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수원 용주사 솟을 대문에서

대궐의 건축방식이 도입된 절이라서 그런지 대웅전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문도 색다르다. 먼저 앞에 석물이 문 입구 좌우측에 서 있다. 아무래도 해태같은 생각이든다. 광화문에 가면 해태가 양쪽에 서 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 난다. 물론 크기는 광화문의 해태와 비교할 수 없이 작다. 그나마 많이 닳아서 그냥 보면 무슨 동물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인상적인 해태의 얼굴이 매우 해학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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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를 지나면 솟을 대문이 있다. 아주 전형적인 유교적 출입문이다. 솟을 대분의 앞에 있는 주춧돌과 기둥도 전혀 불교적인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주춧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다. 큰 원에 작은 원이 있는 것을 보면 조계종을 표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조계종에 그런 문양이 정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야 조계종 문양이 정해진 것을 생각해보면 주춧돌에 문양을 새긴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듯 하다.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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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조선시대에도 그런 문양이 있었는지. 어쨓든 문양을 새긴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면 왜 그렇게 새겼는지가 궁금하다.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유교적인 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서 조계종 문양을 새겨 넣었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솟을 대문을 지나, 대웅전 앞의 강당을 향했다. 강당은 원래 불교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그런데 그 주춧돌 기둥도 마치 궁궐의 기둥 같았다. 정조 대왕이 불교 사찰을 세웠지만 성리학자들은 그냥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도 여기까지 였다. 강당을 지나면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불교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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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용주사가 유교와 불교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혼합되어 있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분리되어서 각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홍살문에서 솟을 대문 그리고 강당까지는 유교의 세계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불교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 묘한 조화와 대비를 보면서 절안으로 들어갔다.


문림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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