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이후 중공군의 개입에 관한 소련, 중국, 북한 간의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영실의 책에서는 인천 상륙작전 이후 중국의 개입시도에 북한이 긍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첫째는 소련의 입장이 어떤가하는 문제, 둘째는 김일성이 중공군의 개입시 조
선공산당내에서 연안파가 중국의 지지로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전쟁이 발발하기전에 이미 중국은 미국의 군사개입과 인천상륙작전 감행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7월 2일 주중소련대사 로쉰은 전문에서 ‘조우언라이는 조선인들이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으며, 일찌기 1949년과 1950년 5월 마오쩌둥이 경고한 것을 경시했다고 불평했다. 동시에 저우언라이는 “미국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것 가능성을 고려하여, 인천 후방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마오쩌뚱이 조선인들에게 제안했던 사실도 전달했다. 조언라이는 중국의 3개군단, 총 12만명의 병력이 이미 션양에 집결해 있으며, 만약 미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한다면 지원군이 인민군으로 위장한 채 저항할 것이라고 확인해 주는 한편 소련 공군이 이들 부대를 위해 엄호해 줄 수 있을 것인지 문의했다.(248, Bajanov, “Assessing the politics of the Korean War”, pp. 88-89)
여기서 마우쩌둥이 인천상륙작전의 가능성을 사전에 언급했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만일 마오쩌뚱이 그렇게 경고했다면 그 경고는 소련도 알고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북한은 당연히 그런 상황을 소련대표부에 통보를 했을 것이다. 또한 마오쩌뚱이 직접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오쩌뚱은 그런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스탈린도 마오쩌뚱과 입장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로쉰의 전문에 대해 스탈린은 미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할때 중국군이 조선에 진입하여 전투를 수행하기로 한 것은 정확한 방침이라고 하면서 공중지원을 약속한다.(248, 스탈린이 로쉰에게 보낸 전문 1950년 7월 5일, АПРФ, ф.45, оп.1, д. 331, л. 79)
북한군이 승기를 잡고 있던 초기전투단계에서 마오쩌뚱과 스탈린이 이런 전문을 주고 받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요즘 말하는 ‘장차계획’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우발사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었다.
이와함께 스탈린은 중국을 가급적 빨리 북한에 개입시키려고 했다. 7월 8일 로신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중국의 대표가 조선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조선인들이 불만이 많다는 사실을 마오쩌뚱에게 전달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능한 빨리 대표를 파견해서 연락을 가능하게 하고, 또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 물론 이런 조치들은 마오쩌뚱이 조선과 연락관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를 전제로 한것이다.”(249, 주 АПРФ, ф.45, оп.1, д. 331, л. 82)
스탈린은 중국을 가급적 빨리 개입시키고자 했지만 그것이 중국의 자의적 선택이라는 형식을 빌리고자 했다. 전쟁이후 소련의 책임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다. 중국군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참전했으므로 중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요구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작용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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