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은 선동당하는가 ? 한국의 유일한 증인과 한국을 대표하는 증인의 차이

역사가 시작된 이래 대중은 선동당했다. 선동당하기 보다는 스스로 선동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30년전에 유명했던 유태인 저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유명한 책을 쓴바가 있다.

프롬이 말한 핵심적인 내용은 왜 독일과 같은 수준높은 사회에서 히틀러같은 변종이 나왔는가? 하는 문제다. 그 결론이 바로 책의 제목인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이다. 프롬은 당시의 독일인들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자유를 버거워했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그 책을 읽으면서 선동적인 정치가와 대중의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약 4개월전 스팀잇의 kr 코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때 필자는 당시 일어난 일에 해명을 하는 동시에 증인인 @clayop님의 선동을 경고하는 포스팅을 남겼다.

(올드스톤의 해명) @clayop 님의 문제 제기 그리고 쥬노님의 포스팅에 대한 해명 : 이해와 오해 그리고 편견사이

그리고 이런 저런 과정이후 필자는 커뮤니티의 모든 문제는 누구 한사람의 지배적인 독재가 아닌 커뮤니티 전체의 논의를 통해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냥 조용히있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필자만의 착각이었다. 필자가 kr 코뮤니티를 잠시 떠난 사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제 스팀파워 5천에서 1만개 정도 가진 사람도 고래라고 비난을 받고 있었다. 거기다 필자는 대붕이니 하는 비아냥의 대표적 대상이 되었다. Kr 커뮤니티의 대표적 악의 축이 되어 버렸다.

선동을 하지 말라고 권유했건만 증인과 증인을 중심으로 한 풀에서는 선동을 확대 재생산 한 듯하다.
선동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선동에 쓰이는 언어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선동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게 된다.

공산주의에서 자본가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동을 통치의 기재로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 악은 반드시 필요하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차이가 무엇인가 잘 살펴보면 결국 자본가들을 악으로 보느냐 아니냐로 귀결 됨을 알 수 있다.

선동에 사용되는 언어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
인간은 개인적인 단독자이기에 앞서 사회적 관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옳은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쪽에 서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다.

유감스럽게도 소위 kr 커뮤니티에도 그런 기재가 작동했고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그런지 아닌지는 말장난이 통하느냐 아니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 유일의 증인이란 말과 한국을 대표하는 증인이란 말이다.

필자가 @clayop님을 한국을 대표하는 증인이라고 말했고 한국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증인을 선출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clayop님과 그 주변 친위세력들께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유일의 증인이라는 말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과 한국 유일의 증인이란 말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 커뮤니티에서 제도적인 선출을 회피하고자 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말과 한국유일의 증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한말인지 잘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필자는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커뮤니티에서 그 말의 의미 차이를 지적하는 포스팅이 그동안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

필자가 보기에 한국 커뮤니티도 에리히 프롬이 주장했던 자유로부터의 도피과정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간 상당히 수준있는 지적면모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모두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럴까 ?

인간의 모든 행동은 다 이유가 있다.

침묵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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