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중국의 소련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는 예는 예이엔잉이 광조우 주재 소련 영사에게 한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공중앙은 소공중앙에 대해 항상 비밀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샹하이, 옌안, 화베이 등 각지에서 일했는데, 중공중앙의 이런 관점을 계속해서 알고 있었다. 나는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 자주 참석했는데, 정치국이 소공중앙이 결정한 어떠한 결의도 배반한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오직 소공과 소련만이 중국에 우호적인 원조를 줄 수 있고, 현재도 주고 있다. 따라서 중공과 중국지도자들이 중국의 진실된 상황을 소련의 당과 정부에 통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중국인민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은 우선 정확한 정책을 택하는 것과 중국인들의 우호적인 행위이다. 이것이 마오쩌둥의 관점이다. …1950년 중국의 고위지도자 한 사람이 마오쩌뚱에게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는 소련 동지와의 마찰을 호소하자, 마오쩌둥은 그 중국 지도자에게 다음과 같이 주의를 주었다. 만약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중공중앙은 먼저 중국동지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것이다.”(320, 주21, Кулик, Китайская Народная Республика, Проблемы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No. 6, 1994, с. 81)
소련에 대한 조심스런 태도는 어디서 연유할까? 소련군이 만주에 진출했을때 중공은 소련의 주둔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소련은 국민당과 맺은 조약에 따른 기득권도 확보하지 못하고 그냥 물러나야 했다. 당시에 스탈린과 소련은 마오쩌둥과 중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했을 것이다. 세계공산주의 운동을 위해 중국은 소련의 지도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이후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많은 변화를 보인다. 국공내전당시까지도 소련은 국민당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중공이 동북지역으로 물러나는 상황이되고 미국 해병대가 중국에 상륙하는 상황이 되면서 소련은 중공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지원을 직접 실행한 것은 북한이었다.
무슨 이유로 중국이 소련에 대해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스탈린과 마오쩌뚱간에 무슨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즉 세계혁명에 있어서 소련과 중국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과 같은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과 같은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션즈화도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참가한 이유를 정리한 가운데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문제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수많은 추측과 주장을 제기했는데, 그중 두가지 관점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 하나는 마오쩌둥이 주요하게 국가안전의 고려(주109, Whiting, China Cross the Yalu), 즉 동베이의 공업지역 보호 및 중국의 안전에 대한 반동세력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중국밖에서 적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현재 발표된 마오쩌뚱과 중국 지도자들의 수많은 발언이 모두 이런 관점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다른 관점은 마오쩌뚱이 혁명에 대한 신념과 의지 및 미제국주의를 격파하려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이것을 일종의 혁명을 위한 동력과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관점이다.(주 110)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마오쩌뚱이 조선파병을 결정하게 된 동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세부분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즉 대만문제로 인해 조성된 미국에 대항하자는 혁명적 정서, 사회주의 진영을 위한 국제적 분업에 근거해 중국이 떠맡아야 할 책임과 의무, 국가의 안전 및 주권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근심등이 바로 그것이다.(주111)”(305)
위에서 말한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과 “사회주의 진영을 위한 국제적 분업에 근거해 중국이 떠맡아야 할 책임과 의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주의 진영을 위한 국제적 분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소련은 유럽을 책임지고 중국은 아시아를 책임진다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회주의 진영을 위한 국제적 분업일 것이다.
중국은 소련으로 부터 아시아 혁명을 책임지라는 권유를 받았고 중국은 이를 수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이 한국전쟁 발발직전에 김일성에게 마오쩌뚱을 만나서 허락을 득하라고 한 것이다. 물론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일전을 벌이도록 만들기 위해 소련이 한발자욱 물러난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당시의 중국과 북한 소련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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