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6사단의 공격상황, 한국전쟁 3일차 북한인민군 1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었다.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27일 동틀무렵 제13, 15 보병연대는 짧은 포병사격 후에 적을 공격하면서 전투지역을 5-6km까지 확대하였다. 자정 전에 사단의 연대들은 사마동, 석탄리 방어선으로 진출했다. 차후 기동은 제1보병사단 예하 제12연대 잔여병력, 대구에서 이송된 제3보병사단 예하 제22연대, 서울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구성된 2개대대 및 서울에서 도착한 다른 대대급 이하 부대의 사격과 역습으로 중단되었다.(p.42)”
이 기술은 김포지역의 개화산 일대전투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사에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구성된 부대가 김포반도로 투입되지는 않았다.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보건데 정보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남산부대를 언급한 것 같다. 육군 본부는 정보학교장 계인주 대령을 김포사령관으로 임명했으나, 계인주 대령은 부대를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다. 당시 백선엽이 지휘하던 국군 1사단은 붕괴해버렸다. 당연히 국군1사단은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
소련의 기술은 6월 26일과 27일 북한 인민군의 제1사단 공격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보병 제1사단은 제2제대를 전투에 투입하면서 6월 26일 아침부터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한국군은 밤사이 제2제대에서 제1보병사단 예하 제11연대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6월 26일 온종일 지속된 격전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같은 날 저녁 무렵 제1보병사단 예하 연대들은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6월 27일 16시경 문산을 점령하였으나 적을 집요하게 추격하지 않은 적은 문난 남동쪽 7km고지에서 다시 진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속적인 공격에 대한 그날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p.42)
26일 당시 한국군 제1사단은 지휘체계가 거의 마비된 상황이었다. 소련이 기술하고 있는 제11연대의 병력이동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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