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 관계(박영실) 10,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으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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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초기에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은 북한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려고 했다는 근거가 많다. 북한이 그런 태도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한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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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초기 김일성은 소련 고문단과 스탈린에게는 전쟁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문의하고 도움을 청한 반면에, 중국의 마오쩌둥에게는 전쟁의 개전시기도 알려주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의 개전소식을 전쟁발발 3일째 되는 날, 북한의 영관급 연락장교의 연락으로 알게 되었다.

김일성은 6.25 전쟁을 준비하면서 모든 필요한 준비는 소련으로부터 지원받기 때문에 중국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으나, 전쟁이 시작되자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일부 북한 지도자들은 미 공군의 대대적인 폭격 등을 목격하고 이후 상황을 우려하였다.

7월 5일 김두봉은 김일성을 방문하여 소련이 미국의 폭격에 대한 대응작전을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 것인지를 물었고, 박헌영 역시 소련 항공대가 북한을 엄호하도록 소련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중국군의 파병지원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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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중국에게 북한에 대표를 파견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중국도 저우언라이의 위임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 대리대사를 통해 북한을 위해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도울 준비가 있다고 김일성에게 전달했다.(국편) 마오쩌둥도 전쟁이 개전한다면 북한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김일성은 북한의 직접개입을 꺼려하고 있었다.

중국측 연구자들은 미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중국은 전쟁에 개입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박영실 68).

그러나 사실 중국은 전쟁초기부터 즉각적인 준비를 한다. 첫째는 중국 국내에서 항미원조운동을 진행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변방군을 구성해서 직접적인 군사대비태세를 취한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7월 7일 국방보위문제에 관한 제1차 회의를 소집했다. 이회의에서 중원지역의 국방기동부대 제13병단아래 제 38, 제39, 제40군을 북상시켜 조중변경지역에 집결하여 동북변방군을 조성하고, 이 조직은 동북변방을 보위하고 필요하다면 북한주민을 지원토록 결정한 것이다.(박영실 69)

중국의 적극적인 준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동북 변방군이 조성된 후 1950년 8월초 군단장 덩화가 한국전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북한지역으로 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압록강을 건너 안동이라는 마을에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었다. 북한측이 중국 측 인사들을 전투지역 근처에 접근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었다.(박영실 70, 데비비드 핼버스템, 정윤미 이은진 옮김, 콜디스트 윈터, 2009, 512쪽)

1950년 9월 8일 저우언라이는 로신과 코토프 및 코노프 등 군사고문관과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며 북한과 접촉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한반도 전투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중국 측 군사요원들을 북한에 파견하려 했으나 평양에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영실 72, 예브게니 바자노프 나딸리아 바자노바. 김광린 역, 110)

한편 북한도 중국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문의했지만 슈티코프는 대답을 꺼렸다고 한다. (박영실 72)

(박영실은 슈티코프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유도 불분명하다. 슈티코프는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북한은 왜 중국의 전쟁개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추측가능한 이유 첫째. 중국의 티베트 공격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국의 티베트 공격은 북한에게 중국이 북한으로도 침공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했는지 모른다.

둘째, 소련이 가능하면 중국의 개입없이 전쟁을 종결짓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한반도를 자신들의 완충지역으로 확보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는 러일전쟁이후 계속된 소련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일치한다고 보아야 한다. 웨더스비 교수도 소련의 한반도 개입을 일본의 진출 방지와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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