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이야기) 남원실상사의 석등과 3층석탑 그리고 왕조의 흔적

세상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도 세상을 떠날때 흔적을 남긴다. 하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쨓든 모두 흔적을 남긴다. 절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나는 흔적을 느꼈다. 사라진 왕조의 흔적 말이다. 남원 실상사에서 신라의 흔적을 느끼고는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나에게 인생이 덧없음을 느끼게 만든 것은 보광전 앞에 천년 넘게 굳건히 서 있던 석등과 2개의 3층석탑이었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 신라의 건축 양식이 지리산 서쪽 지역까지 확산된다. 그런 경향은 전라남도 지방이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남아 있는 석탑의 양식을 보면 이상하게도 전라남도 쪽이 신라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듯하다. 전라북도와 충청도 지역은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좀 덜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그냥 느낌이다. 모든 절의 양식을 계량적으로 통계를 내는 등의 방법이 아니라 그냥 직관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정말 조사를 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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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서 석조물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석등인 듯 했다. 이상하게 양쪽에 서 있는 3층석탑보다 석등에 더 많이 눈이 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나그네의 시선을 잡아 들인 것은 석등이었다. 석등 양쪽에 서 있는 3층 석탑은 이상하게 눈이 가지 않았다. 불국사와는 전혀 다르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잡아 끈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석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제까지 보았던 석등과 별차이도 없는 석등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석등에 불을 키기 위해 세워 놓은 돌계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돌계단은 발하나를 겨우 올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 불을 가지고 올라갈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누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올라가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정도였다. 그런 돌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마도 불을 붙일때 잡념을 가지지 말고 거기에 집중하라는 뜻이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런 집중의 기억이 천년을 이어오면서 그 주변을 모두 빨아 들이는 힘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석등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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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사찰의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1금당 2탑양식을 사라진 왕조 백제의 땅에 서서 천년을 이어져 온 것을 보고 있다.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제 꽃샘추위에 움추린 나그네만 하염없는 상념에 빠져있다.


점심 회식으로 스시히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주방은 열일하고, 손님은 열먹하며, 조명은 열밝하는 스시히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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