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퇴행성 관절염있는 분에게 분당의 서울 믿음 재활의학과 를 추천합니다.

몇개월 동안 무릎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작년말쯤 조깅을 하다가 무릎관절이 물컹물컹한 느낌이 났다. 그래서 당장 운동을 중지하고 쉬었다. 좀 쉬다보면 나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무릎 안쪽에 따끔 따끔한 느낌이 났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하고 그냥 다녔다. 그러다 몇달전에 갑자기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어 무릎을 잘 본다는 정형외과에 갔다. 퇴행성 관절염이니 운동요법을 하라고 한다. 1번에 20만원 20번에 400만원이란다. 처음에 그냥 덜컥 결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취소했다. 좀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거니와 주변에서 너 미쳤냐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진단을 받았다. 퇴행성 관절염이란다. 그리고 약을 먹으라고 한다. 약을 먹고 3주가 지났다. 위장에 통증이 심해서 그만 먹고 다시 다른 병원에 갔다. 사실 내가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나이에 퇴행성 관절염이라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 아닌가 ? 퇴행성 관절염되려면 한참 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 80중순의 노모도 지금까지 하루에 한시간씩 걷는 운동을 하시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다른 병원에 갔다. 그 병원에서는 내 기록을 보더니 이미 관절에 변형이 오기 시작했으니 절골술이라는 수술을 해서 오다리를 고치고 연골은 줄기세포로 써서 재생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럭저럭 1500만원 정도는 넘는 것 같다.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야 내가 퇴행성 관절염 환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먼저 수영강습을 신청했다. 열심히 수영을 했다. 퇴행성이니 몸무게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큰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았다. 정말 수술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몇개월을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서 우선 물리치료를 받았다. 신기하게 물리치료를 몇번 받았더니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

그러던 와중에 인터넷을 이리 저리 검색하다가 분당에 있는 ‘서울 믿음 재활의학과’라는 병원을 찾았다. 관절염의 경우 초음파로 진단을 한다고 한다. 마침 유럽의 관절염 진단과 관련한 가이드에 퇴행성 관절염 진단에 초음파가 효과적이라는 기사를 보고 속는 생각하고 찾아가 보았다.

별기대하지 않고 그냥 갔다. 대학병원 정형외과 선생님 만나기 전에 뭔가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사촌 동생이 분당에 살고 있어서 점심도 같이 먹을 겸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X-ray 와 MRI를 보시더니 무릎이 명백하게 퇴행성이라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초음파를 했다. 무릎 주변의 인대와 근육이 부어있고 물이차있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내 무릎은 안쪽 뿐만 아니라 바깥쪽도 시원치기 않았다.

지금 수술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잘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따뜻한 찜질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인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용을 하는데 이럴때 따뜻한 찜질이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난 찜질이 우리 인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냥 무작정 찜질하라고만 했지 왜그런지는 몰랐었다.

몇가지 약을 처방해주시면서 한주일 이후에 상황을 다시 보자고 한다. 그간 몇달동안 이병원 저병원을 전전했다. 그런데 한번도 시원하게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던 병원에서 뭔가 시원한 그낌을 받았다. 내가 수술하지 않고 잘 관리하면 좀 더 유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았던 것은 내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이다. 속이 시원했다. 환자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선생님들은 나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처방을 내리고 조치를 했을 뿐이다. 물론 그분들의 처방이 옳을 수도 있다.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그냥 내리는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몸의 주인이 되었다. 스팀잇 동지들 주변에 퇴행성 관절염 앓는 분이 많으실 것이다. 분당에 있는 서울 믿음 재활의학과를 강력 추천한다. 부모님께서 혹시 퇴행성 관절염을 앓으시면 반드시 한번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실 것을 권한다.

초음파 검사비가 한 7-8만원 정도한다. 그런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섣불리 MRI 찍고 거금쓰는 것보다 오히려 초음파 검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서 검사 받아 보시면 후회는 하시지 않으시리라.

스팀잇에서 활동하시는 의사 선생님들도 환자둘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명의가 별거 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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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관촉사에 가면.


관촉사의 은진미륵이 유명하다. 그래서 관촉사 가는 사람들은 은진미륵을 보러간다. 관촉사에 가보면 은진미륵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은진미륵은 그 크기만큼이나 기도효험도 있나 보다. 그런데 관촉사에는 은진미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촉사는 은진미륵이 아니라도 볼 것이 많다. 은진미륵때문에 볼 것 많은 것들이 다들 묻여 버린다. 아쉬운 마음에 내가 본 관촉사를 소개해 보려한다. 관촉사 초입에 조금 넓은 주차장이 있고 휴게실이 있다. 주차장 왼쪽에는 검은 색 비석이 서 있다. 한국전쟁 순국선열들을 위한 자유수호순국지사위령비다. 논산지역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신 분들이 많은 모양이다. 


[IMG_5699.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QihCeP2GKtfjVMAsVYDiJcKqBcQ59EKDS3nU3pcheuWH/IMG_5699.JPG)


주차장 바로 뒤에는 검은색의 바위가 있다. 자세히 보면 바위면에 총알 자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관총알 자욱같다. 아래에서 사선을 그으면서 위쪽으로 구멍이 나 있다. 그냥 보면 알 수 없다. 자세히 보면 그게 총알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여기서도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차장 뒤의 바위는 넓게 자리잡고 있다. 바위위에 올라가서 보면 바위를 떼기 위해 이리 저리 구멍을 낸 자욱을 볼 수 있다. 아마 옛사람들은 이곳 바위터에서 바위를 잘라서 뭔가 만들었나 보다. 그게 은진미륵인지도 모를 일이다. 관촉사에 꼭 그 두가지를 보고 올라가야 한다. 


예전에는 관촉사 가는 길옆에 연못이 있었고 거기에 연꽃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연못은 메워지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다. 관촉사 입구는 아주 시골 스럽다. 길가 좌우로 조그만 음식가게가 있고 노파가 앉아서 뭔가를 지지고 있었다. 관촉사의 이름에 비추어 허술하게 보이는 일주문을 지나면 산으로 올라가는 천왕문이 있다. 느릿느릿한 노인 한분이 앉아서 입장료를 받는다.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은 매우 가파르다. 자리를 참 잘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도리천으로 가는 길 같았다. 오래된 나무들이 계단을 덮고 있다. 여름이라도 그 그늘 때문에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절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비석하나가 서 있다. 마치 절 집에 세라도 얻어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의 비석이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이승만 박사의 추모비다. 1965년 논산반공청년회가 세웠다. 관촉사 초입에 있던 자유수호순국지사위령비와 뭔가 일맥상통한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https://files.steempeak.com/file/steempeak/oldstone/Vy8VLFQx-IMG_5737.JPG)


천천히 걸어서 관촉사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대광명전이 서 있다. 비로자나불을 보신 불전이다. 2층으로 크게 만들었다. 관촉사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뭔가 이유가 있는 듯 하다. 대광명전 오른쪽 관촉사의 끝부분에 은진미륵이 서 있다. 그 은진미륵을 주불로 보신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뒤의 창문을 통해 은진미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미륵전에 많이 보던 얼굴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전이 모셔져 있다. 관촉사와 논산지역의 분위기 혹은 특징을 좀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은진미륵도 이런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은진미륵은 고려 광종때 만들어졌다. 광종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의 뒤를 이어 고려를 안정화시킨 왕이다. 은진미륵을 만들라고 시킨 것도 광종이었다. 그러고 보면 광종은 미륵불을 조성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불상의 얼굴비율이 비정상적으로 큰 것도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미륵불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려고 했기 때문에 얼굴의 크기를 강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관촉사의 은진미륵은 대조사의 은진미륵과 그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대조사의 은진미륵도 광종이 조성하라고 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견훤이후 민심이 흉흉했던 후백제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도 모는다. 


그러고 보면 논산지역에 유난히 고려초기에 세운 절들이 많다. 일전에 소개했던 논산 쌍계사가 그러하고 대조사가 그러하며 개태사가 그러하다. 당시의 절이란 종교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민심을 다스리고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이 논산지역에 집중적으로 절을 짓게 만들었던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은진미륵 얼굴을 크게 만든 것은 예술적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상의 반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은진미륵의 얼굴이 너무커서 미술사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해석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데 후대에서 예술성을 따진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


관촉사는 은진미륵이 워낙 압도를 해버리기 때문에 편안한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그래도 숨어 있는 아주 조용한 장소가 있다. 은진미륵 옆에 난 길로 위로 올라가면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각에 서면 저 밑으로 논산평야가 펼쳐져 있다. 장관이다. 


산신각을 지나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밑으로 살짝 꺼져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장소가 있다. 주변의 나무들이 가려서 응달이 진다. 벤치가 있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다. 대광명전도 크고 은진미륵도 크다. 모두 커서 부담스러운 느낌도 살짝 있다. 그럴때면 산신각 옆에 있는 편안한 장소에서 쉬는 것이 좋다. 커피한잔 정도 들고가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않아 있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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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동학사 가는길에 있는 관음전을 아시나요 ?

계룡산에는 유명한 절들이 몇몇 있다. 남매탑의 전설을 담고 있는 동학사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진 갑사가 있다.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때 국어교과서에 갑사가는 길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그 수필을 읽고 언젠가 한번 갑사가는 길을 가보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10년은 지나서 갑사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그때는 겨울이라 황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매탑의 전설이 생각나서 계룡산을 넘었다. 한겨울에 구두를 신고 넘었으니 젊음이 좋았다.

그리고 25년쯤 지나서 동학사 주변을 편안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팔자좋은 시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마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나면 동학사로 걸어 다녔다. 계룡산 입구에서 동학사 까지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이면 여름이라서 그리고 가을이면 가을이라서 좋았고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좋았다. 그리 큰 절도 아니었지만 그냥 산속으로 걸어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 좋았다.

그렇게 계룡산 구경을 다니면서 우연히 길가에 서 있는 암자같은 절집들을 보게 되었다. 동학사만 있으면 되지 왜 그리 절들이 많이 지었을까 하면서 다녔다. 몇개월간을 그 길가의 절집에 눈을 두지 않았다. 겨울이었다. 갑자기 산기슭에 있는 절집에 눈이 간 것은. 단청이 검은 색으로 칠해진 듯한 절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검은색과 금색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단청이란 붉고 파란 것인데 전혀 다른 색이었다. 단청이 오래되어서 저렇게 변했구나 하는 측은한 생각에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발길을 돌렸다.

조금 가까이 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검은색이 아니라 갈색이었고 황금빛 단청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절안에서는 비구니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보는 단청이었다.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스님에게 왜 이런 단청인지를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스님 말씀이 원래 신라시대의 단청을 재생한 것이란다. 신라시대의 단청을 재생한 고집스런 단청장인이 있어 이절의 단청을 신라식으로 칠했다는 것이다.

절 안팎의 단청을 둘러보면서 너무 아름다워 놀라 자빠질뻔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청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니 하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단청의 기하학적 무늬도 너무나 신기했다. 페르시아식 아라베스크식 문양이 절집에 장식되어 있었다. 신라의 처용이 서역에서 온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와 서역이 서로 교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다. 그런데 신라의 절들이 이런 문양과 색깔의 단청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관음전의 단청뿐만 아니라 탱화를 보고도 놀랐다. 관음전의 탱화는 다른 절과 달리 흰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보통의 절들에 있는 탱화는 붉은색이 기본이다. 그런데 관음전의 탱화는 흰색이었다. 탱화에서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받았다. 20여년전에 러시아의 어느 정교회 성당에 간적이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는 성인들을 그린 이콘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때 모스크바 주변의 수즈달이라는 유명한 정교회의 중심지에서 하얀 색으로 그린 이콘을 본적이 있다. 갑자기 그 이콘이 떠올랐다. 그때 난 피카소가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을 보고 표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관음전의 하얀색 탱화는 날 일상의 평범함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수즈달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걸린 이콘을 보고 느낀 것과 같은 감동을 주었다.

하얀색 탱화에서 느낀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절집앞의 샘터에 있는 돌로된 부처상에서 다시 느꼈다. 얇은 돌판을 여러장 쌓아서 부처님을 만들었다. 세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거칠게 표현한 부처상이 부처가 무엇인가를 더욱 웅변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부처상은 제자리에 있어서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관음전에서 보는 경치도 아름다웠다. 관음전 앞쪽 입구의 작은 창문에서 보이는 경치는 마치 선경과 같았다. 스님이 아르켜 주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투명한 공기는 창문너머 보이는 문수봉을 더욱 가깝게 해주었다.

참 관음전 뒤에 샘터가 있다. 겨울 햇볕을 머뭄고 있는 관음전 뒤의 샘터는 무척 아름답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들어낸 파장을 겨울 햇볕이 마술같은 여운을 만들고 있었다. 관음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냥 우연히 고개를 들어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찾아간 절이었다. 우리 인생도 그런듯하다. 전혀 기대하지도 알지도 못했는데 그것이 우리 삶에 여운을 깊게 남기는 경우가 있다. 관음전이 그랬다. 올봄에 다시 찾아 가보았더니 부속건물을 짓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공사가 다 끝났으리라.

언제 시간나면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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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개암사,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

변산자락에 개암사란 절이 있다. 내소사에 가려서 개암사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이다. 능가산에는 내소사만 있는게 아니라 개암사도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변한의 수도로 정했던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소개가 있어서 찾아 가보기로 했다. 잘못하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길에서 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는 길이 무척 멀었다. 그냥 걸어서는 갈 수 없을 정도로 먼 길었다. 주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차창밖으로 무성한 여름 나무들을 구경했다. 푸른 색은 언제 보아도 좋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끝이 난다. 승가산 개암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이 나왔다. 그제야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서 주변에 식당을 둘러보았다. 식당이 몇군데 있진 했는데 다들 문을 닫았다. 주말에만 장사를 하고 평일에는 문을 닫는가 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한옥으로 지어진 집에 가보았더니 문을 열려 있는데 주인은 어디 가고 없다. 식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중에는 농사를 짓는 가보다. 집 마당에 농기계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물 한잔 마시고 식사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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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근처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들어가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차밭이 사천왕문 주변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절입구에 차밭이 있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냥 정겨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사람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차밭은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스님들의 공덕이 많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진왜란때 불탔던 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천왕문 막 조성된 것 같았다. 별로 넓지 않은 터에 변한의 수도를 세우려고 했다니 변한이라는 나라도 그리 크지는 않았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 들어가자 마자 제일 먼저 절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산위에 높이 서 있는 바위는 항상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아마도 그 바위때문에 이곳을 변한의 수도로 정했던 곳이라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이 대웅전도 임진왜란때 불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임진왜란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 같다. 조금 번듯한 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때 다 불타고 다시 지었으니 말이다.

사천왕문은 얼마전에 만들어져 아직 단청도 칠해지지 않았다. 대웅전 만들어진지가 수백년전인데 이제야 사천왕문이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도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듯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대웅전이다. 바로 대웅전 구경을 했다. 대웅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웅전 기둥은 두꺼웠다. 다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염원이 그 기둥에 서려 있는 듯 했다. 안에 용이 가득이다. 대웅전 전후좌우에 모두 용이 만들어져 있다. 물론 대웅전 밖의 장식에도 용이 많이 조각되어 있다. 절에 용을 만든 것은 불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일종의 염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개암사는 다른 절보다 용이 훨씬 많았다. 그 많은 용들을 보면서 갑자기 서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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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려와서 보니 개암사는 죽염을 만든다고 한다. 9번을 구워서 죽염을 만드는데 약효가 매우 좋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죽염을 만들어 왔단다. 우연히 죽염파는 곳에서 스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죽염을 조금 주신다. 먹어 보니 짭짤한 소금맛과 함께 묘한 향기도 있는 것 같았다.

범종루 옆에서 차를 덖은 후에 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엽전처럼 둥글게 만들어 말리고 있었다. 이렇게 차을 만들어 파는가 보다.

개암사는 마치 시간이 늦게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길고 긴 길을 따라 들어와서 절 마당 앞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냥 세상 일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지나가는 듯 같이 느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아래 한쪽 구석 응달에 앉아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을 즐겼다.

갑자기 배가 고픈 것이 생각났다. 느리게 가는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절을 내려왔다.

추가할 내용
대웅전 뒤의 바위와 함께 느껴지는 장엄함
그리고 대웅전의 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비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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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논산 대조사를 찾아서

그간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절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오늘은 조금 방향을 바꿔보고자 한다. 논산 대조사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대조사에 관한 부분이 조금 있었다. 대조사의 미륵부처님 위에 드리워진 소나무를 보고 동행이 마치 우산과 같다고 했다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논산에는 미륵부처상이 크게 두분이 있다. 한분은 관촉사에 있는 미륵부처님이고 한분은 대조사에 있는 미륵부처님이다. 두 미륵상이 비슷하게 생겼다. 마치 대조사의 미륵 부처님이 관촉사 미륵 부처님의 동생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먼저 관촉사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대조사로 넘어가는 것이 옳은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조사를 먼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얼마전 다녀왔던 대조사에 대한 느낌이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대조사는 가을에 가는 것이 옳다. 가을의 대조사는 매우 아름답다. 대조사의 압권은 주차장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가에 조성된 구절초이다.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구절초가 대조사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피어있다. 길은 비탈길 한가운데에 있다. 절에 올라가는 길은 옆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조사에 올라가는 길을 비탈길 한 가운데 있다. 그것은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비탈길에 펼쳐진 구절초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하라는 배려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 비탈길 계단에는 조금씩 구배가 있어서 그냥 시멘트 계단처럼 똑바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여유도 있다.

작년가을에 대조사에 들렀을 때는 그 비탈길의 구절초 꽃에 마음을 빼앗겨서 비탈길 계단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그 구절초 꽃 한가운데에서 아마도 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려니 하고 생각을 했다.

이번에 다시 대조사를 찾은 이유는 미륵부처님 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큰 천으로 미를 부처님 얼굴을 가려 놓았다. 부처님 미간 백호상 불사를 했고 얼마 있지 않아 행사가 있어서 가려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 얼굴은 보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왔다. 그때는 관촉사 미를부처님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서 들렀었다.

이번에는 마침 부여의 무량사를 가는 길이라서 다시 대조사를 들렀다. 우선 미를부처님을 보았다. 미간백호상이 붙여져 있었다. 관촉사의 부처님과 비슷한 것 같았다. 크기는 관촉사의 부처님이 좀 더 컸던 것 같고 조각도 좀 더 자세한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관촉사 미륵부처님을 보고나서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대조사 부처님의 바라보는 장소를 생각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절앞에서서 미륵부처님이 바라보는 방향이 원통보전에서 바라보는 곳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원통보전에서 바라보는 곳은 시원하게 앞이 트여져 있는 곳이다. 당연히 부처님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원통보전과 약 90도 방향으로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륵부처님이 무엇을 바라보고 계시나 확인해 보았다. 다리의 통증을 참아가면서 올라가보니 부처님은 꽉막힌 산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 가장 좋은 방향이 아니라 일부러 몸을 돌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돌이 그렇게 서 있어서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다. 미륵불을 만든 석공의 무엇인가 깊은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미륵부처님은 서쪽을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서방정토를 꿈꾸며 말이다. 아니 북쪽에 구원받을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쪽인지는 여러분이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한적한 오전이었다. 그래서 절집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 있는 절집들이 모두 고려시대 방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주심포 방식의 배흘림 기둥을 쓰고 있었다. 초석은 모서리를 다듬지 않아서 조금 거칠게 두었다. 아마도 이 절집을 지은 대목은 미륵부처님이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절집을 만든 대목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세심한 배려가 미륵부처님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 같았다. 이제까지 누구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번 대조사에서는 그 원통보전을 만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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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여행) 내소사, 원초적 욕구로서의 편안함

저번 포스팅에서 내소사에서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정작 그렇게 쓰고도 내가 왜 내소사에서 위로를 받은 느낌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주변의 능가산이 악산이라서 남성적이었고 그앞에 들어선 내소사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나서 내가 느낀 그 무엇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사로 잡았다. 그래서 이리 저리 생각해보았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차분하게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먼저 내가 느낀 위로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나를 살펴보았다. 난 내소사 강당(봉래루가 그 강당의 이름이다. 그런데 굳이 건물의 명칭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대충 알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산사여행기에서 지식이 아닌 느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느낌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충 쓸것이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간혹 진정한 지식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송구스럽지만 대충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셨으면 좋겠다.)아래의 초석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편하게 느꼈다.

내가 느낀 편안함을 위로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난 내소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몇몇분께서 댓글에 편안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다면 그 편안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 대웅전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다면 그 앞에 있는 강당은 마치 어머니나 할머니 같았다.

강당아래 앉아 느낀 편안함은 원초적 편안함이었다. 어떤 것으로 부터도 영향받지 않았던 편안함이었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그렇다 난 내소사 강당밑에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있었던 같은 태초의 안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런 편안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냥 편안함을 느낄 뿐이다. 편안함이란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태초의 편안함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소사로 들어가는 전나무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녀보면 내소사 전나무길 만큼 아름다운 길들은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내소사의 전나무길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일까 ? 내소사는 이름난 절이라 사시사철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길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절대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도 모르게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닌다. 내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삶에서 고통을 느끼거든 내소사의 강당 밑에 앉아 보시길. 그럼 태초의 원초적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든다.

그리고 그런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무엇을 갈구하느냐에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편안함과 삶에 대한 위로도 갈구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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