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관계(박영실) 11, 인천상륙작전과 중국과 소련의 전략적 입장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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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전쟁의 발발조차 제대로 통보를 받지 못했지만 한국전쟁 진행과정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중국은 한국전쟁 발발하자 마자 한반도에 투입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북한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조언은 미군의 상륙작전에 관한 내용이다. 중국은 7-9월 사이 세차례에 결쳐 북한 지도부에게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해 언급했다. 마오쩌둥은 7월 중순과 하순 그리고 9월 중순 세차례에 걸쳐 북한에게 적들이 해상으로부터 인천과 서울로 진입해 인민군의 뒷 길을 끊을 위험이 있으므로 인민군은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며 북쪽으로 철수해서 주력을 보존하고 장기전에서 승리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영실 76, 김경일 지음 홍면기 옮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기원-한중관계의 역사적 지정학적 배경을 중심으로” 논형, 2005, 395쪽)

한편 김일성도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1950년 8월 26일 슈티코프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인천과 수원지역에 해병대를 상륙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이지역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알렸다.(박영실 77)

이와함께 북한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준비를 했지만(박영식 77) 낙동강에서의 전력집중과 시간적 촉박함, 장비와 부대의 부족으로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해 소련이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영실의 책에서는 소련이 김일성의 문제제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소련이 한반도에서의 작전을 놓고 중국과 경쟁을 벌였던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소련군의 자존심으로 볼때 중공군의 조언은 건방지게 보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함께 전쟁이후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력하에 두려고 했던 스탈린의 구상으로 볼때 중국의 개입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스탈린은 중국의 한국전 개입은 마지 못할 최후의 예비책으로 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천상륙작전은 한반도에서 소련과 중국의 전략적 균형이 바뀌는 분수령이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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