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약사전과 태극문양과 창살

약사전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매우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름은 약사전인데 안에다 모셔놓은 부처님은 약사여래가 아니라 석가부처님 상이었다. 왜 이런 부조화가 생겼을까 ? 약사전이니 처음에는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었을 것인데 언제인가 철불로 바뀐 모양이다. 그럼 처음에 있었던 약사여래는 어디로 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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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에서 인상적인 것은 바로 현판이었다. 전서체로 쓰여진 약사전이라는 글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예서나 행서체로 쓰여진 현판은 많이 보았으나 전서체로 쓰여진 것은 그리 많이 본 기억이 없다. 전서체는 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만든다. 예전에 붓글씨를 배울때 제일 먼저 전서체부터 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전서체를 써야 한문글자의 구성을 이해하게 된다면서 몇달간 전서만 쓰게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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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의 앞문살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창살문양으로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논산 쌍계사의 그것과 비슷한 듯 했다. 물론 정교하고 화려하기는 논산 쌍계사의 대웅전을 따라갈 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약사전의 창살문양은 쌍계사 대웅전의 문양과 여러가지 면에서 비슷했다. 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실상사도 임진왜란때 불탔을 것이고 그 이후에 전각을 새로 지었을 것이다. 전쟁이후에 불탄 목탑을 새로 짓지는 못했겠지만 주변의 전각들은 그래도 정성을 다해 복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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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약사전에는 태극문양이 있다. 태극문양은 워낙 우리옆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지 그르려니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태극이란 조금 어색한 측면이 없지 않다. 마치 절에서 산신각을 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유교 건물에서 태극은 많이 있다. 향교에서도 태극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절에서 태극은 그리 흔한 것 같지 않다. 이제까지 절을 다니면서 태극문양을 본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왜 전각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었을까? 아마도 이 절은 주변의 유림과 교류가 잦았던 모양이다. 절에 있는 태극문양은 유교적 영향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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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은 절의 제일 오른쪽 구석에 있다. 주전각인 보광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볼 것이 많았고 생각을 많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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