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참전과 관련하여 북한 소련 중국의 입장이 매우 엇갈린다.
중국은 처음부터 한국전쟁에 참가하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영실의 정리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의 전쟁개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후 8월이 지나면서 김일성은 소련의 슈티코프에게 중국참전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은 중국의 참전이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 김일성이 제3차 세계대전을 우려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김일성이 할 걱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탈린이 걱정했어야 할 문제다.
소련의 중국개입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매우 애매모호하다. 유엔군이 38선에 가까이 오면서 중국의 개입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전에는 소련이 중국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은 소련이 중국개입을 요구하자 뒷꽁무니를 빼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 이전의 적극적인 참전의지를 보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3국의 입장과 관련하여 박영실이 정리한 자료를 재정리해보고자 한다.
“개전초기부터 북한에서는 미군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자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6.25전쟁 직전에 중국역시 북한에 지원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박영실, 79, 국편, 86)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미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인해 북한의 능력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며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국편, 88)
김일성 이외에도 박헌영 등이 슈티코프를 방문하여 중국군 개입에 관한 의사를 타진한다. 마치 중국의 개입을 소련으로부터 허락 받고자 하는 것 같은 분위기라고 여겨진다.
9월 21일 허가이가 슈티코프를 찾아가 조선도동당 정치위원회 회의내용을 전달했다. 그 내용은 김일성이 당분간 중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류하고 스탈린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군 지원요청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자고 했다는 것이다.(국편, 146-147)
박영실은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첫째, 중국과 동맹조약 같은 구속력 있는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으므로 명분이 없었다. 둘째, 중국이 한반도로 진입할 경우 미국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전쟁양상이 달라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 이유 모두 전쟁에서 패배할지도 모르는 북한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소련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스탈린은 먼저 9월 16일 마오쩌둥에게 중국군의 배치가 가능한지 그리고 김일성이 망명정부를 세운다면 허락할 것인지를 문의하는 전문을 보낸다(박영실83, Chen Jian, China road to the Korean wa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161)
10월 1일의 전문에서 스탈린은 슈티코프의 전문을 받고 지시를 하달하는데 거기에는 소련군의 전략적 작전적 지도에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중국군과의 협의를 강조한다 (국편, 559)
이후 중국이 소련의 직접참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10월 2일경 소련 전문가들의 대략적인 철수계획을 전달한다. (국편, 561)
스탈린은 10월 14일 마오쩌둥으로 부터 참전결정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까지 중국군의 한국전쟁 개입을 주로 중국의 내부적 상황만을 주로 고려했었다면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에서 어떤 역학관계가 있었는지는 잘 다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중국과 소련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정리하는 과정으로 중국이 참전 여부를 늦게 결정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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