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통도사 금강문을 찾아서, 역사속 파격의 구성

통도사에는 문들이 모두 다 고만 고만하다. 통도사정도의 큰 절이면 일주문도 무지하게 크다. 그런데 통도사 일주문은 조그마하다. 통상 일주문은 산사의 초입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통도사 일주문은 경내에 있는 것 같다. 통도사로 들어오는 길이 그렇게 길고 멋있었는데 거기에 일주문을 세워 놓지 않았다. 이 일주문은 아주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지금의 일주문이 산사의 경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주문이 경내에 있다보니 사람들도 절에 들어오는 예도 특별하게 행하지 않는 듯하다. 이미 절에 들어와 있는데 일주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일주문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은 일주문을 돌아서 절안으로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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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통과하자 마자 바로 천왕문이 있다. 아마 천왕문중에서 통도사 처럼 천왕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도 별로 없을 것이다. 천왕문은 불국토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다. 통도사 천왕문은 무서운 사천왕상이 주인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통도사에 갔을 때는 무척 더웠을 때다. 천왕문은 그냥 더위를 피하기 위한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도사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고 한다. 대웅전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신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한 상로원, 관음전과 통도사를 창건한 지장율사를 기념하는 개산조당을 중심으로 한 중로원, 영산전과 극락전 그리고 약사전을 중심으로한 하로원이 그것이다. 천왕문은 하로원을 들어가는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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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원의 바로 끝이자 중로원이 시작되는 관문이 바로 불이문이다. 불이문이 이곳에 서 있는 것이 좀 이상하다. 원래 불이문이란 전각들의 앞에 있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불이문은 중요한 전각을 세개나 지난 다음에 서있다. 만일 대웅전과 연관을 지으려면 중로원을 지나 상로원 입구에 있어야 제격일 것이다. 무슨 이유일까 ? 혼자 의문을 지녀보지만 그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불이문의 현판글씨는 송나라의 미불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당나라가 망한 이후에 송나라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썼다는 것인데 아마도 고려시대였을 것이다. 무슨 연유로 송나라 사람이 이곳 양산까지 찾아 왔을까 ? 고려시대에는 개성이 수도라 이곳 양산까지 송나라 사람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예사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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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제일 이상한 것은 금강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강역사들이 부처님을 호위하기 위해 서 있는 문이다. 이리저리 궁금해서 왔다갔다하다가 사천왕문을 지나자 마자 서 있던 극락보전을 다시 한번 찾았다. 거기에 금강역사의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그려져 있었다. 통도사는 금강문을 만들지 않고 극락보전의 양벽에 금강상을 그려서 금강문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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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을 만들지 않고 건물의 외벽에 금강역사를 그려 대신한 경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금강역사는 붉은 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시고 있어서 3보사찰 중 불을 대표하는 절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가람이라 구석 구석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파격의 미가 매우 돋보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적인 양식에 거의 매이지 않고 전각이 지어졌다. 오래된 역사속에 파격이 숨어 있다보니 그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듯 하다. 그래서인지 그 파격이 훨신 고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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