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연혁) 43, 제15기전투(1951.7.9-11.30) 개요

6월하순 임진강-금화-고성 남방을 연하는 선에서 피아방어 대치선이 형성

7월경 북한군 제1군단은 임진강 서북방 예성상 하류에 배치. 철원 금성지구는 중공군이 배치, 금성이동에서 동해안까지는 북한군 제5군단 제2군단 제3군단을 배치

7월 8일 제1차 개성정전회담에 남일을 수석으로 이상조 장평산이 북한군 대표로 참가

북한은 아군의 강력한 압박에 대비하여 북한군 제6군단을 동부지구로 이동

8월 23일 진행중이던 개성회담은 휴회

제5군단은 단장능선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병력대부분을 손실하고 10월초에 중공군에게 진지를 인계하고 전선을 이탈하여 고원-영흥일대에 집결

적은 임진강-철원북방-금화북방-문등리-이포리-고성선에 형성된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나 금성방면에 진출한 하군의 강력한 공격으로 중공군은 무질서하게 후퇴

(단장능선의 전투가 휴전회담에 결정적인 역할)

11월 26일 회의에서 양측은 고성 남방의 남강 강구로부터 덕산리-신대리-사비리-신탄리-노루대기-가마우골-송정-금성북방고지-금곡-관포동-상명리-옹공리-판문점-임진강 강구에 이르는 선에 임시정전선 설치에 합의

정전회담시에도 적후방지역에서 피아제트기간에 치열한 공중전이 매일 전개되었으며 출격하는 적 비행기는 150대를 초과

적은 다수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세력이 점차 확장되는 경향

(당시 유엔군과 한국군은 적 항공기가 소련소속인 것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11월 중순 황해도 지역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북한군 제1군단을 동부로 이동시킴

<괴뢰군 연혁>은 북한군 제2,3군단이 5차 공세이후 많은 병력을 손실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함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괴뢰군연혁) 43, 제15기전투(1951.7.9-11.30) 개요’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