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앞마당 정원의 의미

보통 우리나라의 전통 건물에는 정원이 뒤에 있다. 그래서 후원이라고 한다. 창덕궁도 마찬가지다. 궁전의 정원도 궁궐뒤에 있다. 보통 양반님네들 가옥도 그렇다. 정원이 뒤에 있다.
건물의 앞에도 넓은 장소가 있다. 대부분 그런 곳은 공식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궁궐의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은 문무백관들이 조회를 하는 장소다. 보통 가옥에서도 마당은 사랑채 앞에 있다. 마당은 통상 넓게 울타리쳐져 있다.

대흥사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통상적인 건축구성과 많이 다른 듯 하다. 정원이 앞에 있다.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대흥사처럼 절 바로 앞에 연못과 쉼터가 있는 곳은 별로 보지 못했다. 대흥사의 연못은 초의선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선불교를 이끈 초의선사가 있었기에 대흥사가 지금과 같은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초의선사는 무슨 생각으로 연못을 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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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형태는 마음 심자를 본떴다고 한다. 대흥사를 갔을 때는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스님 한 분이 연못가에서 땀을 흘리며 녹조류들을 걷어 내고 계셨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인지 그리 크지 않은 연못에 녹조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스님은 덥지만 수양한다는 마음으로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일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이들어서 고생을 면하려면 노후 준비를 잘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스님들도 늙어서 스스로를 보살피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세상이 모두 변했는데 절간이라고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누구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강고한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법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너무 부족하면 삶의 자유를 상실한다. 물론 너무 많아도 삶을 구속당한다. 스님은 청소를 마치고 어디론가 가셨다. 나는 연못 옆의 느티나무 끝자락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500년된 보호수라고 한다. 마치 어떤 동네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절앞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있는 경우도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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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에 자락에 앉아 주변을 천천히 들러 보았다. 나무아래에 앉아 있자니 모든 것이 여유로워졌다.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서늘한 바람이 내 목주위를 흩고 지나갔다. 그렇다. 삶이 뭐 별거 있겠는가? 이렇게 더운날 정자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서늘한 바람을 느끼면 그것이 낙원이 아닐까 ?

초의선사께서 느티나무 아래에 연못을 판 이유를 알 듯도 했다. 무슨 대단한 각오나 기원을 가지고 절을 찾기보다는, 그냥 느티나무 아래 앉아 연못을 보면서 기분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는 뜻이 아닐까 ?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으니 내 마음하나 편안하게 만들면 세상이 편해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절앞의 정원이 대흥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우리가 마음을 두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곳에 진리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뭔지는 모르지만 초의선사의 선에 관한 생각이 바로 느티나무와 연못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더운 여름의 한때를 느릿느릿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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