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여행) 내소사, 원초적 욕구로서의 편안함

저번 포스팅에서 내소사에서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정작 그렇게 쓰고도 내가 왜 내소사에서 위로를 받은 느낌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주변의 능가산이 악산이라서 남성적이었고 그앞에 들어선 내소사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나서 내가 느낀 그 무엇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사로 잡았다. 그래서 이리 저리 생각해보았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차분하게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먼저 내가 느낀 위로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나를 살펴보았다. 난 내소사 강당(봉래루가 그 강당의 이름이다. 그런데 굳이 건물의 명칭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대충 알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산사여행기에서 지식이 아닌 느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느낌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충 쓸것이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간혹 진정한 지식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송구스럽지만 대충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셨으면 좋겠다.)아래의 초석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편하게 느꼈다.

내가 느낀 편안함을 위로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난 내소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몇몇분께서 댓글에 편안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다면 그 편안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 대웅전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다면 그 앞에 있는 강당은 마치 어머니나 할머니 같았다.

강당아래 앉아 느낀 편안함은 원초적 편안함이었다. 어떤 것으로 부터도 영향받지 않았던 편안함이었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그렇다 난 내소사 강당밑에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있었던 같은 태초의 안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런 편안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냥 편안함을 느낄 뿐이다. 편안함이란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태초의 편안함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소사로 들어가는 전나무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녀보면 내소사 전나무길 만큼 아름다운 길들은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내소사의 전나무길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일까 ? 내소사는 이름난 절이라 사시사철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길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절대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도 모르게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닌다. 내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삶에서 고통을 느끼거든 내소사의 강당 밑에 앉아 보시길. 그럼 태초의 원초적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든다.

그리고 그런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무엇을 갈구하느냐에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편안함과 삶에 대한 위로도 갈구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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