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참모부의 ‘북괴 6.25 남침 분석(70)’에서 제1단계 작전에 관한 기술을 읽어보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파악하게 되었다.
먼저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육본 정보참모부는 제1단계를 북한군이 서울 - 홍천 -강릉까지 진출한 6.25 - 29일까지로 잡았다.
제1단계 작전의 내용을 읽어가는 중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1. 6사단에서 춘천전투의 심일소위의 북한군 자주포 파괴에 관한 기록이 없다
상게서는 p.118에서 아군 제1사단 용사의 육박공격으로 적 전차를 파괴했다는 기술이 있는 반면, 춘천에서는 수리산맥의 험준한 지형과 6사단 포병의 활약으로 북한군 제2사단의 진출이 지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성은 25일 09:30시경 북괴 6사단 주력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문산 동북방과 임진교 부근의 전투에서는 아군 제1사단 용사의 적 전차를 파괴하는 등 용전분투하면서 임진강남안의 진지로 철수하였다.”(p.118)
한편 당시의 춘천상황에 대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춘천지역은 아 제6사단의 강인한 저항과 춘천 북방의 험준한 지세로 인하여 적은 전혀 진출하지 못했다.”(p.118)
“북괴 제2사단의 공격은 아 제6사단의 강인한 저항과 유리한 지세의 천연적 이점을 비록하여 6사단 포병의 사격효과등으로 인해서 적의 행동은 일시적이나마 좌절되고 말았다.” (p.126)
제1사단의 예를 보건데 만일 춘천의 아군 6사단의 방어 작전에서 심일소위가 북한군 자주포를 육탄으로 파괴했다면 그 내용이 수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까지 심일 소위의 북괴군 자주포 육탄파괴에 대한 전과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여기서 심일문제와 관련하여 당시 제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제1사단장이던 백선엽은 이후 자신의 부대에서 T-34전차를 파괴한 용사에 대한 기념행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가 2003년에 심일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우수 졸업생과 전군의 우수 중대장에게 심일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사실 이때 만들어진 심일상은 백선엽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의 용사의 공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가 남의 부대원에게 상식을 벋어난 관심을 쏟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 홍천 전투의 의미를 재평가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북한군 제2군단의 초기 작전에서 홍천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 육본 정보참모부가 홍천을 작전단계의 구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홍천전투에서 북한군 제7사단이 아군 제2연대를 제시간에 격퇴하지 못한 것을 제2사단의 춘천진출이 지연되자 북괴군 제2군단장이 홍천에서 작전중인 제7사단의 일부를 춘천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내용은 나중에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즉 북한군은 제7사단 병력의 일부를 춘천으로 전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홍천의 중요성을 재평가해야 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북한군 제2군단은 춘천뿐만 아니라 홍천의 진출도 늦었다. 원래는 홍천에 신속하게 진출해서 춘천을 앞뒤에서 포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 제7사단을 홍천에서 전환하지 않았다면 북한군이 홍천으로 진출이 지연된 이유는 당연히 한국군 제6사단 2연대가 전투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군 제6사단 제2연대는 홍천방면에서 성공적으로 북한군 제7사단의 진출을 지연함으로써 춘천의 한국군 제7연대가 포위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고 결국 그런 연유로 북한군 제2사단이 서울 방향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홍천전투의 의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제2단계의 작전과 관련해서는 다음에 정리토록 하겠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한국전쟁사 연구) [북괴 6.25 남침분석 1970. 12.20)]의 초기 작전의 제1단계 작전기술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