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표충사를 거닐며

여관에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바로 오른편에 사리탑전이 자리하고 있다. 통상 올라오는 길 한켠에 서 있는 것과 달리 대흥사 사리탑전은 절 입구 바로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다. 절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리탑전을 그냥 모른척 지나칠 수 없게 되다. 이 절에 오는 사람이라면 꼭 사리탑전을 들리라는 무언의 부탁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대흥사의 사라탑전은 다른 절과 다르다. 보통의 절에 있는 사리탑전은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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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누구인지를 굳이 밝히지 않는 것이 선가를 이어오는 정신일진데 대흥사 사리탑전은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하나 하나 밝혀 놓았다. 그 사리탑전의 중심에는 서산대사의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가 대흥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정작 서산대사의 승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나 이후 세워진 승탑은 서산대사의 사리탑보다 훨씬 화려한 듯 했다.

이미 사리탑전에서 서산대사의 흔적을 느꼈던 지라 절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표충사로 들어갔다. 대흥사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이유도 바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일으켜 싸웠던 서산대사의 역사적 의미 때문이기도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충사가 대흥사의 존재적 의미 한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찾아 오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아서 인지 땅이 푸석푸석해서 밟는대로 쑥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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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제일로 치는 규율이 불살생이다. 그런 승려들이 칼과 창을 들고 일어나 왜군과 생명을 다투는 전투에 참가했으니 스님들로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 서산대사는 왜란이 끝난이후 조정에서 내려주는 벼슬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승병으로 싸웠던 스님들도 불살생의 계를 어겼다며 스스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그 전후의 논공행상에서 모두 빠지고 말았다. 임진왜란당시 스님들이 약 3만명 이상 전사했다고 한다. 그정도 피해라면 조선의 절집들이 거의 모두 문들 닫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교과서에서 스님들이 호국불교의 정신에 입각해서 왜군과 싸웠다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승병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정작 불살생의 계를 깨고 전투에 참가했던 스님들이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했을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하지 않은 듯 하다.

이미 해는 하늘 높이 올라가서 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대흥사에 가시면 표충사를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별로 사람들이 찾지 않는 표충사에 가보시기를 바란다. 그 당시 승려들이 왜 칼과 창을 들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숭유억불의 유교사회에서 승려들이 목숨보다 중요한 계를 버리고 칼과 창을 들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 그냥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애국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라를 침탈당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지키기는 것이 불가의 계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럴 듯 하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말의 위기상황에서 스님들이 임진왜란 때처럼 나서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 임진왜란이 끝난지 불과 200년도 안되어 조선은 열감의 침입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조선은 일제의 지배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그렇게 싸웠던 스님들이 일제의 침략에는 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을까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여름 뜨거웠던 표충사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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