혹사를 당하고 있다.
그 좁은 사다리에 올라타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불쌍하다.
경험상 하는 말인데.

중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는 것. 그거 모두 말짱 도로묵이더라.

스팀잇 동지들
아이들 공부 잘하느니 못하느니 가지고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시길

인생 생각처럼 흘러가는 경우 별로 보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던져보는 모험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던져보고 싶은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암호화화폐의 기린아 비탈릭도
대학 1년 다니다가 중퇴하고 이더리움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친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소문과 사실사이

20170928

며칠 전에 좀 남사스러운 포스팅이 올라왔다. 필자가 그 포스팅을 모두 플랙처리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았을 것이다. 필자가 그 내용을 플랙 처리한 것은 스팀잇에는 미성년자들도 여럿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고 소문의 대상인 사람과 스팀챗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팀잇이 불법적인 목적으로 여성들을 이용하는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스팀잇은 정부당국의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신문에 나올 일이다.

본인과 스팀챗을 통해서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필자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신의 지인을 돕기 위해 본인 명의로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올린 적이 있다.

두 번째 왓포 마사지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면 소명하겠으며 경찰서가서 해결하겠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필자는 세상에 아니 무슨 이런 일이 있는가 했다. 이제까지 스팀잇KR은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왔다. 무슨 이상한 규레이터 한다는 사람이 흘려놓은 진흙탕(그 사람은 터키에서도 진흙탕을 쳐서 거기서도 추방되었다)과 표절시비를 넘었는데 지금 또 이런 이상한 소문에 말린 것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럴 것이다. 주제의 성격이 그렇다.

그가 구인광고에 올렸다고 해서 불법적인 일에 관여되었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매우 부주의하거나 적어도 정신이 없는 친구이다. 그는 자신이 진짜 관련되어 있다면 본인의 전화번호를 떡하니 올려놓을 일이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도 한다. 그냥 한 번 올려놓았는데 일이 일이 이렇게 일파만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팀잇 동지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다. 그가 본인 명의의 전화번호를 올려놓은 것을 악의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그 판단이 다를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세상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저격사건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을까? 아마도 이 소문의 대상자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활동을 해왔다. 얼굴도 다 밝히고 여기저기 온동네 뛰어 다니면서 뭔가 한다고 열심히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밋업도 쫓아 다녔다. 미국까지도 갔다가 왔다. 그런데 그가 계획한 여성밋업 바로 직전에 이런 폭로성 기사나 나왔다.

필자도 무지 당황스러웠다. 필자도 금지옥엽처럼 딸을 키운다. 내 생명보다 소중하다. 그런데 별 이상한 포스팅이 나왔으니 어찌 정신이 어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는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넘게 그를 대상으로 조사 아닌 조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가 불법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만일 그가 결백하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에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 된다. 자신의 얼굴까지 공개했기 때문에 그는 지금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웬만한 정신력 아니면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팀잇 여성들이 범죄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이 각각 평가할 것이다.

폭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만일 그가 불법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이번 사건의 최대 가해자는 폭로자일 것이다. 이미 그는 폭로의 방식을 택하면서 스팀잇 이용자 전체에게 폭행을 가했다. 어린아이 어른 가리지 않는 방식의 폭로를 택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폭로로 인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한다. 그는 폭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마음대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만일 그의 폭로가 사실과 차이가 있다면 폭로자는 그 대상자에게 가장 무자비하고 비열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년여 그간 스팀잇은 많은 산을 넘어왔다.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갈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폭로에서 지목당한 그는 아직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아무런 죄도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책임은 누가 저야 하나?

이런 사건에 누가 쉽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부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공론화되지 않는거냐고 하는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공론화활 것인가?

이미 그는 엄청난 처벌을 받고 있다.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와는 전혀 별개로 말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소문과 사실사이’

(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스파임대를 완료했습니다.

20170927

Screenshot_20170625-233051.jpg

먼저 여성 밋업참석자들에게 스파를 임대했습니다.
모두 14계정입니다. 임대 프로그램인 vessel에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개수를 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1인당 1450개 정도씩 위임했습니다.
보내드린 계정입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잘못이 있으면 스팀챗이나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mani
@imyss.you
@hjk96
@leemikyung
@leesongyi
@honeythegreat
@renakim
@redpiano
@s292153s
@siritable
@ezgibaki
@ramengirl

임대 기간은 앞으로 두 달간 11월 27일까지입니다.
터키에서 두 분이 오셨다고 하는데 두 분이 아닌 한 계정으로 계산했습니다.

계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신
@romi @lovehm1223 두 분은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알려주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팀잇 여성분들의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hunhani님에게도 스파2만개 임대했습니다.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팀잇은 그동안 복잡다단한 과정을 겪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그런 어려움은 모두 잘 겪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극복할 것입니다.

비온 뒤에 땅은 굳어집니다.
스팀잇이 지금 겪고 있는 일들도 결국은 우리들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팀잇에서 남을 보지 말고 자신을 보았으면 합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스파임대를 완료했습니다.’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