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여름을 떠나 보내며

오늘 저녁 친구를 만났다. 각자 하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중년의 두 남자가 마치 데이트 하듯이 3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열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항상 즐겁다. 그 나이에도 아직 가슴 속에는 활화산이 타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자니 한기가 느껴진다. 벌써 가을이 한참 서울 시내를 감싸고 있는 듯 했다. 불현듯 그 더웠던 여름이 생각났다.

서재에 들어가자 마자 그 더웠던 날에 찍었던 사진을 찾아 보았다. 여름 사진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난 여름을 제대로 보내는 의식을 지내지 못한 셈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어졌다. 지나가는 계절 하나하나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름을 보내는 의식이라고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여름에 찍었던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억이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 얼마지나지 않아 이번 여름이 어떠했는지는 잊어버릴 것이다. 살아 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 버리고 또 잃어 버려 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을 그냥 잊어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은퇴하고 처음 맞이했던 여름이기 때문이다.

_7240007.JPG

_7240010.JPG

사진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은퇴하고 여름에 예전 직원들과 같이 저녁식사하고 차한잔 하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그날 뒷산 봉오리를 넘어가는 여름햇살은 강력했다. 그 강력하고 찬란한 여름의 햇살을 머금은 채소며 나무들은 짙은 녹음을 나에게 자랑했다. 마치 나에게 자신들은 지금이 한창이라고 자랑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그 찬란한 빛의 반사가 부러웠다. 여름과 녹음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소중하다. 삶이란 결국 시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그 소중한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무엇을 추억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육체의 힘을 빼앗아 가지만 나중에는 정신도 무력화시킨다. 그래도 인간이 시간에게 끝까지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추억하는 힘이다. 물론 그 추억도 사라질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위대한 정신의 힘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시간동안 끝임없이 추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여름을 떠나 보내며’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