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TV를 보면서

한때 삶의 낙이 TV를 보는 것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TV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어릴적에 우리집에는 텔레비젼이 없었다. 우리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집에 TV가 있었다. 난 학교에 갔다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작은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작은 집은 나의 천국이었다. 사업을 하시던 작은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책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넉넉하신 작은 어머니께서는 내가 언제가도 반가워하셨다. 그때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난 참 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어릴적에는 그런 것을 몰랐는데 이제 늙으니 그런 생각이 난다. 작은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깊은줄 이제서야 알 듯하다. 이제는 두분다 병석에 누워계시니 마음이 아프다.

각설하고 거의 보지 않던 TV를 오랫만에 보았다. 너무나 볼 것이 없었다. 공중파가 망한다고 하더니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비슷비슷했다. 공중파는 거의 정부 기관방송이나 진배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적이 있었다. 지금 내 나이의 친구들은 대부분 자칭 보수라고 한다. 그들이 80년대 목숨걸고 ㅌㄷ 전두환을 외쳤던 친구들이라는 것을 믿기가 어렵다.
그나 저나 가만히 보니 정말 편향적인 방송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딱히 뭐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숙하고 엄정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방송을 하기보다는 아주 교묘하게 편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교묘하게 해도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그런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공영방송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BS, MBC 사장 자리 놓고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의 공중파는 사람들이 잘 안보는 방송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중에서 SBS가 낫다고 하니 참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다. 방송이 정치화되면서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방송계 종사자 인 듯하다. 몇몇의 스타 앵커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방송계는 스스로 정치화의 길을 걸어간 것 아닌가 한다. 그래서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 조그만 연못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 정부가 방송을 저렇게 제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는 것을 보고 아쉬움이 크다. 민주주의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실 공영방송은 그런 기능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하버마스도 공론의 장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공중파 TV는 그런 공론의 장으로 가장 적격이라고 할 것이다.

촛불 혁명이후 만일 정부가 오만하지 않고 촛불정신에 충실했더라면 TV를 중요 정책사안에 대해 국민들이 끝장 토론하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거제도, 원전문제나 미세먼지 그리고 교육, 국방과 안보에 대해서 단편적인 주장들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호흡이 긴 토론의 무대를 제공했더라면 어땠을까 ?

그래서 국민들이 그 과정을 보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만들었다면 국회에서도 함부로 지금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하도록 홍보하려고 하는 방편으로 언론과 방송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오만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교육수준이 높아서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과정을 보기만 하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방송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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