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신자유주의

(전편에 이어)

브렉시트를 영국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현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앞에서 필자는 브렉시트가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현상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예를 들었다. 즉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볼 때 브렉시트는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와 국민들이 영국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영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들은 브렉시트와 같은 선택을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가면 많은 나라들이 영국과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찌될 지 알 수 없다.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 구체적인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향성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짐작이라는 어휘속에는 상당한 정도의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

브렉시트라는 현상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영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EU라는 범주를 벗어나 전지구적관점 전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세계 여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국의 트럼프 프랑스의 르펭 필리핀의 두테르테 터키의 에루도안과 같은 이름을 연상시킨다. 물론 우리의 정치 상황도 큰 범주에서 볼 때 별로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반동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을까? 이런 상황은 정상적인가 아니면 비정상적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매시기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와 독자들이 생각하는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왜 이 시점에 반동적 움직임이 나타나는가에 의문을 품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이 시점이다. 이 시점은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완전한 자유경제를 추구한다. 제한없는 교역과 경쟁을 통해서 번영을 추구해 온 체제이다. 지금의 상황은 역설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정점에서 트럼프와 같은 반동적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가 실패했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 대안으로 반동적인 길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저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은 우리를 전혀 예측하지 못 했던 항구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그래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했던 역사의 종언은 종언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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