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 공기가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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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내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공기가 다시 나빠졌다. 시내에서 남산이 흐릿하게 보였고 북한산은 아예 사라졌다. 며칠전에 한강에 나갔을때 느꼈던 상쾌함은 사라져버렸다. 불과 2-3일사이에 이렇게 날씨가 변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잿빛 하늘을 보면서 다시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제 우리 이정도에서 멈추면 안되나 ? 부자나 가난한자나 삶의 길이는 다 정해져있다. 돈 많다고 오래사는 것도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좀 편안할 수 없을까 ? 아귀다툼하듯이 돈에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노릇을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살적 삶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

코로나19 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서울의 잿빛 공기를 보고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전세계 정부는 모두 코로나 19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이 코로나19이전보다 나쁜지 모르겠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깨끗한 공기로 숨쉴 수 있는 삶이 좋다.

세상이 복잡하고 간단하지 않다는 것 모르는 것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전처럼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방향으로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

같이 차를 타고 가던 딸아이가 온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그럴 것이라고 날 위로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한강에서 자전거타고 가다가 아무데나 벤치에 앉아서 맑은 공기 마시며 시 한 수 읽고 싶다.

한국은 이미 최악의 공기오염 국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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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예측 : 국가의 역할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어려움에 빠진다. 우리앞에 놓여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19와 경제문제이다.

경제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미국은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트럼프를 위시한 정치인들은 3/4 분기나 4/4 분기가 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봉착한 문제는 부분적인 고장이 아니라 전세계적 시스템의 총체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스템적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는 또 어찌 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것이다 .

미국은 2008년 처럼 돈을 퍼부어서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2008년에 약 4조달러 정도를 발행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얼마나 더 발행할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발행하기로 한 것이 벌써 3조가까이 되는 것 같다. 위기의 폭과 깊이가 더 크기 때문에 2008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의 기능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이제 앞으로 국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하는 것을 보면 과거 그들이 사회주의라고하는 방식으로 간다는 것이다. 영미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아마 역사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중세 봉건시대에서 절대왕정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만들어졌다. 동양 처음부터 매우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확립했다. 만일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효율적인 활용을 든다면 동양는 서양보다 적어도 1500년 이상을 앞서는 경험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 동양 국가들이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봉건시대를 오래 겪었던 국가다. 당연히 중앙집권화된 효율적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가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의 세상은 국가권력이 매우 강력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권력의 강화는 자연스럽게 자본과 경쟁하는 양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자본은 국가를 운영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양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무력해지고 나면 무엇이 대안이 될것인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15세기부터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될때 까지 약 500년간 번성했다. 가장 전형적인 자본주의 공화국이었다. 소수의 부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업은 모두 국유화를 했다. 조선업은 국가가 운영했다. 그리고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 까지 시민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을에 우물을 몇개를 파서 운영하느냐 하는 문제도 다 보살폈다. 아무리 어려워도 베네치아의 시민들은 굶어죽을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오백년동안 다 한번의 시민폭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베네치아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이었지만 그들은 현명해서 모두가 다 살아야 자기들의 부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그 무엇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것을 만들어 내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념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패권을 확보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그리스, 공화정의 로마, 절대왕정과 중상주의의 프랑스, 자유방임주의의 영국, 사회주의의 소련, 케인즈 주의의 미국, 신자유주의의 미국이 그렇다. 과거에는 정치적 이념이 중요했으나 점차적으로 경제적 이념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경제적 이념이 무용한 상황인 것 같다. 여기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는 자가 세계적 패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패권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패권이란 결국 세계적 규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앞으로 전세계적 규모의 경제체제가 가능하지 않으면 패권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서 두드러진 것의 하나는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에 있어서는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경험이 있는 한국과 중국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처럼 교통과 소통이 발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유럽의 지방자치란 중세적 후진성의 흔적에 다름아니다. 만일 중앙정부가 효율적일 수 있다면 지방자치란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더 커지고 경제의 운영도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계획경제와 같은 부분도 지금보다 많이 도입되어야 할 것 같다.

그냥 횡설수설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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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중간 평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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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선배 한분과 이야기 하는데 앞으로 세상은 B.C.와 A.C.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한다. Before Corona, After Corona 라는 이야기다.

코로나 19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는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1단계를 지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어느정도 상황이 통제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올해 겨울에 다시 제2차 감염확산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번 경험으로 인해 한국은 매우 잘 대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지금 상황을 처리하는데 전전긍긍하다가 제2차 감염에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독일과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매우 어려워질 것같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19세기 선진국과 후발 국가들의 대응의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 대만 싱가포르는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소위 후발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한때 한국의 모델을 매우 성공적이라고 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한국모델이 인권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국가가 개인정보를 함부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의 자유는 구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정보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이 사회의 안녕을 현저하게 해한다면 무작정 보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기존 선진국과 후발 선진국의 차이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위시한 후발선진국이 훨씬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한국의 대응은 매우 의미가 있다. 국가의 역할과 국민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초기에 이런 저런 정책적 판단을 잘못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각종 전문가 그룹들이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방향을 제대로 잡아갔다. 정부도 무작정 고집을 부리지 않고 합리적인 비판을 수용하는 융통성을 보였다. 그리고 의료인들이 적극적으로 현장에 참가하면서 상황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일반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개인차원에서의 방역에 참가했다. 이번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은 국가의 총체적 역량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다. 만일 일본과 유럽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인정보를 충분하게 보호하면서 성공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했다면 그들의 주장과 비판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을 통제하는데 완전하게 실패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가장 먼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본과 유럽의 지식인 사회는 자국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한번 보자. 정치인들은 잘못할 수 있다. 정치적 이유로 상황을 숨기고 왜곡할 수 있다. 이상한 것은 일본의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철학사상을 주름 잡았던 유럽도 이상하게 이번 코로나19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닫았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일본과 유럽 그리고 미국이 지금과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은 지식인 사회가 부패했거나 무능했거나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

이번 코로나19사태는 한국을 위시한 국가들의 총체적 능력이 유럽과 일본의 총체적 능력을 추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제까지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사상과 철학을 일방적으로 수용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제 우리가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단계가 지나지 않았나 한다. 어떤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이론도 현실문제의 진단과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면 무용하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이제 우리가 서양만 바라보던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100년 넘게 우리는 서양으로부터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인 듯 하다. 따라가면서 적당하게 살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국가와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 방법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지금부터 진짜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작성일자2020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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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한, 굳이 추진할 필요가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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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무장관이 국회에서 시진핑의 방한에 관한 답변을 하는 것을 보았다. 코로나19로 당장은 오기 어렵지만 올해안에는 꼭 방한하는 것을 합의했다는 것이다.

왜 굳이 시진핑의 방한을 추진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 일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안생긴다.

현정부는 시진핑 방한의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드 배치이후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풀어보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한국의 경제적 관계는 중국과 불가분이다.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하면 결국 세계는 좋던 싫던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나누어질 수 밖에 없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핵심은 중국이 차지할 수 밖에 없다.

현정권을 두고 지나치게 중국경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10년 후면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욱 긴밀해질 수 밖에 없다.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역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재벌들도 자신들의 2세를 미국보다 중국으로 유학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한 포석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시진핑의 방한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 편으로 생각해보자. 시진핑이 한국에 오는 목적은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한국에 시혜를 베풀기 위해서 일까? 아마도 안보적인 측면이 훨씬 클 것이다. 사드의 개량이나 추가배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고 중거리핵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반대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 정부의 약속을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미중패권 경쟁의 한 방법으로 한국을 집중 타격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약한 고리를 외곽에서 부터 잘라내는 것은 당연한 중국의 전략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이 구축한 패권적 세계질서의 취약한 모서리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만일 중국이 의도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교역을 들면서 한국에게 미국과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거부하면 교역에 문제가 생기고 중국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미국과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딜렘마적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 경사되면 당장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만일 중국이 요구를 들어주면 미국으로 부터 팽 당할 확률이 많다. 앞으로 10년후에 경제적으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이래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에게 특별 대우를 했다. 한국이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진열장같은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미중패권경쟁이 마무리되고 국제질서가 어느정도 정리되면 우리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상실하기 전까지 쉽사리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무슨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현정부는 시진핑의 방한을 계기로 사드개량과 추가배치를 하지 않으며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미국에게 애시당초 우리 정부에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남의 힘을 빌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 나중에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면 미국의 힘을 빌릴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스스로 거부할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미중경쟁이 진행되고 있을때는 줏대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쪽 모두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그래야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한참 진행중인 미중패권경쟁의 무대에 우리가 스스로 올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

시진핑의 방한을 굳이 추진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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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위기가 두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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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코로나 19는 어느정도 안정적이 된 듯하지만 아직 미국은 여전히 심각한 듯 하다. 확진자가 줄어들다보니 경계심도 떨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코로나 19가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관리되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당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아주 통찰력있는 일부의 사람들만이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진단이 맞는지 틀린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통상 당시에는 좀 이상한 소리 한다는 사람들의 진단이 올바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인 군집을 이룸으로서 안정을 찾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논리적인 추론의 궤적을 따라가기 보다 집단의 사고에 머무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고독과 벗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앞으로의 경제상황이 1929년 대공황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경제학자들은 그런 전망을 하는 것일까?

코로나19 때문일까? 만일 코로나19 때문이라면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경제위기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일부의 학자들 중에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겪을 경제위기가 단 몇달만의 코로나19의 감염때문이라면 뭔가 석연치 않다.

하루하루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우리가 당면하게될 위기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지 못했다. 아침에 앉아서 정리해보니 다음 세가지 정도가 동시에 발생한 것 아닌가 한다.

첫째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문제

둘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모순

셋째는 원유가격 하락으로 인한 문제

상기한 세가지가 거의 동시적으로 작용하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위기를 2008년 경제위기와 상황이 다르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세가지 요인이 서로 착종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세가지 문제는 각각 그 원인도 다르다. 미치는 범위도 다르다. 훨씬 광범위하다. 코로나 19는 당장의 실물경제, 생산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째의 문제는 전세계적 금융시스템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중추적 기능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의 문제는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영향이지만 지금의 국제정치질서를 유지해 온 미국의 패권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평소같으면 한가지 문제 만으로도 버겁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세가지 문제가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바로 이런 문제가 다가오는 위기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것이 아닌가 한다.

작성일자2020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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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미국과 유럽의 중국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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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반응이 매우 강경하다. 코로나19 발병초기 중국 당국이 대응을 잘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중국 정부가 고의적이라기 보다는 초기의 상황판단 미흡때문인 듯하다. 초기 상황에 대한 파악과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의적인 것과 잘못한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중국도 과거에 조류독감과 같은 사건들이 있어서 그에 대한 준비가 있었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우한에서 문제가 생기자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다. 그때는 전세계가 다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 등은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다. 한국에서도 초기에 정부의 대처가 조금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정부는 이번주가 고비네 다음주가 고비네 하면서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가려 했다. 아마 그런 점에서는 한국 정부나 중국정부나 큰 차이가 없었다.

대만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대응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한국에서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점점 더 적극적인 조치를 하게 되었다. 의료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사태를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도 크게 보면 한국과 유사했다. 처음에는 대충 어떻게 넘어가겠지 하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중국 정부의 통계를 제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상황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인접하고 있었지만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의 상황이 안정되어가면서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악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이나 유럽의 대응방식도 한국이나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얼마있지 않으면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유럽도 마치 그정도 감염병은 일상적이니 그 정도는 별일 아닌 것 처럼 행동했다.

미국과 유럽도 크게 보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확산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피해가 더 커진 것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공공의료체계가 부족하고 국가의 동원능력 그리고 시민의 참여의식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미국의 경우 사망자의 70%정도가 의료보험이 없는 흑인들이라고 한다. 초기대응의 실패와 공공의료 체계의 미비가 미국과 유럽에서 피해가 더 커진 이유가 아닌가 한다. 남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성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감염병에 대한 대처과정을 언급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중국에 대한 대응이 단순한 감염병 수준의 대응을 넘는다고 느끼게 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중국 양자간의 패권경쟁이 진행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코로나19이후 미국과 유럽의 손을 잡고 중국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서양전체가 합심해서 중국에 대응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혼자서 중국에 대응하기 어려우니 유럽과 같이 손을 잡고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유럽이 공동전선을 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너무 큰 나라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 중국이 전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미국과 유럽은 중국보다 열세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소위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중국이 더 크기 전에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전쟁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 직접적인 전쟁을 제외한 모든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간접적인 전쟁도 충분하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최근 미국과 유럽이 동원하고 있는 기제가 대중의 분노인 듯하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의 백인대중들에게 작게는 중국인 크게는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은 위기에 빠졌을 때 인간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경향이다. 미국의 정보기관 같은 곳에서 이런 현상을 잘 조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과 유럽이 우리에게 중국에 같이 대응하자는 요구가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나라 사회도 중국에 대한 증오심이 어느정도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공포심이 일차적으로 바탕에 깔려있다. 게다가 중국이 하는 행동은 우리같은 주변국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도 많다. 오만하고 거만하며 막무가내다. 사람들이 싫어할 만하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한 책임은 중국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나쁘다고 함부로 하면 안되는 법이다. 무엇이 우리에게 최상의 이익인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냉철한 손익계산을 하지 않고 분위기에 따라가다가 큰일 나는수가 있다.

지금 우리는 분위기에 들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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