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마곡사 편, 그네타는 여인네 속치마 같은 처마선

천왕문을 지나서 바로 왼쪽으로 접어들자 마자 명부전이 보였다. 명부전이란 돌아가신 분들이 명복을 빌어주는 곳이다. 난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명부전을 지날때 마다 항상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머니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전혀 없다. 전란통에 사진도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분들을 위해 잠시라도 자리를 멈추어 선다.

이전에는 명부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곧바로 대광보전쪽을 향해서 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번에 명부전 부터 먼저 들르게 된 것은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명부전 앞마당의 단풍이 너무 예쁘게 물들어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들의 기쁨에 동참하려고 명부전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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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부전 건물의 처마선이 너무 아름다웠다. 보통 절의 전각들은 처마선이 완만한 경우가 많다. 장엄하고 위엄있게 보이려면 처마선이 너무 들려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런데 명부전의 처마선은 달랐다. 마치 그네타는 아녀자의 치마가 나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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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지붕은 팔작지붕이었다. 양쪽벽면의 처마가 둥글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처마의 양쪽끝이 많이 올라가 있었다. 처마밑에서 드러나는 단청들이 마치 여인의 속치마를 보는 듯했다. 그것도 그냥 풋냄세 나는 처녀가 아니라 숙성한 여인의 향기를 물씬 담고 있는 듯한 속치마의 선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명부전이 이래도 되는 거야 ?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운 파격적인 선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명부전 밖의 담을 두고 마치 홀린 듯 다시 처마를 쳐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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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에 올라가서 다시 명부전 지붕을 내려다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지붕은 네모 반듯하게 엄격하고 위엄이 있었다. 그 반듯함은 자유분망함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반듯함이 더욱 힘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자유로움과 여유를 지니지 않고 엄격하기만 하면 쉽게 질린다. 명부전을 만든 분은 저세상의 엄격함을 처마의 선으로 부드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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