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척결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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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는 그 무엇인가 흔적을 남긴다. 대부분 공과 과를 동시에 남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시대도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자 마자 그들을 잘 알고 있던 선배 한 분이 친문세력은 부정부패로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벌써 3년전이다. 문재인 정권은 수구반동세력을 청산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정권도 하지 못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심판을 받을 시간이 다가오지 않나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부정부패는 오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국과 그 일가의 행동에서 드러난 온갖 잡스러운 짓들은 제정신이라면 하기 어려운 짓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어렵게 여기면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다.

범죄에도 격이 있다.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정해진 선을 넘을 수도 있다. 이른바 대북송금같은 것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통수권적 차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범죄라면 당당하게 역사앞에서 자랑스럽게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런 일은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와서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을 보고 뭔가 크게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친노세력들이 동교동계열을 제거하기 위한 정략이었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서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수면하에 숨어 있다. 신라젠 문제, 조국일가의 행위로 드러난 사모펀드 문제, 라임문제, 울산시장 선거개입 문제 등등이다. 미래통합당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많은 사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그들이 수구반동이어서라기 보다는 어떤 야당도 가질 수 없었던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정권을 심판하지 못했다는 무능력 때문이다. 보수정당은 도덕성이 부족해도 사람들이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총체적인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할 시대의 정신은 개인적 착복을 위한 권력형 부정부패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제까지의 어떤 정권보다 부정부패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많다. 그런 것들이 깨끗하게 해소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적 사명이 아닌가 한다. 문재인 정권은 도덕성이 부족한 점에서는 보수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하게 갖추었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보여줄 것인지는 모르겠다. 삼성과 기민하게 손을 잡는 모습을 보니 보수정당으로서의 능력은 미래통합당보다 나은 것 같다.

자본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거기가 지옥이 된다. 동양의 자본주의와 서양의 자본주의가 다른 이유다. 동양에서는 권력이 자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서양은 자본이 권력을 만들었다. 권력은 자본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이 인민대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같은 민주주의를 하더라도 결과와 과정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부정부패는 권력이 자본에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자본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본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권력을 통제하기 어렵다. 한국의 민중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자본과 권력의 결탁을 막아내야 하는 이유다. 과거 우리 정권들은 권력이 자본을 통제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자본과 결탁을 했다. 당연히 부정부패의 음습한 냄새가 나지 않을 수없다.

어떤 정권 어떤 정치인에게도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잘못했으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 부정부패로 처벌을 받은 범죄인이 다시 국회로 들어오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법을 어기는 일도 격이 다르다. 개인의 착복을 위해 범법을 저지른 자는 어떤 경우라도 용납되면 안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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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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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잠적소동이후 드러나는 북한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고 보면 김정은의 잠적소동은 세상의 주목을 끌기 위한 계산된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잠적소동 이후 북한의 행동을 보아하건데 앞으로 북한의 행동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북한은 이제까지 단 한번도 호락호락한 모습을 보여준적이 없다. 그런 태도가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그들이 그런 태도는 한국전쟁이후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살아온 생존방식의 흔적이다.

언론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평안남도 사인리의 새로운 ICBM관련 활동을 주목하고 있고, 국정원은 SLBM의 발사 실험 가능성을 언급한 있다.

북한 내부에서는 5월 8일 실시된 우리군의 서북도서 해공군 합동훈련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할 가능성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긴장국면으로 나갈 확률이 많은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우리정부가 총선에서 압승해서 조금 여유있게 대북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공세적인 방향으로 전환한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서 자신들의 정책방향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정부보다 미국의 입장을 더 심각하게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미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따라 대응의 수위를 조절해 나갈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등장이후 미국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이후 그런 방식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뭔가 낌새가 좋지 않은 것은 북한이 중국과 관계를 다시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중국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북한은 중국과 관계가 좋았던 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이유의 절반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남한은 북한 덕분에 중국과 국경을 직접 접하지 않아 북한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학자인 선지화는 여러번 북중관계는 가깝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우리는 보고싶은 대로 보려고하는 경향이 있다. 북중관계는 한미관계와 전혀 같지 않다.

그런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중국과 관계를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전략적 도발을 위한 사전 포석의 단계이다. 북한은 이미 미국과 대화를 통한 관계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힘으로 압박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결정적인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ICBM이든 SLBM이든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방식일 수도 있다. 아마도 미국 국민들이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정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 국민들이 직접 정치권에게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조성하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미 미국의 정치지도자와 어떠한 관계개선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이 지지를 하지 않더라도 목숨걸고 반대는 하지 않는 상황을 조성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라면 북한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코로나19이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상당한 행동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이제까지 북한의 행동을 보면 항상 선수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바둑에서 선수는 중요하다. 그래서 바둑기사들은 일부 실리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선수를 잡으려 한다. 북한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선수를 잡으려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생존해온 비결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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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후 : 정직과 상식을 향해, 플라톤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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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이 과거와의 결연을 요구하는 국민의지의 표현이었다면 앞으로 국민의지는 무엇을 지향할까? 지금도 서양에서는 국가이성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이성이란 말은 지금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짐이 국가다’라고 하던 루이 14세 시대에 나온 말이 아직까지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민의지’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지금의 우리시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선거는 참 재미있다. 미국이나 서양과 달리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예상하지 않았던 선택을 한다. 그것을 ‘국민의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의지’가 아니면 ‘국민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으로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는 어떻게 될까? 이번 총선으로 국민들은 과거와 단절이라는 선택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미래통합당과 같은 정당은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화장을 해서 모습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화장을 해도 썩은 냄새는 지울 수 없다.

지금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정직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와 국가다. 정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의보다는 정직이란 말이 더 타당한 것 같다. 그 정의라는 것이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진영적 정의를 지향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랬다면 그런 진영적 정의는 결코 보편적으로 정의롭지 않다. 무엇보다 그들은 정직하지 않았고 상식적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들의 정직하지 않음과 몰상식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조국사건이후 문재인 정권의 속성과 더불어민주당의 실상을 분명히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총선이후 새로 국회에 들어간 소위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정직하지 않고 비열하며 몰상식스러운 점은 개탄스럽다. 우리는 그들에게 속고 살았던 것 같다.

당장은 총선에 이겨 힘이 강하니 무슨일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지니고 있는 속임수와 부패의 씨앗은 어떤 방식으로든 발아하게 될 것이다. 사실은 이미 부패의 씨앗이 한참 자라고 있었으나 시대착오적 반동주의의 잡초로 가려져 버렸을 뿐이다. 이제 그런 시대착오적 잡초를 뽑아 버렸으니 앞으로는 자라나오는 속임수와 부정부패의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들은 음습한 반동세력의 그늘에서 몰래 커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그늘이 없어져버렸으니 그들은 백주대낮에 노출되었다. 더욱 잘보일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사람은 정직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지금의 정권은 정직하지 않고 비상식적이다.

조국의 재판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족 집단의 거짓말을 보면서 내가 이런 자들에게 통치를 받고 있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위안부 관련 단체를 했던 국회의원 당선자의 말과 행동에서 저열한 위선을 느낀다. 열심히 정치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졌는데 왜 이런자들이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플라톤은 틀렸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을 가져도 항상 저열한 위선자들이 통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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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의 의미 : 정의와 상식보다 시대정신을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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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난지 3주가 지났다. 이번 총선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분석과 평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정리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이번 총선이 우리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것이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 그리고 정치적 진영논리에 앞서 정의와 상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국문제를 비난한 것은 그런 연유다. 지금도 조국수호에 앞장선 황석영과 조정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을 위선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없다. 나는 정의와 상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사람들이 모드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마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 당연히 대패를 했어야 맞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이 대패를 했고 제3세력도 힘을 잃어 버렸다. 이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선거 끝나자 마자 ‘장부승 교수’가 페이스북에 ‘국민들은 박근헤를 심판했다’는 글을 올렸다. 두고 두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국민들은 상식과 도덕에 앞서 시대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것이다. 지나간 시대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야할 역사의 발목을 붙잡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미래통합당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래통합당은 영원히 미래세대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득표수와 의석수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면서 다음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득표수 차이의 의미를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다음에는 더 큰 표차이로 패배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나 한다.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먼저 세우고 싶어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의지를 이겨먹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미래통합당의 패배로 화가 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국민들은 이제 그런 사람들이 역사와 시대의 무대에서 사라져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수록 정의와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점점 더 멀어진다.

이번 총선의 의미는 시대정신에 대한 정리가 끝나지 않으면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우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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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방위비 요구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

트럼프가 방위비를 연간 14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작년보다 49%인상된 금액이다. 양국 외교부의 협상안 13%인상보다 약 4배를 넘는 금액이다. 미국의 방위비 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우리는 미국과 방위비가 많으니 적으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미국과 지금과 같은 군사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다.

지난 몇년동안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걸머져야 하는 안보적 위협은 더욱 상승하고 있다. 몇달전부터 동맹리스크라는 언급을 한적이 있다.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상당한 정도다. 사드배치가 북한의 핵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고려 때문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사드배치가 북한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북한과 중국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북한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사드배치에 반발했다. 그들이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미국의회에서는 한국에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와 관련한 예산도 반영한 바 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국이 밀어부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크게 이겼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확보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이 미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민들의 저항이 없으면 문재인 정권도 받아들일 확률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문재인 정권은 역대정권 중에서 가장 친미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정도면 미중 패권의 향배가 정해진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미중패권의 힘의 전이 현상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처럼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마냥 수용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야 할까. 닥치고 한미동맹이란 주장은 현재 우리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미동맹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냉전시대에 한미동맹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지 한참이 지났다. 시대가 바뀌면 동맹도 바뀌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해방이후 정부수립하고 나서 미군이 성급하게 철수하지 않았으면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우리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철수를 했고 그래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혹자는 지금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한미동맹이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더라도 전쟁은 일어나기 어렵다. 한국전쟁은 냉전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냉전이 끝났고 상황도 변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사주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해도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북한은 꽤 오랫동안 전면남침을 위한 지상무기체계를 거의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에 비해 우리군의 지상무기체계는 세계적 수준이다. 한국군도 6.25 당시의 한국군이 아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 빨리 한미동맹의 성격을 더 빨리 바꾸었다. 그들에게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금의 한미동맹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란 점이다. 미국이 이익을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들이 전략적 이익을 누리면서 우리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번 트럼프의 요구는 경제적 보상을 넘어서 일종의 공식적 약탈이나 진배없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한미동맹을 소홀히 하면 미국이 온갖 경제적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를 다시 IMF같은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라. 그것은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를 꼼짝 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나 마찬가지다.

방위비를 얼마나 더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성격을 어떻게 바꾸어나가야 하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원래 안보는 자국이 중심이 되고 동맹이 보조적이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거꾸로 였다. 한미동맹이 주였고 우리군은 보조적이었다.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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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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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영원하다고 믿고 있는 우주도 결국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서 소멸해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은 있는 법이다.

이성적 판단의 기준도 불변의 것은 아니다.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평가의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보다는 지속적인 것은 사실이다. 심사숙고하고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한 이성적 판단과 달리 감정적 반응은 매우 휘발성이 강하다. 쉽게 만들수 있고 쉽게 방향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그런 감정들을 조작해서 자신들이 유리하게 이용해 왔다. 백성들은 속적없이 당하기만 한다.

지금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문제이지만 그것은 1970년대 중반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남과 호남은 조선시대 남인세력의 중심지로서 300여년이 넘는 동지적 관계였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획책하면서 지역감점을 조작하면서 지금껏 문제가 되고 있다. 이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통일도 불가능하다. 동서화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남북통일을 이야기한다는 말인가?

옛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남에대한 악감정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듯 하다. 일제강점기에 호남은 가장 많은 착취를 당해왔다. 그러다 보니 쟁의가 많았고 일제관리들은 호남을 불령선인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호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지역감정은 서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일제의 통치수단이었던 것이다. 특히 서울지역에서 호남을매우 싫어하는 감정이 만들어졌다. 일제는 자신의 통치를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호남을 혐오하는 감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통치방법과 박정희의 통치 방법은 유사하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유없이 미움을 받는 이유도 잘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을 혐오하는 감정의 뿌리가 일제강점기에 끝임없이 저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영호남이 사실은 수백년간의 정신적 이념적 동지였다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영남사람들이 호남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도 불과 수십년전의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사악한 음모라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요즘은 천천히 대구 경북지역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친문세력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아마도 대구경북지역의 수구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기 위해 호남에 대한 적대감정을 이용했듯이, 친문세력들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구경북에 대한 혐오감정을 이용하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 놀아나면 안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서울과 평양간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이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는 불온한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호남을 백안시하는 한편, 서울과 평양지역의 서로 미워하는 감정을 치유하고자 했다. 서울과 평양의 축구대회도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치 한일전과 같이 경평전이 열렸다고 한다.

서울과 평양의 대립이 얼마나 심했는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독립을 하면 평양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다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그 말을 듣고 평생 도산 안창호 선생을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충청도 출신으로 조선시대 내내 가장 핵심적인 지역에 있었으니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 이면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필의 충청도 핫바지론은 허구다. 충청도는 조선시대 내내 권력의 핵심이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을 마치 충청도가 오랫동안 변방이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충청도는 항상 권력의 핵심지역이었다.

기호지방과 관서지방의 지역감정도 조선왕조의 통치전략이 아니었던가 한다. 평양감사의 품계가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하는 것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으리라. 결국 해방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평안도 사람들이 한을 풀었다. 이승만도 평양사람이었다.

이북에는 평안도와 함경도간의 지역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한 혐오감정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치 나찌가 유태인에 대한 혐오감정을 증폭시킨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미국의 이런 태도의 배경에 트럼프가 재선을 위한 치졸한 전술이라고 분석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미중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몰아내기 위해 나름 고민한 전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바야흐로 국제사회에도 지역감정을 동원하는 형국이 되었다. 갈때까지 다간 느낌이다.

국가간의 혐오감정이든 국가내의 지역감정이든 그것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거기에 놀아나면 모든 것이 다 망조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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