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안보칼럼) 송영무 국방장관과 문정인특보 : 의도인가 혼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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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송영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문정인 특보보고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송영무 국방장관은 청와대의 경고를 받고 사과를 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주로 외교안보라인의 혼선이라는 주제로 다루어졌다. 외교안보란 통일된 입장정리가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외교통일라인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통령이 정부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며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송영무 국방장관이 문정인 특보를 그렇게 폄하한 것은 문정인 특보의 말이 그야말로 특별했기 때문이다. 문정인 특보는 이런 저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특유의 정치외교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가 이야기한 것을 간단하게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미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지 못할 정도라면 한미는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

두 번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보고 대화를 해야 한다.

세 번째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전술핵 배치를 해서도 안되고 핵무장을 해서도 안된다.

네 번째 미국이 전쟁을 하려고 하면 한미동맹을 파기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다섯 번째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지하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 중지해야한다.

문정인 특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송영무 국방장관 같은 사람은 기가 찰 일이다. 문정인 특보가 하는 말은 한미관계를 완전하게 파탄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우리나라 보수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관계의 훼손은 곧바로 우리나라 안보의 훼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 국익을 위하는 일이 된다고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한국전쟁이후 국가건설과 발전의 거의 전부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다시피했다. 막대한 차관은 물론이고 온갖 특혜를 제공받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룬 부는 거의 미국의 특혜로 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냉전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반면 냉전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안보논리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오던 냉전적 질서의 연장선상이었다. 1990년 냉전은 붕괴되었다. 냉전의 붕괴는 한반도 안보의 가장 큰 축이던 미국의 역할변화를 요구했다. 우리가 우리문제에 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부의 자각적 요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작전권 환수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보수정권에서도 전작권 환수를 요구할 상황까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전시작전통제권은 그대로 연합사령관이 보유하고 평시작전권만 한국 합참이 보유하는 수준으로 정리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와서 전작권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붙어서는 한반도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안보질서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싸우면 한국편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중국이 미국보다 더 중요한 안보파트너라는 이야기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남북이 서로 대화를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하면 냉전의 유물인 한반도의 분단과 적대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유럽에서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여전히 한반도는 냉전적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필자는 그런 이유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한바 있다. 냉전적 갈등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투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안보상황은 이념적인 갈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냉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작동해왔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념보다는 경제의 동력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갈등은 이념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의 근본을 농업에 두느냐 상업에 두느냐? 정치적 이념이 자유냐 아니면 전제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한반도는 그동안 냉전적 갈등구조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구조가 중층적으로 존재해왔다. 1990년도를 지나면서 겨우 냉전적 갈등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 주변에는 변함없이 수천년을 내려오던 세력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냉전적 구도로 보고 그들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미국에게 북한이란 자신의 안위를 가장 결정적으로 위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미국에게 북한은 냉전적 질서하에서 서로 전쟁을 하던 관계를 뛰어넘어 미국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이 완성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부추겨서 미국을 타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위 이이제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완전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군사적인 타격을 해서라도 북한의 핵 미사일 무장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 전쟁을 해서 북한을 파괴할 경우 북한의 장사정포나 미사일로부터 타격받아 피해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죽어가는 놈들이 무엇을 못하겠나?

만일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굴복할 경우, 우리는 항상적으로 북한의 핵위협 하에 살아야 한다. 결국 점진적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둘 다 수용할 수 없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의 꽉 짜인 안보구도의 틈을 어떤 방식으로든 벌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껏 안보정책과 관련하여 현 정부가 한 것을 정리해보자

먼저 중국의 비난을 감수하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사드를 배치했다. 사드배치는 그간 더불어 민주당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에 결연하게 반대했다.

세 번째 그러면서 전작권 전환을 요구했다.

자 이러한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장관의 갈등을 정부내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무슨 문제냐? 라고 이야기 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대통령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안보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현상을 타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면 필자가 문대통령을 너무 후하게 평가해준 것일까?

만일 문정인 특보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평판을 담보로 한 헌신이라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정인 특보는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을 기용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시소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안보상황을 보면서 마치 열국지를 읽는 듯한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지금의 상황이 어찌 끝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동로마제국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분열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는 단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향이 다소 나와 다르더라도 한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한 민족과 국가는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민족과 국가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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