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인민군의 남침에 관한 기술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먼저 ‘소련 사료에서는 1950년 6월 19일에 한국군 총참모장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p.36)’고 소개하면서 곧이어 미국자료를 들어 다음과 같이 인민군의 남침임을 밝히고 있다
‘미국 사료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인민군이 군사행동을 시작했고, 이의 정치적 목적은 공산당의 권력하에 한반도를 통일시키려는 것이었다. 군사행동의 목적은 남한을 침략하려 남한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출판된 일부 자료가 이와 같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p.36)’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인민군의 공격사실은 처음부터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며…..(p36)’
“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은 이렇게 분명히 한국전쟁이 북한인민군에 의한 남침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002년에 출판된 이책을 참고했더라면 한국사회에서 남침이냐 북침이냐에 대한 비생산적인 논의는 없어도 되었을 것이다.
<초기 작전개념>
“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이 기술하고있는 초기 작전개념은 다른 연구서나 책자와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공격으되는 금천, 연천 철원 지역으로부터 서울과 수원으로 주공을 전개하고 화천, 인제, 양구지역에서 서울을 우회하여 남동쪽에서 수원방향으로 조공을 세워 대치하고 있는 적을 결멸하고 서울 지역에 있는 주력을 포위하여 섬멸한 다음 수원, 원주, 삼척 방어선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주타격방향(서울 방향)에는 제6, 제1, 제4 제3 보병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이 공격해야만 했다
제2, 제12 보병사단과 제603 모터찌클 연대는 양구와 수원방향에서 타격하고 서울에서 남쪽과 남동쪽으로 향하는 한국군 주력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임무를 받았다.
제1국경 경비여단과 제5보병사단의 제10연대는 해병대(2개 해병대대와 2개 훈련대대)와 사단 군단과의 합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강릉방향으로 공격해야만 했다. 해병대의 임무는 강릉지역에 상륙하여 강릉을 점령하고 적이 남쪽으로 후퇴하는 것과 적의 예비대가 전선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주력의 우측에 전개된 제3국경경비여단과 제6보병사단의 연대는 옹진반도와 연안반도를 해방시켜야 했다(pp.36-37)”
초기작전 개념의 기술중에서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은 제2사단과 제12사단이 양구와 수원방향에서 타격한다는 기술이다. 여기서 쓰이는 지명은 주타격 부대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주타격 방향을 춘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양구와 수원이 아니라 춘천과 수원이라고 했어야 한다.
즉 북한군 제2군단의 주타격 방향은 춘천이 아니라 양구라고 보아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군 제2군단의 주타격 방향을 춘천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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