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스팀잇에 양질의 콘텐츠와 많은 독자는 가능할까 ?

어떤 블로그든 읽는 사람들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스팀잇은 글을 쓰는 것에 집중을 한 듯 합니다. 글을 쓰는데 보상을 주면 좋은 내용들이 많이 스팀잇에 올라올 것이고 그러면 스팀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블로그의 가치는 가입한 사람들의 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이미 전에도 여러번 글을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블로그의 생태계가 안정되게 형성되려면 글을 쓰는 훌륭한 작가보다 훨씬 많은 독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작가가 될수는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독자보다 작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구조입니다. 그나마 작가도 자신이 스팀파워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글을 쓴다하더라도 제대로 보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HF19에서 선형보상을 선택한 것은 공평한 보상을 위해서 훌륭한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거해 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제곱보상이라는 것이 보기에는 불평등한 듯 하지만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함과 평등함을 추구하던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 지금 스팀잇이 직면한 상황은 마치 사회주의가 현실에 직면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질의 콘텐츠가 많아지면 많은 독자들이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유튜브에 아무런 경제적 동기없이 콘텐츠를 보러 가는 것 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선형보상을 채택한 후에 얼마나 좋은 콘텐츠가 생산되었는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보상구조로는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어려운 듯 합니다.

돈은 없더라도 재능이 있는 사람이 스팀잇에 좋은 콘텐츠를 올리면 일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지요.

지금도 스팀잇에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 지는 콘텐츠가 과연 의미있는 양질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물론 트랜잭션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콘텐츠가 트랜잭선만 일으키고 만다면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 여전히 양질의 콘텐츠는 중요하지 않을까요?

스팀잇은 많은 독자가 들어오기도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카테코리라고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그 카테고리로는 제가 필요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유튜브처럼 제가 자료을 보고나면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키워드로 색인작업을 통해서 제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찾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독자로서 필요한 기능은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키워드 몇개 정도로 색인이 가능하게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유튜브 처럼 저의 성향을 파악해서 흥미가 있을 만한 콘텐츠를 계속 추천해 준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큐레이팅에 대한 보상도 많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이나 글을 읽는 것이나 거의 비슷할 정도의 큐레이팅 비율이 되어야 오히려 양질의 컨텐츠가 많이 나올수 있지 않을까요 ? 지금처럼 개나 새나 글을 쓰도록 강요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된 글을 읽었을때 큐레이팅을 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제도 이전에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스팀잇은 요지 부동이군요.

이렇게 보면 지금의 스팀잇은 양질의 콘텐츠를 유인할 수 있는 조건도 불비하고 독자를 유인할 수 있는 기능도 미흡합니다.

물론 저는 스팀잇이 단순하게 콘텐츠와 독자로서 구성된 블로그로서의 가치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 다양한 가능성이 생기게 되리가 믿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여러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블로그를 표방했으면 최소한 거기에는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리한 하락장세에 올라오는 글도 많이 줄었고 또 읽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줄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하락장세에 지쳐서 주저리 주러리 해봅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네드도 관심을 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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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보수의 두얼굴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허름하지만 맛이 있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같이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저의 즐거움입니다. 예전 노인들이 서로 모여 식당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제가 그런 노인이 된 듯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친구들과 앉아서 밥먹고 이야기하고 차한잔 마시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제 친구들은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오늘은 소위 보수주의자들에게 화가 났더군요. 소위 보수정권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의리있고 이념이 분명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념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뭉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말하고 나니까 그럴 듯 하더군요. 반면 운동권이 주축이 된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이념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물론 누구도 영원히 이념과 이상을 지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이념만을 지향할 수 있도록 놔두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점점 보수주의자가 되어 갑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보수주의란 이념보다 이익을 지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수주의의 이념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보수주의에 무슨 이념이 있었던가요 ? 저는 보수주의에 이념이 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보수주의에 이념이 있다면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보수적 이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주어진 조건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위에서 말한 보수주의의 이념이 이상적인 것이라면 우리 현실에서의 보수주의란 기득권자의 권리와 이익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 우리사회에서 기득권자란 누구일까요 ? 다들 재벌과 대기업을 기득권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재벌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당연히 재벌기업이 잘되면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때 낙수효과 운운한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나 10년간 우리는 낙수효과를 기다렸으나 낙수효과는 없었습니다. 낙수효과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는 가정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왜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 저는 우리 사회에 또다른 기득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재발과 대기업의 강력한 노동조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날의 민노총은 더 이상 소외당하고 약한 노동자들을 위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노조원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며 노조원들을 자신들의 자식들도 대를 이어 회사에 취직을 시킬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세습이지요. 우리 나라에서 자신의 직업을 세습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재벌 기업의 오너와 잘나가는 대기업의 노조원 들이지요.

제 친구하나는 이들 귀족 노조원들이 자기 회사의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관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계약직 노동자와 다른 조끼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자신들은 정규직이고 정규직은 계약직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결국 낙수효과가 밑으로 흘러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그물이 어디 중간에서 고여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대 노조가 바로 흘러내려가야 하는 물을 막아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파업을 하면서 마치 자신들을 피해자이며 약자인양 코스프레 하지만 결국 한국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동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에 대충 동의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이상한 구도를 가지고 있군요. 재벌 대기업과 재벌 대기업의 노조들입니다. 민노총도 재벌대기업 노조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요. 그렇게 보면 우리사회의 보수세력은 재벌대기업과 민노총 정도가 되겠군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보수세력이 이렇게 이율배반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두개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어느 한쪽만 눌러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정말 더 어려운 문제는 자신들이 기득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보인양 코스프레 하는 세력들이 아닌가 합니다. 진정한 진보는 거대한 양대 기득권들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는 세력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 지금의 양상은 양대 기득권이 서로 서로 나누어 먹는 구조인 듯 합니다. 이게 극복이 가능한 구조가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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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송광사 2, 지붕의 아름다움

여행을 다니다니다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써놓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다 보면 내가 남이 써놓은 글을 보고 그렇구나 하는 것은 남의 느낌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나만의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여행지에서도 문화유산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역사가 얼마나 되었고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고 하는 것 처럼 지식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느끼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식은 유한하지만 느낌은 무한합니다. 예술이 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지식이 아니라 느낌과 감정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곳도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다 다릅니다. 같은 곳을 여러번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송광사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송광사는 좀 아리송한 절입니다. 승보사찰이라하여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하지만 절 그 자체는 그낌이 아리송 합니다. 다른 절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곳곳마다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라 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많은 것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송광사에서 중요한 곳은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입니다. 오늘날 승보사찰의 명성이 있게 만드신 분이지요. 한국 불교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불교에서 선 수행의 기본을 세우신 분이라고 하면 옳은 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뒷쪽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관음전을 돌아가면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은 매우 급합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자연히 계단 하나 하나 신경써서 발을 디뎌야 합니다. 불교사찰에서 계단은 급하게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에 충실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밥을 먹을 때는 밥먹는데 집중하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때 공부할 생각하고 공부할 때 밥먹을 생각을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원래 분열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얽힌 실타래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얽힌 실타래 같은 의식과 정신을 정리합니다. 그것이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따라 가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정말 쉽지 않더군요.

각설하고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섰습니다. 수백년 넘는 세월을 이겨온 사리탑 앞에 서 있으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다른 사리탑하고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으면서 아주 단아 합니다. 지붕아래에 균형이 잘 맞추어진 동그란 돌이 놓여져 있습니다. 제가 보조국사 지눌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대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오와 점수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불교에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을 보면 보조국사 지눌이 얼마나 선각자적인 수행자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리탑앞에서 보는 송광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비가 그치고 안개가 끼여 있었습니다. 안개는 조계산을 휘감고 돌아 서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용이 토해 놓은 듯한 윤기나는 안개를 배경으로 송광사의 지붕들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제 입에서 ‘아!’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송광사가 천년동안 숨겨왔던 비경을 본 것 같았습니다. 송광사의 제 1경은 안개낀 날 바라보는 지붕의 모습이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송광사의 지붕은 너무나 조화로웠습니다. 검은 색의 기와는 안개에 쌓여 부드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지붕과 지붕은 모두 조화로웠습니다.

송광사에 가시면 반드시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서서 절집의 지붕을 내려다 보십시요. 특히 안개낀 날의 지붕은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다시 지붕들을 쳐다 보았습니다. 위에서 보았던 아름다움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있는 돌담과 지붕의 사이로 다시 겹쳐 보이는 지붕은 위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붕이 무엇인가 모르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라면 아래에서 올려다본 지붕은 거만하게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약한 속살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런지요 ?

송광사는 법정스님이 출가했던 절이기도 합니다. 법정스님이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세우신 절 길상사는 송광사의 옛이름이지요. 인연은 또 그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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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송광사 1, 피안의 세계로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한번 보고 쓱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요즘은 많이 느끼는 여행을 하게 됩니다. 제가 특별히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만사 제쳐 두고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책으로 보고 남이 해놓은 해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인지 모르게 여행을 가면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소쇄원의 담과 같은 것 말입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느낌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의 해석과 느낌에 동의하실 수도 있고 다르게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느낌과 감정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을 간혹 한번씩 내어 놓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해석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송광사에서 제가 느낀 점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3보 사찰이 있다고 하지요. 불보사찰인 통도사, 법보사찰인 해인사,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3보 사찰입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 이후 고승들을 많이 배출해서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송광사에 간 것은 비오는 어느날이었습니다. 조계산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일주문을 통과해서 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입구에서 동행들과 간단하게 산채비빔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천을 따라 오른 쪽에 난 길로 한참을 지났습니다. 마침내 불이문에 도달했습니다.

불이문을 지나니 오른쪽에 세월각과 척주당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었습니다. 가까이가서 읽어보니 사람이 죽고나서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곳이라고 하는 군요. 세월각은 여자들, 척주당은 남자들의 시신을 씻는 곳이라고 합니다. 세월각이라는 것은 달을 씻는 집이라는 뜻 입니다. 여성의 몸을 달에 비유한 것입니다. 멋있는 비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척주당이란 구슬을 씻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곳이 세월각과 척주당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월당과 척주각은 한칸도 채 안되는 크기의 집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그렇게 넓은 공간은 필요없겠지요. 아무리 권세가 있고 지체가 높다고 해도 결국 죽음앞에는 모두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누구라도 저기에 누워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절을 구경다니면서 다른 곳에서 세월당과 척주각 같은 곳을 본 적은 없는 듯 합니다. 인간의 지적인 기능이라는 것이 결국은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보면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이 다녀 보지 않아서 그런가요 ? 죽은자의 몸을 씻어주는 곳이 있는 절을 본적은 없었습니다.

왜 세월당과 척주당을 절의 본건물 앞에 놓았을까요 ? 저는 그렇게 설계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불이문을 지나 세월각과 척주당을 지나면 바로 앞에 개천이 흐릅니다. 그 개천을 넘어서 비로소 송광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월각과 척주당 앞에 있는 개천을 지나기 위한 돌다리가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돌다리 같습니다. 그 개천 저편으로 절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다리 양쪽으로 화려한 절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시냇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도 딸려 있습니다.

비때문인지 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아!” 하고 무릎을 탁쳤습니다. 그 하천을 넘어 서 있는 송광사는 피안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있는 이곳에서 개천을 넘어가면 불국의 세계, 피안의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하천을 두고 화려하게 서 있는 건물들은 피안의 세계를 그려 놓은 듯 합니다. 아마 절을 만들때 그런 생각을 하고 만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개천을 넘어 송광사로 들어가는 돌다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개천의 물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지 개천을 잘 꾸며 놓았더군요. 제 생각이 맞다면 개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경계선입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에 서 있습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이쪽과 저쪽을 넘나 들 뿐입니다. 마치 이 개울을 지나는 것 처럼 말이지요.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정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에가서는 세월각과 척주당에 서서 개울 넘어 있는 건물을 바라 보십시오. 다들 세월각과 척주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개울을 지나 송광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보기에 송광사의 백미는 세월각과 척주당 그리고 개울과 그 너머 벽처럼 서 있는 건물들입니다.

아! 세월각과 척주당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바위도 한번 보시길. 거기에는 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 바로 옆에 언젠가 사라져야할 그리고 잊혀질 관문인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습니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생각과 상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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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국가와 사회의 가치 : 기무사 문제를 보면서

요즘들어 뭔지 모르게 매우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혼란을 느끼는 이유는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무슨 기준이 흔들릴까 ? 물론 필자가 혼란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국가적 이슈에 관한 일이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께서 기무사령부를 해체해서 새로운 사령부를 만들어라고 하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를 해체해서 국방부의 일개본부로 만들어 장관이 완전히 기무사를 장악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대통령은 송영무 장관의 입장보다는 청와대 참모진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신문을 정리해보면 민정수석실은 국방부장관이 기무사를 완전하게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송영무 장관이 기무사를 직접 장악하려고 했던 이유는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다고 한다. 군생활하면서 기무사령부로부터 견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생활까지 확인하고 이것을 보고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다고 한다. 결국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기무사령부 개혁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필자는 일전에 과거 군사구데타가 두번이나 있었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때 기무사령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기무사령부의 임무 중에서 구데타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높다고 까지 생각한다. 권력욕이 있는 군인들이 탱크몰고 서울로 나오면 막을 길이 없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까지 그동안 많은 소란이 있었다. 필자는 그런 소란을 보면서 우리 국가와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대통령께서 이런 논란을 현명하게 정리한 것은 상당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운영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의 가치와 사회의 가치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과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은 차이가 있다. 국가는 국가의 안전이 최고의 가치이다. 국가를 필요악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러나 사회는 좀 다르다. 인간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다. 비슷한 것 같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매우 다른 방향을 지향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원 이었던 스노든이 미국정부가 불법적으로 광범위한 인터넷 상의 도청을 한다는 것을 폭로했다. 그는 국가가 아무런 법적 규제없이 마음대로 메일과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보고 부당하다고 느꼈고 이를 폭로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폭로가 국가가 잘못한 것을 견제했다고 생각하고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스노든을 최악의 범죄자로 규정했다. 국가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동일한 행동도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악이되고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선이 되는 것이다.

결국 스노든은 폭로를 하고 러시아로 망명을 한다. 미국 정부는 결단코 스노든을 용서하지 않고 체포하려 벼르고 있다. 한쪽에서는 국가의 부정을 폭로한 영웅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의 안위를 훼손한 역적인 것이다.

동일한 사안도 어느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필자는 스노든이 의미있는 폭로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의 행동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국가의 질서를 훼손한 것에 대한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서 국가적 가치를 훼손했을 때는 그에 해당하는 댓가를 치를 각오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사회적으로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국가의 범주에서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무사 계엄문건 문제를 논의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은 우리가 국가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정교하게 다루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방을 속이고 규정을 위반하는 것을 정당화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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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소쇄원을 가보셨나요 ? 소쇄원에 가시면 담을 한번 보세요.

한동안 심각한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한번 사는 것인데 항상 심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유를 가지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제가 여행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하는 좋은 기회인 듯 합니다. 퇴직을 하고나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퇴직하기 이전과 이후의 여행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여행은 눈으로 보는데 주안이 주어져 있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생각하는데 비중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데로 여행중에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한번씩 포스팅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올릴 글은 소쇄원 입니다. 소쇄원에 여러번 갔습니다. 소쇄원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정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습니다만 그때마다 뭐가 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소쇄원은 사진빨도 잘 안받는 곳입니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대어보아도 제대로 멋있는 장면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녀올 때마다 뭐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왔습니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곳에서 나만 뭔가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당해보셨나요 ? 제가 그랬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소쇄원에 있는 정자들보다 더 멋있는 건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계곡도 뭐 대단하다고 하기 어렵지요. 무엇인가 산만한 분위기의 소쇄원이 어떤 멋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정원이라고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머리가 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쇄원의 모습을 보고 말이지요. 저는 소쇄원의 담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소쇄원의 담을 보셨는지요 ?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올라가면서 저는 소쇄원의 담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갑자기 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담은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저를 멍하게 만든 것은 소쇄원의 담은 그런 역할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올라가다보면 소쇄원은 대문도 없고 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저 대나무 숲만 우거져 있지요.

비로소 소쇄원 초입에 있는 조그만 연못을 지나면 담이 보입니다. 여간 신경쓰지 않으면 담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담은 기역자를 그리며 소쇄원 가운데를 지나는 계곡의 윗쪽 부분으로 연결됩니다.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초가정자를 지나서 담은 계곡을 지납니다. 계곡을 지나면서 담 밑에는 넓게 구멍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곡물이 지나가도록 물구멍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담에 오곡문이라고 씌여있습니다.

그리고 물구멍이 끝나는 곳에서 담은 끝이 납니다. 한사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지나 다시 담이 산밑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왜 공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사람이 다닐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문이라면 대문이라도 달텐데 그것도 아닙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느끼셨을 듯 합니다. 네 그 문은 사람이 다니는 문이 아니라 바람이 다니는 문입니다. 바람이 지나가려면 대문이 있으면 안되겠지요. 바로 옆에 물을 위한 길을 만들어주었으니 바람을 위한 길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소쇄원은 물과 바람에게도 길을 내준 것이지요.

산바로 밑에서 다시 시작된 담은 소쇄원 뒤를 돌아서 연결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담이 어디서 끝나는지 잘 눈치채지 못하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정자 뒤에 담이 부지불식간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 저는 그것을 소쇄원을 만드신 분이 소쇄원을 뒤의 산으로 연결하려고 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쇄원을 인공이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지요.

정자에 앉아서 보면 담은 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소쇄원의 담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자에 앉아 있을때 시야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소쇄원에는 세개의 정자가 있습니다. 차례로 한번 앉아 보십시요. 그럼 각각의 정자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잘 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소쇄원의 가장 대표적인 아름다움은 담이 만들어주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소쇄원은 자연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그런 역할을 담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사람뿐만 아니라 바람과 물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대우을 해주는 것이지요. 아마 소쇄원을 만들었던 분은 그런 넉넉한 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쇄원이 도교적 분위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낙향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았으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장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쇄원의 담이 아닐까요.

여행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것은 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결국 문화유산도 생각하는 만큼의 의미가 더 덧붙여지면서 해석의 여지가 커지는 것이 아닐까요 ?

소쇄원에 가시면 담과 이야기 해보세요.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소쇄원을 가보셨나요 ? 소쇄원에 가시면 담을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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