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teepshot.org/api/v1/image/93f3c929-18c9-4022-8471-e8de9cef2c31.jpeg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At The End of Autumn 6’
https://steepshot.org/api/v1/image/93f3c929-18c9-4022-8471-e8de9cef2c31.jpeg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At The End of Autumn 6’
20171121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 3걸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그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새 조롱에 뻐꾸기가 있는데 울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뻐꾸기는 필요없다며 목을 친다.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의 미남에 두뇌회전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서양 문물도 제일 먼저 받아 들였다. 그러나 잔인했다. 결국 자기가 믿던 부하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만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울게 만든다고 한다. 토요토미는 책략의 달인이었다. 그는 안되면 되도록 만들었다. 돈을 주던 여자를 주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결국 오다 노부나가의 유산을 이어받아 천하를 쟁패한다. 재주는 화를 부르는 법. 명나라 정벌을 주장하며 임진왜란을 일으킨 그는 결국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 전에 죽고 만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하여 멸망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어릴때 부터 인질생활을 하면서 인내가 몸에 배인 사람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실망한 적이 없고 어떤 성공에도 기뻐한 적이 없다. 어려움뒤에는 즐거움이 있고 성공뒤에는 실패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고의 세월을 기다린 다음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멸망시키고 일본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다. 그 이후 개항을 하기전까지 200년간 일본은 천년 넘게 서로 싸우던 전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코인판을 보면서 일본의 영웅 3걸이 생각난 것은 스팀의 차트를 보면서 였다. 아시다시피 스팀 가격은 거의 거의 바닥수준이었다.
우리는 스팀잇이 잘되기를 바랐다. 스팀잇이 잘되면 스팀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켓도 하고 론도 하고 별의별 방법을 다했다. 대부분 무위로 끝나고 내부 분란만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실망한 사람은 떠나가고 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은 들어왔다.
스팀잇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뻐꾸기 목을 따듯 떠나가 버렸다. 스팀잇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사람들은 지쳐버렸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너무 격무에 시달리다가 지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붙잡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회에 자신의 지분을 더 확대할 것이다. 그야말로 바겐세일이니까 말이다.
챠트를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챠트가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한다. 내 생각에는 고난의 행군이 끝날 때가 된 듯하다.
난 스팀을 많이 사모았지만 스팀잇 동지들에게 웬만하면 스팀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예전에 대하락기에 스팀을 사모으면서 같이 사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하락의 폭은 무서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내려갔고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그때 질책을 받았다. 당신이 책임질 것이냐고 왜 책임지지도 못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스팀을 사라고 해서 손해를 보게 하느냐 말이다. 가슴아픈 지적이었다.
그 이후 난 계속해서 스팀을 사모았지만 공개적으로 스팀을 사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그때의 힐난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해보는 것을 감수하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스팀가격이 거의 바닥에 도달한 듯 하다. 앞으로 상승을 기대한다. 지금까지 토구가와 이에야스가 뻐꾸기 울기를 기다리는 것 처럼 기다렸다. 인내는 최고의 전략이다.
오래 참은 만큼 많은 보상이 따르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곳간에서 인심이 나듯, 스팀잇에 서로서로 도와가는 기풍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뻐꾸기 울리기’
https://steepshot.org/api/v1/image/946d80be-ab32-4c00-ba73-603c171c3314.jpeg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At The End of Autumn 5’
20171121

오랫만에 선배를 만나 식사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문제 저런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 했다.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곧바로 후회가 밀어 닥쳤다. 요즘 들어 말을 하면 바로 후회가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옳은 말을 해놓고도 후회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왜 후회를 하게 되었을까? 나의 후회는 공허함에서 온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데 공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상대방이 내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다. 그동안 옳은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경험 때문이다.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경우 그것은 대세를 거슬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옳은 말도 대세를 거스르면 환영 받지 못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자신들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수라는 울타리가 편해서 그런가 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것은 혼자있는 것보다 여럿이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지옥도 같이가면 가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외롭고 고독한 것은 싫어한다.
침묵은 금이라고 한 말은 침묵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말을 해도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말씀이 있었다는 창세기의 첫구절을 생각해보자면 말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것 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놓고 공허한 이유는 대답없이 울리는 메아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말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조급함이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저녁 자리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에 전전반측 했다.
아무리 나이 들면 무엇하나? 내 세치 혀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데…
사람의 가치는 세치혀를 어떻게 잘 간수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상황을 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으면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제대로 받아 들어지지 않을 때의 말은 가치가 없다. 그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침묵이 금이라는 것은 그때를 이르는 말이리라. 그런 줄 알면서도 말을 했다.
내가 느낀 공허함은 그런 줄 알면서도 말을 한 내 자신이 한심해서이다.
많은 말을 하고 아침까지 후회가 된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항상 후회한다. 말하고서…’
https://steepshot.org/api/v1/image/73ca2593-ac48-4f56-9c2a-92ef6f2bc1ee.jpeg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At The End of Autumn 4’
20171120
산굼부리는 억새가 좋았다. 올라가는 길이 모두 억새였다. 무려 30년만의 방문이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는 선굼부리 찾아오는 길이 멀고 멀었는데 지금은 차로 금방이다. 제주 여행은 렌트카가 답이다.
내가 처음 산굼부리를 방문한 것은 1982년도다. 그때 산굼부리가 관광지로 소개된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산굼부리 밑에는 검은 염소가 몇마리 있기도 했다. 같이 여행간 몇몇 친구는 산굼부리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산굼부리 주변을 산책했다. 사람들은 산굼부리 정상부에 주로 모여 있었다. 주변의 산책로로는 잘 가지 않았다. 추억을 되새기면서 산굼부리 주변길을 걸었다.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오다보니 산굼부리 뒷편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에 무덤이 여럿 있었다. 제주에는 무덤 주변에 돌을 쌓는다. 바람에 무덤이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무덤 구경을 하다가 한쪽 구석에 이상한 비석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하여 초혼비다. 초혼비란 주검을 찾지 못했을 때 세우는 것이 아닌가? 무슨 사연이 여기 있어 산굼부리 구석에 누가 초혼비를 세웠을까 궁금했다.
1907년 태어나 1950년에 행방불명된 김금순이란 이름의 아주머니를 기리며 조카가 초혼비를 세운 것이다. 7월 초에 행방불명되었다니 전쟁이랑 관계가 있었나? 이 분은 자식이 없었기에 조카가 초혼비를 세운 것이겠지. 사람이란 나고 죽는다. 죽고 나면 모두 잊혀진다.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나 많이 나고 죽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살아있을때는 영원한 것 같지만 죽으면 모두가 잊혀지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유언이 생각난다. 자신은 유물론자이며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트로츠키는 육신이 곧 자기자신이며 육신이 사라지면 자기자신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세상이란 한번 밖에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트로츠키같은 유물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던가 윤회를 믿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죽더라도 내 영혼이 어떤 모습과 형태로든 우주에 남아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냥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이 여인은 어떤 연유로 사라졌을까? 보아하니 그 당시 드물게 신식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다. 한번도 본적이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길가에 있는 무덤들은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초혼비라는 것을 말은 들었으나 본 것은 처음이다. 아주머니를 그리는 조카의 마음을 따라 영혼이 있다면 이 비석에 깃들어 있기를 기원했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사람사는 이야기다. 한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놓고 떠난다.
나 또한 그럴 것이고 내 자식 또한 그럴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초혼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상념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삶이란….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살며사랑하며) 산굼부리의 어느 초혼비를 보고’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