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11월 2일까지 중공군의 작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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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11월 1일 해질무렵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39군

11월 1일 19시 30분에 운산의 적을 공격하려했으나 15시 30분 적이 철수하려는 기색을 보이자(실제는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와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의 배치 변경), 곧 8개 보병연대로 포병연대의 지원하에 17시부터 공격을 개시
2일 새벽까지 격전 끝에 운산을 점령하고 미-한국군 일부를 섬멸, 전차 및 자동차 70 여대를 격파 및 노획

운산으로부터 철수하는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 본부대 및 제3대대의 퇴로를 운산 이남에서 차단하여 제인교諸仁橋 지역으로 압축 포위를 실시함

적들은 2일부터 3일 주간까지 비행기, 전차 지원하에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3일밤 적을 모두 섬멸함

제115사단 제343연대는 적증원부대 차단임무를 받아 운산 이남의 용성동, 용두동 지역에서 박천 방향으로부터 운산북쪽으로 원조하는 미 기병 제1사단 제5연대를 격멸시켜 운산 전투의 승리에 효과적으로 기여

운산지역 전투에서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의 대부분 및 국군 제1사단 제12 연대 일부를 섬멸
총 2천여명(미군 1200명)을 살상 포획, 비행기 4대를 노획 3대를 격추, 전차 28대, 자동차 170여대 각종 포 119문을 노획

제 40군

주력부대는 10월 31일 전에 운산 동쪽 용주동, 사천동 및 구장 서북 귀양동, 곡파원 지역까지 전진

11월 1일 영변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11월 2일 상구동, 고성동, 묵시동 선에서 국군 제1사단 주력부대에게 저지 당해 영변의 적을 포위하는 임무를 달성하지 못함

제38군

10월 31일 신흥동, 소민동 지역을 점령한 후, 11월 1일 구장을 향해 공격 18시에 점령, 방어하던 국군 제8사단 2개 연대는 도하하여 서쪽으로 도주

청천강 좌측 기슭을 따라 원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고 2일 18시까지 원리 지역을 점령하여 적군의 측방을 위협

제66군

11월 1일에 구성에서 대성동, 이구동, 백운동, 청용동 지역까지 진격 미 제24사단을 저지하고 견제
미제24사단 선두 1개 연대는 대안동 이남의 팔영령까지 진격했으나 저지

제50군

제150사단은 1일밤에 안동으로부터 도하, 백마, 사하동, 창포동 일대까지 진격하였으며 남시동까지 진격한 영 제27여단을 저지할 준비

모택동의 지시(33)

11월 2일 밤 모택동은 지원군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은 작전지침을 하달했다.

“제38군은 안주, 군우리, 구장 지역을 장악하되, 특히 군우리에 중점을 두면서 청천강 남북간의 적 연결을 확실히 차단하며, 평양 북쪽으로부터 북상하는 미제2사단의 병력과 국군 제6, 7, 8 사단 잔여부대를 섬멸한 후 가능한 한 남쪽으로 평양부근 까지 독바로 뻗쳐나갈 것”을 지시

“이번 전역의 전면적인 관건은 아군 제38군이 신속히 군우리, 개천, 안주, 신안주 일대를 섬멸하는데 있다. 이것이 가장 긴요한 일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일이다.”라고 지적

누차 언급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모택동이 작전지침을 하달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보아 모택동 처럼 작전수행의 지침을 하달하는 것은 그리 흔하다고 하기 어렵다.

중공군의 전쟁지도 및 작전수행체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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