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송광사 2, 지붕의 아름다움

여행을 다니다니다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써놓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다 보면 내가 남이 써놓은 글을 보고 그렇구나 하는 것은 남의 느낌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나만의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여행지에서도 문화유산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역사가 얼마나 되었고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고 하는 것 처럼 지식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느끼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식은 유한하지만 느낌은 무한합니다. 예술이 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지식이 아니라 느낌과 감정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곳도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다 다릅니다. 같은 곳을 여러번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송광사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송광사는 좀 아리송한 절입니다. 승보사찰이라하여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하지만 절 그 자체는 그낌이 아리송 합니다. 다른 절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곳곳마다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라 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많은 것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송광사에서 중요한 곳은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입니다. 오늘날 승보사찰의 명성이 있게 만드신 분이지요. 한국 불교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불교에서 선 수행의 기본을 세우신 분이라고 하면 옳은 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뒷쪽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관음전을 돌아가면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은 매우 급합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자연히 계단 하나 하나 신경써서 발을 디뎌야 합니다. 불교사찰에서 계단은 급하게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에 충실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밥을 먹을 때는 밥먹는데 집중하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때 공부할 생각하고 공부할 때 밥먹을 생각을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원래 분열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얽힌 실타래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얽힌 실타래 같은 의식과 정신을 정리합니다. 그것이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따라 가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정말 쉽지 않더군요.

각설하고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섰습니다. 수백년 넘는 세월을 이겨온 사리탑 앞에 서 있으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다른 사리탑하고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으면서 아주 단아 합니다. 지붕아래에 균형이 잘 맞추어진 동그란 돌이 놓여져 있습니다. 제가 보조국사 지눌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대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오와 점수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불교에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을 보면 보조국사 지눌이 얼마나 선각자적인 수행자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리탑앞에서 보는 송광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비가 그치고 안개가 끼여 있었습니다. 안개는 조계산을 휘감고 돌아 서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용이 토해 놓은 듯한 윤기나는 안개를 배경으로 송광사의 지붕들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제 입에서 ‘아!’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송광사가 천년동안 숨겨왔던 비경을 본 것 같았습니다. 송광사의 제 1경은 안개낀 날 바라보는 지붕의 모습이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송광사의 지붕은 너무나 조화로웠습니다. 검은 색의 기와는 안개에 쌓여 부드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지붕과 지붕은 모두 조화로웠습니다.

송광사에 가시면 반드시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서서 절집의 지붕을 내려다 보십시요. 특히 안개낀 날의 지붕은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다시 지붕들을 쳐다 보았습니다. 위에서 보았던 아름다움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있는 돌담과 지붕의 사이로 다시 겹쳐 보이는 지붕은 위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붕이 무엇인가 모르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라면 아래에서 올려다본 지붕은 거만하게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약한 속살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런지요 ?

송광사는 법정스님이 출가했던 절이기도 합니다. 법정스님이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세우신 절 길상사는 송광사의 옛이름이지요. 인연은 또 그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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