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양산 통도사 계곡 구름다리에서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려면 긴 도로를 지나야 한다. 그 길은 나를 뭐라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이름난 절 집 중에서 이렇게 속이 시원한 도로가 있는 곳이 많다. 해남 대흥사에서도 양산 통도사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두절의 길 분위기가 아주 비슷했다. 통도사로 들어가면서 대흥사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통도사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 분위기가 대흥사와 사뭇 달랐다. 통도사가 매우 시끌시끌하다면 대흥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대흥사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그야말로 참선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대흥사를 참선 도량이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는 듯했다. 통도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은 아닌 듯 했다. 선종보다는 교종의 분위기가 더 강해 보이는 듯했다.

통도사 경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쪽 방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서 절 집으로 가려면 계곡길을 건너야 한다. 그 계곡길에 피서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얼마가지 않으면 바다가 있는 지방인데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몰려 들었다. 사실 더위를 피하려면 깊은 산 계곡이 제격이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삼삼오오 계곡의 시원함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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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산사에서의 계곡과 하천은 이곳과 저곳의 경계라는 은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피안의 세계와 사바세계의 경계다. 이곳을 건너야 비로소 절에 절어갈 수 있다. 절집은 극락을 의미한다. 통도사 계곡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이 마치 사바세계와 피안의 세계에서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하는 사람들 처럼 느껴졌다. 살다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지 잘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한참 지나서 내가 그랬었구나 하는 경험들을 한 번씩 했으리라. 계곡의 하천에서 유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통도사의 계곡은 이제까지 보았던 다른 개천보다 넓었다. 그 넓은 내를 건널 수 있도록 돌로 만든 구름다리가 양쪽에 걸쳐저 있었다. 구름다리는 매우 높았다. 잘못해서 떨어지면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구름다리 양쪽에 난간이 없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구름다리에 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가운데로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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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에 난간이 없는 이유는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길건너는 것에 집중하라는 뜻이리라. 해인사 대웅전의 높고 폭이 좁은 계단이 생각났다. 해인사의 계단도 매우 위험하게 보인다. 딴 생각하지 말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통도사의 구름다리도 그런 뜻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구름다리를 건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것 말이다. 밥을 먹을 때는 온전하게 밥을 먹고 일을 할때는 온전하게 일을하라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 구름다리의 난간을 없애버림으로써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하게 전념하라는 가르침을 주려고 한 것이다.

80중반의 어머니와 같이 구름다리를 건넜다. 걱정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다리를 건느셨다. 어머니는 단 한번도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평생을 두고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두신 곳은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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