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법주사를 떠나며, 아쉬움을 남기고

법주사에는 볼 것이 많다. 제일 먼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한쪽 구석에 있는 철확이었다. 쇠로 만든 큰 가마솥이다. 예전에 연산에 있는 개태사에서 이런 철확을 본적이 있었다. 개태사의 철확의 입구부분이 깨어졌었다면 법주사의 철확은 매우 잘 보관이 되어 있었다. 그 형태로 보아 아마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법주사도 임진왜란때 모두 불탔다. 당시 스님들은 모두 승병이 되어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왜군들은 절을 볼때 마다 승병의 근거지라며 모두 불태운 것 같다. 충청도 지역의 사찰들은 거의 예외없이 모두 왜군들에 의해 불에 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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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확을 보고 고개를 돌리니 바로 석련지라는 석조물이 있었다. 커다란 돌로 안에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듯 하다. 비슷한 것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이외에도 쌍사자 석등과 석조희견보살입상이 있다. 쌍사자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석등 중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이 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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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 석등 옆에 석조희견보살입상이 있었다. 희견보살이란 부처님을 위해 소신공양을 한 보살이라고 한다. 머리에 이고 있는 향로가 바로 소신공향할 때 쓰인 것이란다. 어릴때 국어교과서에 소신공양과 관련한 단편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소신공양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직까지 생각난다. 머리에 향을 피우고 그 향이 몸을 태우도록 하는 공양이었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산사람이 스스로 불을 피워서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 하고 생각했었다. 불살생이라면서 자신을 죽이는 것은 불살생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하고 되묻기도 했다.

희견보살상을 자세하게 보았다. 설명서에 희견보살이라고 쓰여 있으니 그렇게 믿어야 겠지만 내눈에는 마치 여자처럼 보였다. 얼굴을 이미 비바람에 풍화되어 분간할 방법이 없었다. 뒤에서 보면 웨이브진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만일 희견보살이라면 머리를 깍았거나 아니면 머리를 틀어 올려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마저 잘록했다. 전체적으로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었다. 상체와 하체의 비율 그리고 웨이브가 있는 머리까지 고려해보면 서양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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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의 상징이라면 금동미륵대불이다. 한쪽구석에 매우 크게 서 있다. 원래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는데 대원군이 경복궁 만들기 위한 화폐를 주조한다며 금동미륵대불을 뺏아갔다고 한다. 뭐라고 해야할지 거참… 이후 다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이상한 것은 금동미륵대불이 어머어마하게 큰데도 불구하고 법주사의 균형이 비틀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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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역사의 모든 순간들을 다 품고 있었다. 그래서 볼 것이 많았다. 시간이 되어 법주사를 나오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머무르고 싶었다. 그래도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시 올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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