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36-2 스탈린의 정전에 대한 입장(본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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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중국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1952년 8월 20일 스탈린과 조우언라이는 회담을 진행하면서 중국과 북한간 전쟁포로 송환문제로 의견차이가 있다고 언급하자 다음과 같이 중국을 지지했다.

“마오쩌뚱 동지가 옳다. 이번 전쟁은 미국에 피해를 줬다. 조선 인민들은 전쟁중 피해를 입은 것 이외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물론 조선인민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커다란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확실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커다란 사건이며,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348, 주76, 스탈린과 조우언라이의 회담기록, 1952년 8월 20일, АПРФ, ф.45, оп.1, д.329, л.54-72)

한편 와다 하루키는 이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1952년 조우언라이가 소련을 방문했을때, 조선이 정전을 요구했고, 소련도 정전을 원하지만, 중국은 정전을 원하지 않았고, 스탈린은 어쩔 수 없이 조우언라이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소련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와다 하루키의 견해는 사실과 다를 확률이 높다. (Wada Haruki, Stalin and the Japanese Communist Party, 1945-1953; In the Light of New Russian Achival Documents”, Papers for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Hongkong, January 1996)

한반도 전략에 있어서 스탈린은 항상 지도적인 지위에 있었다. 션즈화는 그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소련의 정치, 경제적 역량,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중공 내부에서의 스탈린의 위엄과 명망 및 스탈린의 노련한 외교적 수단 등은, 신중중 초기 소련과의 교류에서, 마오쩌뚱을 일종의 피동적이고 복종적인 위치에 처할 수 밖에 없게 했음을 반드시 간파해야 한다.”(349)

원래 마오쩌뚱은 스탈린을 좋아하지 않았고 스탈린도 마오쩌뚱을 티토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서 스탈린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1953년 3월 스탈린의 사망은 소련과 중국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마오쩌뚱은 더 이상 스탈린없는 소련에 매여있고자 하지 않았다. 스탈린 사망이후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양보와 타협적인 대외정책 방침을 제시했고 중국은 이런 방침을 고려하여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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