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데자뷰

영국이 EU에서 탈퇴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세상 모든일이 다 그런 것 같다. 브렉시트하면 영국이 곧 망할 것 처럼 이야기들 한것에 비하면 지금의 평온함은 기이하게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평안함이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이런 고요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비효과의 첫 출발점은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묘한 움직임이 때로는 거대한 변화로 다가온다. 지금의 브렉시트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브렉스트에 대해서 무엇인가 써보려고 하지만 이런 시도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불과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대상이건 인간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어차피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쓰는 부끄러운 글에 대한 변명이다.

인지능력의 한계를 핑계삼아 매우 주관적으로 브렉시트를 바라보고자 한다. 여기서 내가 먼저 쓰려고 하는 것은 브렉시트를 역사적 경험속에서 반추해보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사회적 현상도 유사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브렉시트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국사람들의 상당수가 브렉시트가 먼지도 모르고 투표를 했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것에 투표하고 결정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기이하다. 나도 영국인들이 왜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신문을 보고 알고 있는 정도이다. 신문에서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영국인들의 삶이 매우 팍팍해졌고 그로 인해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커졌으며 영국의 일부 정치인들-아마도 이들은 선동적인 파퓰리스트들일 것이다-이 브렉시트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를 정리해보자면 영국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듯 하다. 그러나 경제문제만이 브렉시트의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일 그렇다면 영국보다 어려운 EU회원국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하는 문제에 답하기 어려워진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도 그렇고 전세계 경제도 어렵다.

결국 영국이 단순한 경제적 이유만으로 EU를 탈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제문제는 인간의 삶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경제가 인간의 행동에 어떤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경제의 어떤 측면이 영국사람들이 브렉시트라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브렉시트는 영국 백인 중산층의 불만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영국 중산층의 불만이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가져가 자신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어디서 본듯한 서사 구조이다. 그렇다. 1930년대 유럽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가 생각난다. 바로 유태인에 대한 증오이다. 유럽에서는 경기가 하강 곡선을 그릴 때마다 유태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들끓었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증오심을 이용하고 더 나아가 조장했다. 브렉시트를 통해 드러난 영국의 분위기에서 1930년대 독일의 분위기를 느낀 것을 지나치다 할 것인가?

영국중산층들은 자신들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이런 불안감이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과 함께 브렉시트로 이어졌다면 지나친 분석일까. 정체 모를 불안감은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공포는 스스로 자유를 구속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에리히 프롬의 저작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을 통해 그 심리적 기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은 그들이 수백년동안 싸워서 성취했던 시민적 성취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도 그런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계속)

아직 직업이 있어서 짜투리 시간에 글을 쓰다보니 글쓰기가 어렵다. 시간의 부족은 필연적으로 질적저하를 스반한다. 그러나 독자제현께서 필자가 연습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고 관용으로 보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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