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종로 조계사 사천왕상

서울에 산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정작 종로에 있는 조계사는 제대로 가본적이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도 정작 조계사는 갈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다. 20대 한창 때 우리의 주무대는 종로였다. 학원도 종로에 집결되어 있었다. 종로서적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보기도 했다. 그때도 종로서적에서는 하루종일 구석에 앉아 책을 볼 수 있었다. 종로서적이 망해서 문을 닫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내 젊음의 한 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교보문고가 새로 들어섰다지만 이상하게도 종로서적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리따운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던 곳도 종로였다. 물론 우리 윗세대는 명동이었다. 아마도 명동 세대들은 종로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교보로 가지 않았던 것 처럼 말이다. 종로 피맛골을 돌아다니면서 술마시고 취했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었던 조계사는 가보지 않았다. 인사동에는 뻔질나게 갔었는데 말이다.

그런 조계사를 가본 것은 작년 이맘때다. 조계사 앞을 여러번 지나치면서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조계사에서 벌어진 볼성 사나웠던 싸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돈이 걸리면 추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불교계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자리가 돈을 만지는 자리라서 그런지 서로 총무원장 되겠다고 난리를 쳤다. 매번 폭력이 난무했다. 스님같지 않은 스님들이 서로 주먹질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저런 짓할 것 같으면 왜 머리를 깍았을까 ?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조계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른다. 그냥 지나는 길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조계사의 사천왕상이 쇠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울 한복판에 있으니 사천왕문을 만들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입구에 문을 만들고 그 좌우에 사천왕상을 쇠판으로 만들었다. 그 문은 일주문 양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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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주변은 모두 빌딩이다. 그 빌딩 숲속에서 청정한 기운이 흐르면 오죽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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