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황룡사 9층 목탑터에서

인간은 희노애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대부분은 무엇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고집멸도라고 이야기하나보다. 집착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그런 것들이 한낱 미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실로 관통해 내는 것이다. 말은 쉽지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일 그렇게 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 부처가 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덧없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폐사지를 둘러 보는 것이다.

한때 번영과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곳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지금 욕심내고 살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그런 깨달음은 며칠 가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위아래로 춤을 추고 스팀이 그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욕심이 절로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본질이 그저 허허하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마음의 평정을 누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 마음이 복잡하고 심사가 뒤틀릴때면 폐사지를 가볼 일이다.

그런데 황룡사는 나의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절터였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텅빈 공간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나에게 다가 왔다는 것이다. 화려한 건축물이나 석조물이 아니라 그냥 그래로 넓은 공간이 나를 내리 눌렀다. 황룡사 빈터를 걸어가면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내리 누르나 하고 생각을 했다. 군데 군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춧돌을 보면서 불타기 전의 황룡사는 말그대로 어머어마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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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빈터의 압권은 역시 9층 목탑지였다. 9층목탑의 높이는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몽고군의 침입때 불타고 말았다. 몽고군들은 그런 탑을 보고 불을 태우고 싶었을까 ? 아마 몽고가 원나라 이후에 지금처럼 찌그러진 것도 아마 그때 그들이 저지른 업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탑지의 가운데 있는 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목탑의 무게를 모두 받아 내는 중심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너무 큰 돌이어서 그 돌을 조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황룡사 목탑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찰주 본기가 들어있었다. 백제에서 기술자들을 불러서 목탑을 쌓았다고 한다. 신라도 참 이상하다. 그렇게 백제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면서 왜 멸망시킬 생각을 했을까 ?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요즘도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쪽 구석에 황룡사 9층목탑을 1/10으로 축소해서 만들어 놓은 모형이 있었다. 모형이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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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업보는 돌고 돈다. 신라시대에 황룡사처럼 어마어마한 절을 지었지만 그때 평민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잘 모르겠다. 성골과 진골 그리고 귀족들을 제외한 일만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도 황룡사 같은 절을 짓느라고 죽을 고생을 다 하지 않았을까? 신라는 거둬들인 세금으로 화려한 절과 왕궁을 지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유적앞에 와서 자랑스런 신라문화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고 그때 고생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

여하튼 나를 내리 눌렀던 그 무엇은 착취당하던 신라시대의 민중의 한숨소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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