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션즈화는 자신이 파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중국이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마오쩌동은 중국의 동쪽 국경에서 긴장상태와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다음으로 스탈린은 중국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 매우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227)라고 기술하고 있다.
중공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를 잘 알고 있었던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가담하도록 한 것은 보통일은 아니다.
특히 당시 “소련이 중국과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신뢰하지도 안심하지도 않았다”(226)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은 매우 이중적이다. 김일성과의 대화에서 모택동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1949년 5월 15일 스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낸 전문, 1949년 4월 김일이 중국을 방문한 결과를 김일성이 스티코프에게 통보한 내용, 에 따르면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229 각주 51)
“중국은 언제든지 동베이에 주둔하고 있는 2개사단과 그들의 모든 장비를 중국정부에 넘겨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다른 1개 사단은 전투가 끝나야 남방에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1개월 이후에나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이 제기한 이 3개 사단에 필요한 탄약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마오쩌둥은 그들은 탄약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제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마오쩌둥과 주더는 조선의 상황에 대해 세밀하게 질문했다. 마오쩌둥은 조선에서는 언제든지 군사행동이 시작될 수 있으며 김일성은 반드시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어야 하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서의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날수도 아니면 지구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마오쩌둥은 “일본이 개입해서 남조선 정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지구전은 당신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없다. 소련이 옆에 있고 동베이지 지방에 우리가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은밀하게 중국의 병사를 증파할 수 있다. 모두 검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누구도 분별해 낼 수 없다.”(228)
마오쩌둥은 분명하게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참전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소한 1949년 4월 이전에 마오쩌둥은 한반도의 군사상황에 참가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오쩌둥이 ‘소련이 옆에 있고 동베이 지방에 우리가 있다’고 한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 당시에 소련과 중국이 한반도의 군사정책에 대해 상당한 수준에서의 토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만약 조선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중국은 가능한 모든 지원, 특히 위에서 언급한 사단의 식량보급 및 무기일체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한 후 남조선이 일본의 힘을 빌려 조선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김일이 말하자, 마오쩌둥은 조선도 반격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도, 만약 일본군이 참전하면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적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당, 군 및 인민이 심리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마오쩌둥은 특히 “만약 미국이 철수하고 일본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조선 동지들이 남조선으로 진격해 내려갈 필요가 없고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남쪽으로의 진격과정에서 맥아더가 신속하게 일본에 있는 부대와 무기를 조선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주력부대는 여전히 창강의 남쪽에 있어서 신속하고 강력한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조선에 침략해 올 때에는 우리의 정예부대를 신속하게 파견해서 일본군을 섬멸할 수 있다”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이 보충해서 말했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모스크바와 협의한 이후에만 실행가능하다.”(229, 각주 52, 코발레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보, 1949, 5, 18, АПРФ, ф. 45, оп, 1, д. 331, лл. 59-61)
1949년 당시에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일본은 한국에 군대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마오쩌둥이 일본이 참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으로 진격하지 말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중국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유추해보면 마오쩌둥은 국공내전이 종식되면 북한이 남한으로 진격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맥아더가 전쟁을 지휘할 상황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미 그 시기에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한 기본 정책방향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오쩌둥이 모스크바와 협의를 강조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미 이전에 중국과 소련간에는 한반도 전쟁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해서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적어도 한국전쟁에서의 기획은 스탈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션즈화는 상기 전문의 내용을 들어 중국의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해석했다.
션즈화는 중공군에 있던 조선인들을 귀환시킨 것이 중공이 한국전쟁에 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인부대의 북한 귀환에 대해서는 230-2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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