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실은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작전적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북한의 작전적 능력부족 문제와 초기 작전에서 소련의 군사고문단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이전에도 밝힌바 있다. 북한에 중국군 출신 사단들이 들어와서 배치하는 것 부터 이미 향후 작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면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p.64
슈티코프의 보고에 따르면 “전투작전이 개시되고 가 부대가 전방으로 진격하면서 상부에서 하부까지 각 참모부 간에 통신이 두절되었다. 따라서 인민군 총참모부는 전쟁 당일 어떤 사단과도 안정적인 교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통제할 수 없었다”고 상부에 보고하였다(국편, 한국전쟁 문서와 자료, 62-64)
북한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김일성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고, 군사고문단을 소련에 요청했으며, 강건은 “군사고문없이는 부대를 지휘할 수 없었다”는 지적도 하였다.
정준병은 북한군 지도부는 10-13개 사단 2개군단 1개 군급의 병종 제대별 연합 합동작전 계획을 수행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용 작전계획은 소련 군사고문단에 의하여 작성될 수 밖에 없었고 북한에서 이루어진 작전은 번역된 작전의 한계라고 평가하였다.(정병준,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 수립과 소련의 역할, 역사와 현실 66, 2007, 386)’
p.65
북한의 초기전쟁과 관련하여 작전을 기획하고 진행한 주체는 소련 고문단이었다. 각 사단의 작전계획 수립과 지형정찰과정에 소련 고문이 참가하였고 이후에도 전쟁 중 북한내 조직개현에 관한 주요 사항들은 북한 측이 소련 고문단에게 조언을 구한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하였다. 7월 3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슈티코프에게 군 지휘부의 개편과 관련하여 조언을 부탁하였다. 슈티코프는 바실리예프와 의논한후 김일성에게 제안했다.
슈티코프와 바실리예프가 제시한 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령관, 군사위원회 위원, 참모장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가 이끄는 2개 군단을 조직할 것, 각 군단에는 4-6개 연합부대를 배속시킬 것, 둘째, 전선사령관, 참모장, 전선군사회원회 위원이 이끄는 전선사령부를 조직할 것, 전선사령부의 설립은 총참모부가 책임질 것, 셋째, 민족보위성은 축소된 형태로 남겨둘 것, 넷째, 군 총사령관으로 김일성을 임명할 것 등이었다. 김일성은 이에 동의했고 새로운 조치를 7월 4일 또는 5일에 있을 군사위원회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재 소련대사가 소련 내각회의 의장에게 보낸 전문, 전선 상황에 대해 북조선 지도부와 나눈 대화에 대하여 No. 439, 1950년 7월 4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문서와 자료> 2006, 70-71
북한은 계속해서 소련의 군사고문단에게 도움을 요충했다. 북한은 소련 총군사고문이 자신의 그룹과 함께 전선 사령부에 남아 있을 것임을 확신하면서 새로 창설되는 군부대에 소련 군관들을 배속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슈티코프는 군단에 2명씩 군관을 고문으로 배치하고, 병종 예하 군사고문으로 군관그룹 25명과 함께 바실리예프 장군을 전선참모부에 남겨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군에 배치된 소련 군사고문들은 민간인 복장으로 근무해야 하며, 이들을 부대내에서는 특파원으로 부프며, 부대 밖으로의 외출을 엄격히 금지할 것이라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초기단계에서 소련군은 북한군의 작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소련군이 북한군의 작전에 어느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의 단계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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