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가는길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가는길

대흥사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 한번 가보아야지 하다가 마음먹고 찾은 것이 한달 전이었다. 한달 전만 해도 무지하게 더웠다. 인간이 간사한 것인지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시원한 것 보다 따뜻한 것을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절을 찾을 때 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절가는 길이 절구경의 7할은 되는 것 같다. 대흥사도 그랬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길을 차를 타고 한참을 갔다. 녹음이 우거진 이길이 아름다워 유네스코에 지정되었나 보다 혼자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차를 운전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껴보았다. 예전에 러시아에서 공부를 할 때 같이 있던 고려인 친구가 모스크바 주변의 그 넓은 숲길을 지나면서 창문을 열고 ‘공기가 너무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리고서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공기를 마치 얇은 비단 만져보는 흉내를 내곤 했다. 나도 그의 흉내를 내면서 공기를 만져 보았다. 한여름의 가뭄이 심해서 인지 눅눅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더위는 짙은 녹음을 그의 발아래 복종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짙은 녹음은 무척 단단한 갑옷인가 보다.

얼마간 가다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대흥사 가는 길을 그리 멀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너무 고즈넉했다. 평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절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 길을 오롯이 혼자서만 즐길 수 있었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를 맨발로 걸었다. 대지의 시원한 느낌이 발바닥을 통해 내 안으로 전해 오는 듯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갑자기 카페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당에는 장독대가 있고 쇼윈도우에는 천연염색한 천들이 매달려 있었다. 천연염색한 옷감으로 만든 개량한복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었다. 천연염색한 하늘하늘한 천들의 색깔은 아침의 햇빛에 더욱 투명하게 아름다웠다.

_6160108.JPG

_6160112.JPG

어떻게 이런 예쁜 카페를 여기에 세울 생각을 했을까 ? 가는 길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카페와 천연염색한 천들의 색깔들이 성하의 아침 햇볕에 부서지고 있는 구경을 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걸었다. 조금 더 가다보니 여관이 있다. 절 입구 바로 밑이었다. 여관이 예사롭지가 않다. 문이 열려 있기에 그냥 들어가 보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묵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옛날 집이었다. 어릴적 아버지 따라서 여관에서 며칠 잔적이 있었다. 그때 여관에서는 아침에 밥을 주었다. 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잘 먹어보지 못하던 계란말이가 나왔다. 맛있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계란말이를 좋아한다. 식당가서 맛이 없어도 계란말이만 주면 군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지냈던 여관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그때도 방앞의 마루에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방앞의 조그만 마루는 나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_6160119.JPG

_6160121.JPG

여관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주인이 그제서야 나를 알아 본 모양이다. 내가 여관안을 돌아 다녀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옆으로 가보니 조그만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연잎이 펼쳐져 있었다. 두꺼비 조각상이 물을 내뿜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연못이 마음에 들었다. 다시 대흥사에 오면 여기서 하루 묵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여관에서 하루를 묵고 절에 올라가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았다. 여관 앞에 광주민주화 운동때 이 곳에서 밥을 해서 날랐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세상일에 무관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대흥사 가는 길은 이제까지의 절가는 길중에서 나를 가장 차분하게 만든 듯 하다. 사람없는 평일날 저녁에 올라서 카페에서 차한잔 하고 여관에서 하루를 보낸다음 절에 가면 좋을 듯 하다. 이런 차분한 느낌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싶다. 말없이 같이 걸어도 될 어릴적 친구하고 라면 더 좋을 듯 하고.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가는길’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